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 듣고 맛보는 비엔나

유럽 여행기 14

by 윤음


어제 빈에서 가장 유명하다는 카페를 가보려다 사람들이 길게 늘어선 줄을 보고는 금세 포기했다. 한국에서도 줄 서서 맛집에 입장했던 기억은 드물다. 그래도 유럽 여행인데 유명하다고 하는 카페에 한 번쯤은 방문해보자 해서 오늘은 마음을 먹고 찾아갔다. 비엔나 3대 카페라는 'cafe central' 역사적으로도 유서깊고 현지인들도 자주 찾는 편이라고 들었다. 비가 온 덕분인지 줄이 길지 않았고, 150년이나 된 곳이지만 세련되고 기품 있는 내부에 기분이 들떴다. 카페 메뉴뿐만 아니라 식사 메뉴도 같이 팔고 있었지만 카페에 왔으니 커피를 마셔야지! 맛있어 보이는 커피와 디저트를 시켰다.




추천 맛집, 유명한 곳, 핫플이라고 일컫는 데를 찾아가 보면 딱 두 가지 반응을 할 수 있다. "음~ 유명한 데는 다 이유가 있어. 역시!" 하며 엄지를 척 세우고 고개를 깊이 끄덕이게 되는가 하면, 사람들의 반응을 따라 커진 파도를 타고 여기에 왔구나. '남들이 뭐라던 내 입에 맛있어야 맛집이고, 내 마음에 들어야 핫플이지.'라는 말을 무언가와 함께 삼키게 되는 것 말이다. 내가 시킨 커피와 디저트가 내 입에 맞지 않았을 뿐이라고 여기고 싶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방문을 후회하지는 않는다. 너무 비싸지만은 않은 가격, 다양한 메뉴와 나이스한 직원들, 카페의 분위기와 역사적으로도 의미 있는 곳이 지금껏 그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는 점까지 고려했을 때, 경험해볼 만한 코스였다.





이후에는 벨베데레 궁전을 갔다. 구스타프 클림트의 작품을 보기 위해 한국에서 미리 예약을 했던 터였다. 미술에 조예가 깊지는 않지만 클림트의 키스는 실제로 보고픈 마음이 컸다. 현장에 오디오 가이드가 있어 구매했다.(현장 결제 5€) 설명을 들으며 작품을 보니 더욱 많은 것들을 느낄 수 있었다. 혼자 왔기 때문에 천천히 나의 속도로 둘러볼 수 있어 좋았다. 그때 찍어둔 사진들을 다시 보니 사진 속 그림들은 전혀 생기 있지 않다. 반짝이며 오묘한 분위기를 자아내던 빛이 앨범에 전혀 남아있지 않았다.

기대했던 작품이었지만 막상 나는 그의 그림들 앞에 오랫동안 머무르지 않았다. 아니 못했다고 해야하나. 유명한 그림은 사람들로 붐비고, 그 외에도 작품들이 많아 한 작품 앞에 긴 시간 서성일 수 없었기 때문이다. 짧았어도 한번 보고나니 어쩐지 족하다. 그것이 아름다움이건, 고뇌이건, 공허이건, 한번 경험해보면 이전과는 다르기 때문이다. 앨범 속 작품들의 허물을 들여다보며 다시 상상한다. 그 그림들이 주었던 인상과 눈빛과 그 앞에 서있던 나를 끊임없이 재생산한다. 예술을 마주할 때, 그 예술이 내 입의 맛집처럼 내 안에 어딘가에서 재생산될 때, 머리가 쭈뼛 서고 부르르 따듯한 전율이 스친다. 그것이 어떤 창조와 연결되지 않더라도 나를 살리는 일에 가까운 것은 분명하다.



구스타프 클림트의 작품들



천천히 상궁을 둘러보고 나오니 날이 개었다. 궁전 창밖으로 보이던 예쁜 정원이 인사한다. 느긋하게 궁전을 조망하며 산책하다가 문득 기쁘다. 적당히 날이 개고 선선한 바람이 부는 이 순간에 아름다운 것을 보고, 생전 알지 못했던 길을 걷고 만끽하는 내가 충만해서 이다. 이와 같은 시간을 꿈꿀 생각조차 못하고 지냈던 그간이 우스워서 이다. 그동안 무엇이 나를 꿈꾸지 못하게 했을까. 그동안 무엇이 이와 같은 시간을 갖게 함을 막아왔던 것일까. 생각해보면 그건 '나'이다. 알지 못했으니 꿈꾸지 못했고, 나에게 너그럽지 못해 허락하지 못했다. 현실로 돌아가면 또다시 나는 꿈꾸기를 뒤로 미루고 나를 채찍질할 것이다. 현실에서 지낸다는 것은 그런 것이니 말이다. 하지만 이렇게 그때를 추억하며 글을 쓰는 지금, 한참을 달리다가도 언제든 나에게 너그럽게 행복한 시간을 쥐어줘도 된다는 것만은 종종 되새길 수 있게 되었다. 이렇게 생각하는 것만으로 내 몸이 조금 가벼워지는 세상을 살고 있다.



벨베데레 궁전



저녁에는 예매해둔 빈 모차르트 오케스트라 공연을 갔다. 한국보다 훨씬 저렴한 가격에 구매 가능했고, 홀이 생각보다 크지 않아 더 좋았다. 하루 종일 빈의 이곳저곳을 구경하다 공연 시간이 다되어 바로 앞에서 길을 헤매는 바람에 공연 시작 전에 벌써 살짝 지쳐있었다. 그러나 시작과 함께 가발에 의상까지 중세로 돌아간 듯한 세션들을 보자 호기심 어린 기운을 감출 수 없었다. 공연을 말 그대로 너무나 유쾌했다. 왜 이제껏 오케스트라와 오페라를 딱딱하게만 여겼는가? 음악의 85%는 알고 있는 곡이었으니 역시 모차르트! 귀에 익은 노래들을 오케스트라와 오페라를 통해 들으니 반갑고 즐거웠다. 특히나 터키 행진곡 때에는 지휘자의 신호에 맞춰 같이 박수를 치고, 기분 좋게 뿜어 나는 무대 위의 유대감 덕분에 보는 내내 미소가 절로 지어졌다. 이런 유쾌한 공연이라니! 우리나라에서 극장에서 영화를 보듯 이곳 사람들은 공연을 보는 문화가 자연스럽구나 느낄 수 있었다. 여독을 잊게 해 줄 만큼 행복한 시간이었다.













공연이 끝나 밖으로 나오니 새까만 밤이 맞이했다.

떠있는 달을 보는 것마저 심미적으로 느껴진다.















클림트의 작품 이외에도 마음에 들던 몇 작품을 이곳에 남겨 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