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숙함과 낯섦 사이

유럽 여행기 12

by 윤음


아침이 밝아 세체니 온천으로 향했다. 온천이라고 해서 온탕과 냉탕을 떠올렸지만 수영복을 입고 인증샷을 찍어야 한다는 주변의 들뜸에 덩달아 이 무더위를 식힐 수 있겠구나 반가웠다. 부다페스트의 물가를 고려해 봤을 때, 입장료는 7600 HUF로 비싼 편이었다. 막상 안에 들어서니 수영장보다는 커다란 목욕탕 느낌에 가까웠다. 온천과 수영장과 목욕탕의 그 어디쯤이랄까. 낯선 풍경에 쭈뼛거림도 잠시 이국적인 모습과 참방참방 물놀이에 희희낙락한 표정이 절로 피었다. 이럴 때야 말로 사진이 남는 때 아니겠는가! 찍은 사진을 다시 보니 왜 온천이라고 부르는지 알 듯했다. 사진 속 나의 포즈는 계속해 바뀌지만 물에 몸을 담근 사람들은 제자리였기 때문이다. 아담한 풀장에 들어가 가만히 물 온도를 느끼는 모습이, 여기가 온천과 수영장과 목욕탕 중에 가장 어울리는 이름이 온천이 맞다고 생각했다. 물론 수영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수영할 수 있는 약간 깊은 풀장은 수영모를 쓴 사람만 들어갈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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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의 붐비지 않는 시간이어서 비어있는 선베드를 마음껏 이용할 수 있었다. 자리를 맡아두기 위한 수건 두기는 한국인이 유일해 보였다. 돌아보면 유럽 여행 내내 소매치기 때문에 가방 지키기에 여념이 없었다. 소매치기에 유의하라는 표지판을 접하기 쉬울 만큼 유명하니 말이다. 실제로 일행이 소매치기를 당할 뻔한 적도 있었다. 늘 이를 방지하기 위해 신경을 곤두세웠다.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 줄을 설 때, 사람이 많은 곳 어디서나. 아마 더 오랜 시간 유럽에 머물렀으면 어떤 강박이 생겼을지도 모르겠다. 한국에 도착해 가장 먼저 안도의 감정이 들었는데 그건 아마 곤두세웠던 촉각에서 조금 자유로워진 덕일 것이다.


아침에 분주히 준비해 온천에 왔지만, 공간으로 하여금 여유로운 시간을 선물 받을 수 있었다. 세체니 온천은 아담한 편이고 약간의 물놀이로 금세 배가 고파진 우리는 생각보다도 일찍 자리를 떠났다. 재정비 후 식당으로 가 식사를 하고 커피 한잔이 생각나는 때, 이제 이탈리아를 벗어나 스타벅스가 멀지 않은 곳에 있다는 반가운 소식에 한달음에 달려가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주문했다. 이탈리아의 커피는 분명 맛있었지만, 화산 지대에 있는 듯한 더위에 먹는 뜨거운 커피란. 아아만큼 시원함과 개운함으로 카페인이 충전되는 갈증을 해소할 수 없었던 것이다. 이 정도면 정말이지 아아는 한국인의 문화 파편으로 인정돼야 하지 않나 싶다. 한국에서도 시키지 않던 벤티 사이즈의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단숨에 들이켰다. 반가워요, 스타벅스! 이후로도 스타벅스를 종종 방문했는데, 그만큼 다른 곳의 커피가 이탈리아만큼 맛있지 않았고, 스타벅스에서 만큼은 한국에서처럼 빠르게 메뉴가 나왔을 뿐더러 친숙했기 때문이다. 여행이 길어지면 매번 어디에서 무얼 먹을지 결정하는 것도 힘들어진다. 익숙한 것의 소중함이 자라는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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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때가 되어 밖으로 나오니 서늘한 바람이 불었다. 드디어 시원해지는 것인가! 반가웠지만 그도 잠시 뿐. 숙소로 돌아오는 길엔 추위에 맴돌았던 몸이 시원한 공기를 그토록 그리워했음을 잊었다. 사람이라 함은 어찌 이렇게 변덕스러운 존재인지. 익숙함과 낯섦. 추위와 더위. 그리움과 새로움. 왜 항상 그 사이에서 우린 이렇게 헤매야 하는 걸까. 그 답을 알 수 없지만 그래서 아름다운 것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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