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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음 Nov 27. 2022

스위스 세계로!

유럽여행기 18


 흘끗흘끗 창밖으로 보이는 풍경에 일찌감치 마음이 설레었다. 지금껏 많은 바다와 산들을 봐왔다고 생각했는데 이미 그 색감이 남달랐다. 이곳이 스위스구나! 스위스는 물 색깔, 나무 색깔부터 다른 것이구나. 창밖으로 빼꼼 보이는 찬란한 빛깔을 마주할 때마다 저절로 탄성이 터져 나왔다.


이동 중 창밖으로 보이는 스위스 풍경



 유럽 여행에 앞서 현실에 정신이 없던 탓에 로망은커녕 제대로 된 기대도 품지 못한 채 이곳에 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가지 부푼 마음을 안게 한 것이 있다면 스위스에서의 패러글라이딩이다. 긴장되고 들뜬 마음으로 패러글라이딩을 할 것이라 생각했지만 차를 오래 탄 탓이었을까, 구불구불 산 길 때문이었을까 어쩐지 평소보다도 저조한 텐션이 되었다. 포인트로 올라가는 길에 재미난 설명과 반가운 한국어에 잠시 회복된 듯하다가도 창밖을 보며 점점 작아지는 집들을 보니 다시 웃음기가 가셨다. 멀미와 긴장이 섞였다.


패러글라이딩 포인트로 이동 중



 파일럿과 짝을 지어주기 위해 이름이 적힌 엽서를 뽑는데 아니나 다를까 아, 저분만 아니었으면 좋겠다 싶은 분과 짝이 되었다. 나의 긴장감과 저조한 텐션을 희석시켜줄 친근한 분이었으면 좋겠다 생각했는데 묵묵하고 카리스마 있는 모습으로 터프하게 운전을 하고 있는 소니아와 짝이 되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차에서 내려 같이 걸으며 어떤 표정과 말을 해야 할지부터 궁리했다. 자연스럽게 안내 베이스에서 들고 가도 좋다는 나의 핸드백을 내보이며 물었다. 당연 짐 없이 맨몸으로 올라가야 하는 줄 알았는데 베이스의 안내 직원이 그 정도는 괜찮다며 가져가라고 했었다. 다시금 의아스러웠던 것이다. 


 - 가방을 가져와도 괜찮다던데 이걸 들고 어떻게 패러글라이딩을 하죠? 괜찮은 건가요?

 - 당연히 나는 괜찮지 않아. 내가 들어야 하는 무게가 느는 것이니까.


 오.. It's not okay. 를 듣는 순간 나는 얼음이 됐다. 발걸음을 멈추고 당황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어버버 대는 내 모습을 인지한 순간 소니아의 농담이었음을 깨달았다. 이런.. 진짜 나랑 안 맞아라고 생각하며 속으로 울고 싶어졌다.


 그리고 몇 마디 더 나눴던 것 같은데 기억이 나지 않는다. 소니아는 묵묵하고 부지런하게 비행 준비를 했다. 내 핸드백은 그녀의 백팩 깊숙이 봉인됐다. 사진이라도 찍고 싶은데 부탁하기도 어색했다. 손이 야무진 그녀는 첫 번째로 준비를 마쳤다. 오.. 나는 아직 마음의 준비가... 사진이.. 어버버버.. 휴대폰도 넣어야 하니 달라고 하기에, 여기까지 왔는데 지금 사진 안 찍을 수 없어! 하며 조심스레 켄.. 유... 픽쳐? 세상에 말도 잘 안 나왔다. 그녀는 흔쾌히 사진을 찍어주었고 어색의 소용돌이에 빠져버린 나는 팔다리를 삐걱거리며 요상한 각도의 포즈를 취했다.


 이윽고 그녀와 줄을 잇고 심호흡을 했다. 좀 전까지 긴장되지는 않았던 것 같은데 이제 눈앞의 능선을 향해 달려야 할 때가 되어서야 심장이 쿵쾅거리기 시작했던 것이다. 마음의 준비니, 어색의 걱정이니, 그런 걸 재단할 겨를과 필요가 없어지고서야 똑바로 볼 수 있었다. 내가 해야 할 것이. 단단한 마음의 주먹을 쥐고 에라 모르겠다 뛰었다. 사실 소니아를 믿지 않고서야 할 수 없던 일이다. 그녀가 어떤 결이라 나와 맞고 맞지 않고, 제대로 된 사진을 찍었고를 떠나, 중요한 것은 지금껏 머릿속을 헤집던 것들이 아니었다. 지금 눈앞에 놓인 능선과 내 두 다리, 함께하는 파일럿이 안전하게 나를 날게 해 줄 것이라는 믿음. 

 생각보다 몇 걸음 내딛지 않아서 몸이 두둥실 떠올랐다. 발이 떨어지자마자 마치 다른 차원에 들어선 듯, 공기가 바뀌며 숨이 잠시 멎고 풍광이 갑자기 눈 안에 확 담겨 들어왔다. 어릴 적 어떤 만화영화에서 보던 것처럼 다른 세계에 들어가는 듯한 그 2초 남짓을 잊을 수가 없다. 정확하게 기억할 수 없는 그 순간이 사진 찍은 듯한 느낌으로 남았다. 이내 쉬-익하는 바람소리가 귀에 들어왔다. 시원한 공기와 시야가 펼쳐지며 아름답고 평온했다. 아, 다음 생엔 새로 태어나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소니아가 상공에서 찍어준 사진



 그제야 벨트에 조여있던 듯한 마음이 편해지고 소니아와 이런저런 담소를 나누었다. 소니아는 24살 때부터 파일럿 생활을 시작해 16년 차 베테랑 파일럿이다. 스위스에 살고 있으며 결혼하지 않았다. 스위스에서는 굳이 사람들이 결혼하지 않는다는 말도 덧붙였다. 스위스에서는 일 년 내내 패러글라이딩을 할 수 있으며 소니아는 하루에 많으면 9번, 평균적으로 5번 정도 날아오른다고 한다. 눈에 보이는 건물들과 호수들의 이름을 알려주고, 원하면 네가 있는 숙소 앞에 내려주겠다는 말도 했다. 난 굳이 그러지 않아도 걸어갈 수 있는 거리라며 답했는데 오, 이 역시 장난이었다.


 소니아도 나에게 비슷한 것들을 물어왔다. 이제 한국에 돌아가면 무엇을 할 것이냐고 질문에 나는 명랑하게 외쳤다. I don't know! 답을 듣고 소니아가 어떤 표정을 지었는지 알 수 없었다. 그러나 그 고요하고 시원한 상공에서 말할 수 있는 기분 좋은 외침이었다. 대책 없고 철없어 보였을까. 즐겁고 짜릿해 보였을까. 자유롭고 찬란해 보였을까.






 지상에 내려와 소니아가 사진을 주겠다며 나에게 어떤 휴대폰을 쓰냐고 물었다. 아이폰이라고 대답하자, 소니아는 오! 너 한국인 아니야? 그렇담 삼성을 써야지~! 하며 자신의 삼성 휴대폰을 내보였다. 오.. 소니아 감히 당신을 짧은 시간에 가늠하려 했던 제가 부족한 사람이었어요. 긴장과 컨디션 때문에 내 마음의 공간이 협소해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소니아는 가지고 있던 usb를 이용해 다른 기기로 사진을 옮겨 내 아이폰으로 전송해주었다. 고마워요 소니아.


패러글라이딩 랜딩 포인트에서 본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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