아무것도 알 수 없지만 희미하게 알 수 있어

유럽 여행기 6

by 윤음


아침 일찍 공인 가이드님과 함께 바티칸시티에 들어가기 위한 줄을 섰다.(바티칸 투어는 이탈리아 공인 가이드 자격증을 취득한 사람만이 가이드를 할 수 있다.) 개별 수신기와 이어폰을 나눠 받으면 가이드님의 조곤조곤한 음성과 함께 이야기가 펼쳐진다. 정말이지 '펼쳐진다'라는 수식어가 모자라다. 역사에, 종교에 무관심하던 나도 금세 빠져들어서 하나라도 더, 조금이라도 가까이 듣기 위해 가이드님의 뒤를 졸졸 따랐다. 그마저도 놓치고 싶지 않아 열심히 메모를 했는데 덕분에 세계사 시험공부를 하는 학생이라고 해도 손색이 없어 보이는 페이지가 완성됐다. 학교 다닐 때 이렇게 공부를 했었으면 세계사 백점인데...


KakaoTalk_20220919_210734700.jpg 바티칸 박물관 입구


짧게 기억나고 전달하고 싶은 굵직한 맥락은 바티칸은 500년 전부터 이어진 교황의 집무실로 교황을 국가 원수로 한 지구상의 가장 작은 나라이다. 그중 가장 유명한 것은 미켈란젤로의 벽화로 천장화인 천지창조와 정면 벽에 있는 최후의 심판이다. 벽화와 천장화를 완성하기까지 10년 이상이 걸렸고, 두 그림은 30년을 주기로 그려졌다. 하나는 화제작이었으며 하나는 문제작이었다. 천지창조는 미켈란젤로의 화가로서의 데뷔작이었고 최후의 심판은 그림으로 하여금 많은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보는 것만으로도 놀라움을 자아내는 공간에서 설명을 듣지 않았더라면 어찌 감상할 수 있었겠는가. (미켈란젤로의 벽화는 사진촬영 금지이다.)


KakaoTalk_20220919_210734700_01.jpg 라오콘의 동상


라오콘 조각의 대한 이야기도 빼놓을 수 없다. 라오콘은 그리스로마 신화에 나오는 트로이 전쟁의 등장인물이다. 트로이 목마를 성안에 들여서 안된다고 주장하고 목마의 창을 던져 그리스 군이 숨어있는지 확인하려던 그는 그리스군의 편인 포세이돈의 분노를 사 두 아들과 함께 뱀에 물려 죽는 벌을 받았다. 이 조각상이 전쟁 이후 땅 속에서 발견되었을 당시, 한쪽 팔이 없었는데 미켈란젤로는 근육의 모양을 보고 한쪽 팔이 굽어있었을 것이라 주장했고, 다른 이들은 모두 뻗어있었을 것이라 주장했다. 팔은 뻗은 모양으로 복원되었고 이후에 발견된 팔이 굽어져 있었으므로 미켈란젤로의 천재성을 실감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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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테네 학당 벽화와 바티칸 입장권


아테네 학당 벽화는 가장 인상 깊었던 것 중 하나였는데, 나중에 이 그림에 대해 계속해 생각하고 싶어서 엽서도 샀다. 이 벽화는 철학을 상징한다. 미켈란젤로, 레오나르도 다빈치와 같이 르네상스 3대 거장 중 한 명인 라파엘로가 당시 교황의 주문으로 그린 상상화이다. 이중 중앙에 두 사람과 손짓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이 그림은 바티칸 박물관 입장권에도 그려져 있는 그림으로, 손가락을 위로 향하고 있는 사람은 플라톤(왼쪽), 아래로 손바닥을 펼치고 있는 사람은 아리스토텔레스(오른쪽)이다. 이는 진리는 어디에 있는가에 대한 견해 차이를 보여주며, 플라톤의 손은 우주학에 기초한 관점으로 하늘을 가리키고 있고 아리스토텔레스의 손은 윤리학에 기초하여 땅을 아우르고 있다. 나는 이 질문에 대해 오래도록 생각했다. 진리는 어디에 있는가. 이 얕은 견해로 알 수 없지만 계속해 내 안을 맴돌았다.


