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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음 Nov 04. 2022

두 번 다시 짓눌리지 않기 위해, 아우슈비츠 수용소

유럽 여행기 17


 프라하에서 떠나 뮌헨으로 향했다. 뮌헨에서는 무얼 하는 게 좋을지 다들 고민하고 있었다. 생각보다 구경할 것이 많지 않은 듯했다. 일정을 구상하던 중, 가는 길에 아우슈비츠 수용소가 있는데 만일 생각이 있다면 가보지 않겠느냐는 제안을 받았다. 선뜻 응하고 싶었으나 학생 때 서대문 형무소에 방문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깊게 생각한다기보다 방학 숙제로 간 곳이었는데, 그곳을 둘러보며 점점 숙연해지고 침울해지며 스산한 기운에 몸이 덜덜 떨리던 기억이 있다. 많은 것을 느낀 시간이었으나 다시 방문하고 싶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수용소도 분명 비슷한 공기를 품고 있을 것이었다. 「줄무늬 파자마를 입은 소년」,「인생은 아름다워」와 같은 영화들이 떠올랐다. 그곳에 간다면 나는 마구잡이로 울렁이며 가라앉은 마음을 달래기 위해 애를 써야 할 것이 자명했다. 명치 부근의 어떤 장기가 액체 괴물이 된 듯 그 안에서 형태를 바로잡지 못하고 흘러내리기를 반복할 것이다. 그로 인해 울고 싶거나 소리를 지르고 싶거나 뛰고 싶어지는 감각에 휩싸일 것이다. 그래서 섣불리 가겠다는 말이 나오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곳에 가보는 것에 의미가 있을 것이라는 지점은 어쩐지 선연해서 누군가 붙잡고 가보자,라고 힘주어 말해주길 내심 기다렸는지도 모르겠다.


 다들 나와 같은 마음이었던 걸까, 아니면 방학 숙제를 앞두고 서대문 형무소에 처음 발을 들이기 전의 나처럼 아무런 감각이 없었던 것일까. 이후 특별한 일정이 없으니 너도나도 눈치를 살피는 모습에 긍정도 부정도 읽기 어려웠다. 사실 누군가 '괜히 분위기 가라앉게, 무서운데 꼭 거길 가야겠어?'라고 말해주기라도 한다면 조금이라도 거들고 싶었다. 그곳이 아니더라도 이대로 뮌헨으로 가 학센과 독일 맥주도 맛보고 밀린 빨래도 하고, 구경할 곳이 많지 않은 들, 충분히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결국 누구의 반대도, 누구의 대단한 부추김도 없이 차는 수용소로 향했다. 다들 같은 나와 비슷한 마음이었던 걸까. 무섭지만 궁금한, 굳이 안 가도 되는데 가보면 좋을 것 같은, 혹은 이러나저러나 상관없었는지도 모른다. 그저 나에게는 마음의 준비가 필요했다. 수용소를 향해 가면서 나는 속삭이듯 염려했다. "혹시, 다들 서대문 형무소 가봤어요?" 그 질문의 속내는 '그런 분위기의 장소인데 다들 괜찮겠어요?' 였는데, 이제와 생각해보니 '그런 역사적인 곳은 단연 가보는 것이 마땅합니다.'로 해석할 수도 있었겠구나 싶다. 가이드님은 "이런 걸 다크 투어리즘이라고 해요. 여러분이 다 함께 그 장소에 방문하는 것이 저로써는 참 의미 있어 보입니다."라고 말했다.


 예.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머리와 몸은 다른 말을 했다. 차에서 내려 수용소 앞까지의 발자국 소리가 유독 크게 느껴졌다. 문 앞에서 침을 꿀꺽 삼키고 숨을 죽였다. 쓰고 보니 이 표현을 사용하고 싶지 않다. 숨 죽였다 라니. 이 공간에서 숨, 죽이다, 숨 죽였다 라는 표현은 더 이상은 아무것도 죽지 않았으면 좋겠는 바람과 상충된다. 이곳에서 만큼은 무엇 하나라도 더 죽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곳이 존재함으로써 다시는 없어야 할 일들을 말해준다. 다시는. 다시는 그렇게 잃지 않을 것이다. 죽지 않을 것이다. 빼앗기고 짓밟히지 않을 것이다. 다짐해야 하건만 그 공간에 있는 나의 마음은 무참히도 잔혹의 무게에 짓눌렸다.


