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여행기 11
숙소를 체크 아웃하고 슬로베니아의 블레드 호수로 향했다. 어제 봤던 호수들과는 달리, 수영하는 사람들로 북적였다. 식사에 앞서 인솔자님께서 음식이 굉장히 늦게 나올 수 있다며 경고하셨다. 식사를 할 때마다 느낀 바이기도 했지만, 유럽에서의 식사는 여유로우면서도 답답하다. 일반적으로 테이블마다 담당 서버가 있고, 담당 서버가 메뉴를 가져다주고, 주문을 받고, 음료와 음식을 내어주고, 계산서를 가져다주고, 계산을 하는 것까지 최소 6번은 테이블을 방문한다. 문제는, 그를 손들어 부르거나 호출할 수 없다는 점이다. 그가 때맞춰 나를 살피러 오기까지 기다리는 것이다. 유럽여행의 시작점에서 인솔자님이 알려주신 바로는 그들을 소리 내어 부르거나 손짓하는 것이 매너에 어긋난 행동이라 알려주셨다. 그래서 거의 대부분 식사를 할 때 한참이 걸릴 수밖에 없었고, 먼저 부를 수가 없으니 매번 눈치 게임을 해야 했다. 담당 서버가 바빠 다른 서버에게 눈짓을 하면 기다리라는 신호만 줄 뿐이다. 처음엔 그것이 서비스에 대한 존중이라 듣고 여기며 고개를 끄덕였지만 갈수록 마음 급한 한국인에겐 불편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비난의 마음까지는 아니지만 문화 차이를 크게 느낀 구간이었다. 여행객에겐 시간과 인내의 품이 많이 드는 일이었다.
좋은 점으로는 메뉴 추천을 받는 경우, 그들 만의 취향과 스타일을 한껏 느끼는 등 똑같은 옷을 입고 똑같은 일을 하는 종업원이 아니라 각자의 이름과 스타일을 가지고 일을 하는 직업의 하나라는 느낌을 준다는 점이었다. 이후 파리에서 머물렀을 때 집 근처 빵집에 매료되어 며칠 재방문을 했는데 직원마다 추천하는 메뉴가 달랐다. 먹어보면 아, 이 직원은 이런 입맛이구나를 알 수 있었다.
최근 한국의 서빙 로봇과 보편화되고 있는 키오스크들이 떠오른다. 지금이야 그 또한 귀엽고 신기한 일, 편리한 일이지만 점점 서로의 얼굴을 지워가는 일은 아닐까. 최근 한국에서 나도 키오스크를 이용하기가 어려울 때가 있었다. 키오스크 이용에 불편을 겪고 수차례 재시도하던 사람이 화가 나서 매장을 나가는 경우도 보았다. 유럽은 느리다. 유럽은 불편하다. 같이 여행했던 일행 중 한편으로 유럽은 과거에 머물러있다, 역사를 우려먹는다는 인상을 받기도 한다는 말을 들었다. 그 말에도 일리가 있다. 실제로 식당뿐 아니라 곳곳에서 불편함을 느꼈고 관공서 이용 등에 오랜 시간이 걸린다는 악명은 익히 들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유럽에 있는 내내 아름다움과 낭만을 느꼈다. 지금의 내가 이 교회와 광장을 배경으로 사진을 남기면 나의 자식과 손주가 그때에 방문해도 같은 배경이 있다는 말이다. 언제 지어졌는지도 헤아리기 어려울 만큼의 건물과 다리 위에 서있는 나와 사람들. 그 앞에서 연주와 노래를 하는 사람들. 먹거리와 물건을 파는 사람들. 이 세상에 산다는 것은 긴긴 시간 속의 찰나 같다가도 생이 반복되어 쌓이고 이어지고 있음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여전히 비효율적인 속도에 안타까움은 있다. 어느 한쪽이 정답이 아니라는 것도 알기에 좋은 면을 비추자 함도 아니고 단지 불만을 늘어놓고자 함도 아니다. 어떤 속도가 옳은지 알 수 없다. 단지, 우리가 과속하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경계심 아래 간과하는 것들이 적어지길 바라본다. 우리가 놓치고 있는 것들이 없는지, 그들이 고집하고 있는 것은 없는지.
부다페스트로 이동하기 위해 차를 5시간 넘게 탔다. 오랜 시간이었지만, 그 안에서 이야기하고 노래하느라 즐거웠다. 컴컴한 밤이 되어서야 도착한 부다페스트. 바로 야경을 보기 위해 국회의사당과 어부의 요새를 방문했다. 아름다운 빛들을 바라보며 한참 사진을 찍고 야경을 즐겼다. 하루는 정말 짧은 시간이기도 하지만 정말 많은 것을 할 수도 있는 시간이다.
다음 날 저녁까지 부다페스트에 머물렀는데, 다시 한번 국회의사당 야경을 보기 위해 저녁에 길을 나섰다. 가만히 보고만 있어도 편안한 마음이 드는 건, 강물의 일렁거림 덕분이었을까 그 아름다운 모습 때문이었을까. 마치 겨울 바다를 오랫동안 바라보듯 벤치에 앉아 우두커니 시선을 풀었다. 속도에 대해 아무리 이야기해도 이곳의 빠르기는 아무래도 라르고와 안단테 사이를 오고감이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