KakaoTalk_20220919_210734700_06.jpg 성 베드로 성당 내부


위의 일화나 요약은 아주 간략할 뿐, 그 생생한 이야기를 다할 수 없음이 아쉬울 뿐이다. 이외에도 미술사나 조각들에 관한 이야기, 베드로 성당의 피에타 등 많은 이야기를 들었고 무엇하나 놓치기 아까울 만큼 유익했다. 약 4시간가량의 투어가 끝나고서야 이야기를 들으며 다니기가 생각보다 지치는 일이었음을 깨달은 우리는 허기로 눈앞이 흐려졌지만, 베드로 성당에 발 딛고 다시금 성스러워져 바티칸을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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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에 와 숙소에 머무는 것은 아쉬운 일이지만 더위로 인해 휴식이 불가피했고, 이후에 딱히 별다른 일정도 없었다. 그래도 유럽에 왔기에 와인은 자주 마시고 싶어 사둔 와인 한 병이 3일째 자리를 지키고 있어서 해질 무렵이 되어 와인과 납작 복숭아를 들고 거리로 나왔다. 딱히 목적지는 없었지만 그것도 좋았다. 아니나 다를까 곳곳에서 다양한 버스킹을 볼 수 있었다. 천천히 거리를 걷다가 한 남자의 바이올린 연주 앞에서 발걸음이 멈췄다. 바이올린 연주도 수준급이었지만, 그는 정말 행복해 보였다. 그의 앞에 동전을 살포시 올려두는 아이와 멈춰 서서 다정한 포즈를 취하는 연인, 그를 보며 흐뭇하게 미소 지으며 박수를 보내는 사람들. 이 순간을 눈에 담는 나까지. 이것이 행복이란 줄에 걸쳐진 음이 아니라면 도대체 행복은 어디에 있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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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의 밤


함께 나온 언니들과 그의 연주가 들리는 곳에 자리를 잡았다. 와인을 홀짝이며 오늘의 투어 이야기를 했다. 언니 두 명은 기독교였고 나는 종교가 없다. 하지만 유럽 곳곳의 교회와 성당, 오늘의 바티칸을 떠올리며 정말 신이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한편으로 그렇게 생각하는 편이 인간의 심리에 이로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했다. 신의 존재 여부를 떠나 결국 신을 믿고 교회를 세우고, 이 모든 역사와 예술을 이루어 낸 것은 인간이 아닌가! 나는 전적으로 아리스토텔레스의 견해에 가깝다. 진리는 이 땅에 있지 않은가, 인간의 내부에 있지 않은가. 모든 인간이, 그 존재로 하여금 우주가 아닌가. 그리하여 그 사람을 안다는 것은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이유가 되고, 한 존재를 이해한다는 것은 우주를 깨우치려는 듯 어려운 일이며, 나 스스로를 아는 것도 어쩌면 완벽할 수 없는 것처럼 말이다.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언니들도 신이 존재하는지에 대한 의문을 가졌을 때가 있다고 했다. 지금은 신이 존재함을 믿고, 그렇게 생각하게 되는 계기가 있었다고 하지만 설명하긴 어렵다고 했다. 진리는 위에, 하늘에 있다고 생각하며 신은 모든 인간을 사랑하시고 언제나 기다리고 계신다고 했다. 종교에 귀의하기 전 대부분 신의 존재에 대해 의심하고 확인받길 원한다고 한다. 내가 하는 의심은 자연스러운 것이며 때가 되면 알게 될 것이라는 언니의 말은 어쩐지 아리송하고 두루뭉술하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이곳에 와서 보고 들었고 느끼고 물었던 것들이며, 지금 함께하는 사람들과 나눈 음식과 대화와 시간이다. 그러는 동안에도 아름다운 바이올린 연주는 계속되었고 불빛들은 어둑해진 로마의 거리를 선명하게 비추었다. 아무것도 알 수 없지만 이 순간에 존재한 대화와 풍경과 선율만은 분명하다.

마지막에 그가 떠나기 전에 달려가 가진 동전을 모두 털어주며 이 순간을 행복하게 만들어 주어 고맙다고 인사했다. 작은 손길은 행복한 얼굴과 감사의 인사로 더 크게 돌아왔다. 그 말을 전하지 못했더라면 아마 오랫동안 후회했을 것이다.








가이드님이 바티칸 투어를 하며 영화를 추천해 주셨는데, 실화를 바탕으로 한 넷플릭스 영화 「두 교황」이다. 여전히 의구심을 품고 있는 나로서는 아리송함 투성이다. 베르고글리오 추기경이 종교에 몸 담게 되는 놀라운 일화는 겹쳐진 우연의 산물일까, 신의 부름일까, 기다려왔던 신호라고 믿고 싶던 결과일까. 나는 아직도 알지 못한다. 계속해서 머릿속에서 그려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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