 상상 이상으로 상세하고 적나라한 기록들이 이어졌다. 이곳까지 왔음에 애써 지나쳐서는 안 될 것이다. 더욱 소상히 보지 않으면 이곳에 온 의미가 없는 것이다. 언급했던 영화를 여러 번에 걸쳐 본 것이 아닌데도 실제 공간에 와서 인지 또렷하게 겹쳐졌다. 그들이 어떻게 되었는지, 혹은 어떠한 더 많은 일들이 있었을지 놓여있는 기록물들과 증거들이 말하고 있었다. 당장이라도 뛰쳐나가 울부짖고 싶어지는 마음을 달래기 위해 안간힘을 써야 했다. 인간이 어찌 이렇게 잔혹할 수 있습니까! 신에게, 과학에게, 역사에게, 그 누구에게라도 소리라도 치고 싶었다. 하지만 한낱 인간은 답을 들을 수 없고, 고작해야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조용하게 눈 돌리지 않고 마주하는 것이었다.


 끝날 것 같지 않던 빽빽한 어둠에서 벗어나니 그늘 한 점 없는 하늘과 사진에 담기지 못하는 기다란 건물이 보인다. 저 멀리에 보이는 곳까지 가보려 했으나 시간이 넉넉지 않았다. 이곳에 오래 머무르고 싶지 않았기에 군말 없이 발걸음을 옮겼다. 나중에 알고 보니 멀리 보이던 곳은 가스실과 화장터라고 했다. 아아 나 그곳을 보았다면 주저앉고야 말았을 것이다. 그리고 그곳까지의 길이 빈 공터였는데 원래는 양옆으로 수용소가 빽빽하게 있었다고 한다. 무력감의 우물에 빠진 듯했다. 나는 무엇을 할 수 있는가. 무엇을 해야 하는가.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저 오늘 밤 악몽을 꾸지 않게 해달라고 기도하는 것뿐이었다.


 


 숙소로 가려던 길에 근처에 영국정원이 있다는 말에 차에서 내렸다. 이 무기력함과 어둠을 잊어보려는 시도였는데 검색해서 본 예쁜 정원의 모습은 찾기 어려웠고 수풀이 우거진 길만 나왔다. 알고 보니 영국정원은 넓이가 373헥타르에 이르렀다. 우리가 간 곳은 정원의 외곽 어디쯤이었을 것이다. 방향을 알 수 없이 커다랗고 드넓은 숲 길만 이어졌다. 길을 잃었지만 수용소에서 보던 허무에서 벗어나 울창한 나무와 바람이 풀을 스치는 소리에 괜찮았다.

 서대문 형무소를 벗어나 나오는 길엔 건물의 한쪽 벽면을 다 덮을 만큼 커다란 태극기가 걸려있다. 여름이었는데도 형무소를 돌아보며 한기에 몸을 떨었다. 그런데 어느 정도 둘러보고 나오는 길에 볕이 드는 쪽으로 새하얗게 걸린 태극기를 보자 신기하게도 몸이 녹으며 햇살이 느껴지는 것이다. 





 처참히 지나간 역사 앞에 현재를 살고 있는 개인이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이겠는가. 우리는 왜 아픔의 기억을 두고 보는가. 어째서 잊지 않아야 하는가. 같은 일이 반복되게 하지 않기 위해서이다. 두 번 다시없어야 할 일이기에 더더욱 경계하기 위함이다. 충분히 통감해야 한다. 과분히 슬퍼해야 한다. 무겁게 기억해야 한다.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하지 말지어다. 이미 지나가버린 일에 할 수 있는 것은 없었으나 기억하고 되새겨야 한다. 일어나서는 안 될 일들에 대해서 말이다.


 한국 사회에서 일어나서는 안될 일이 일어났다. 사실 제목에서의 표현도 쓰고 싶지 않았다. 짓눌리다니. 감당할 수 없을 만큼의 무게에, 함부로 마구 더해지는 무언가로부터 벗어나야 할 것만 같다. 마음 깊이 애도하며 간절히 바라본다. 두 번 다시없어야 할 일들에 대해 눈 돌리지 않기를 말이다. 



이태원 사고 사망자를 애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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