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여행기 13
오스트리아 빈에 왔다. 모차르트의 나라, 음악의 도시로 불리지만 이야기를 들어보니 모차르트가 살던 시절 빈을 사랑하지는 않았던 듯하다. 그럼에도 음악과 예술의 도시라는 명맥은 착실하게 이어가는 모습이다. 4중주같이 협주로 버스킹을 하고, 오페라나 오케스트라 공연도 자주 있어 쉽게 음악을 접할 수 있다. 빈에 머무는 이틀 동안은 날이 흐리고 비가 내렸는데 그마저 음악의 일부처럼 좋았다. 유럽은 비가 와도 가랑비나 소나기인 경우가 많다.
호프 브루크 궁전의 정원을 지나 광장으로 갔다. 성 슈테판 대성당은 이전에 봤던 성당들과 또 다른 느낌이었는데 건축 양식에 따라 이토록 다른 느낌을 준다는 것이 놀라웠다. 건축이 수학적이라고만 여긴 것의 깨어남이었다. 카페에 들어가 얘기를 나누던 중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우산을 써야 할 것 같은 빗줄기에도 우리는 숙소에 돌아가기보다 이후의 일정을 도모했다. 마침 시청사에서 필름 페스티벌을 하고 있어서, 여행 중 마주한 축제를 지나치기에는 아쉬웠기 때문이다. 내일은 오케스트라 공연을 보자는 의견이 있어 심심하게 참가 의사를 보였는데, 한국에서 오케스트라를 보았을 때 꾸벅꾸벅 졸고 있던 나를 발견한 적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도 음악의 도시인데 한 번쯤 경험해본다는 것에 의미를 두었다. 중세시대 가발을 쓰고 팜플랫을 나눠주는 모습이 마치 대학로에서 연극 티켓팅을 떠올리게 했다.
비가 그친 틈을 타 시청사로 향했다. 쫄딱 젖어도 어쩔 수 없다며 발걸음을 재촉했는데 운 좋게도 비는 더 이상 오지 않았다. 비가 쏟아졌던 탓인지, 기간을 길게 두고 하는 행사여서 그런지 페스티벌은 그다지 붐비지 않았다. 푸드트럭에서 따듯한 음식과 맥주를 사서 젖은 의자를 슥슥 털고 자리를 잡았다. 대형 스크린에는 오페라 영화가 상영 중이었는데 언어를 알아들을 수 없어 영상을 보며 나름의 스토리를 짜보았다. 다 같이 막장드라마를 시청하는 주부들처럼 영상 속 스토리를 가늠해보고 재생산하며 이야기 꽃을 피웠다. 그 시간이 특별하게 느껴졌던 이유는 언제 다시 올 지 모르는 순간을 보내고 있음을 인지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한 달여간의 유럽 여행에서 만나 마침 진행되고 있는 도시의 페스티벌을 즐기며 맥주잔을 기울이는 순간이라니. 이미 우리는 다양한 우연이라는 촉매로 만나 이 시간, 이 장소에서 두 번 다시없을 시간을 지나는 중이었다. 비가 그친 것을 확인한 덕분인지 점점 사람들이 채워졌다. 숙소로 돌아갔는데, 역시나 아쉬웠는지 비 때문에 숙소로 돌아갔던 일행들이 호텔 로비에서 맥주를 마시고 있었다. 자리에 함께하며 그날의 화기애애함은 오래도록 이어졌다.
내가 기억하는 빈은 어떤 연주이다. 빗소리와 트램이 지나가는 소리. 말발굽 소리와 오페라, 다양한 악기의 연주가 어우러진, 흐리다가도 햇살이 비추는 것 마저 연주의 일부처럼 느껴지는 '빈'이라는 여행곡이다.
트램을 타고 적당한 속도로 도시를 지나며 생각했다. 여행객인 나에게는 이 순간마저 새롭고 어떤 감흥이 되지만 이곳에 사는 이들에게는 이것 또한 일상이겠지. 우리가 매번 지나는 출근길과 동네가 누군가에게는 특별하고도 신선한 활기가 된다. 그런 생각이 드니 나의 일상이 잠시 그리웠다. 왠지 이전보다 기껍고 가벼운 마음으로 그 길을 지날 수 있을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래서 여행이 필요하구나. 일상에서 한 발짝 벗어나 내 삶의 소중함을 느끼기 위해, 매일 보던 것들도 조금은 다른 시선으로 볼 수 있는 마음이 되게 하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