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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음 Apr 22. 2024

축사의 날

 세상에 처음 겪는 일들이 많이 남아있다는 것은 내가 아직 젊다는 반증이기도 한 것만 같아 퍽 달갑다. 두 달 남짓 너의 결혼식에 어떤 축하의 말을 건네야 하나를 골몰하는 것만으로 때때로 감격스러워지는 일상을 보냈다. 

 '어느덧'이란 단어를 사용해야 할 것만 같아 자주 옛 기억을 꺼내보았다. 유독 우리가 함께했던 하굣길이 떠올랐는데, 예보 없던 비가 추적추적 내리던 날이었다. 메뚜기 같다던 체육복을 하나씩 뒤집어쓰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나는 그때 문득 그런 생각을 했다. 한 10년쯤 지나면 우리는 저마다 다른 일을 하고 있겠지. 각자 연인이 있거나 없겠지. 그중에 누군가는 먼저 결혼을 하겠지. 그게 누가 될까. 오묘한 기분으로 상상하고 깔깔거리며 떠들던 우리가 정말로, 그 시간 앞에 서있다. 


 '아무래도 울 것 같은데?'라는 염려에 대비해 만반의 준비를 했다. 축사를 부탁받은 시점부터 어떤 말들을 써야 할까 고민했고, 우리의 추억들을 한껏 회상하기 위해 옛 앨범과 편지를 뒤적이는 건 가벼운 시작이었다. 세 달 전부터는 트레이너 선생님께 "결혼은 친구가 하는데 회원님이 왜..?"라는 말을 들으며 다이어트를 시작했고, 두 달 전부터는 좀 더 정제된 표현에 가까워지고파 글쓰기 수업까지 들었다. 하영이는 부케를 받기 위해 공 받는 연습을 하겠다던데. 난 이 축사를 잘 읊기 위해 스피치 연습을 할까 한다. 당일엔 울지 않기 위해 2주 전쯤부터는 내내 슬픈 영화를 봐서 더 이상 눈물이 나오지 않게 할 작정이다. 

 부디 무사히, 잘, 이 마음이 전해지면 좋겠다. 




 내가 결혼을 한다고 했으면 너는 좀 놀란 듯하다가 내 어깨에 손을 얹고 말하겠지. "축하한다. 잘 가라!"

 어쩌다 본 영상에서 결혼이란, 서로에게 예측 가능한 사람이 되어주는 것이라고 말하던데. 신랑님을 처음 뵙고 대화를 나누다가 어떻게 결혼을 결심하게 되었냐는 얘기가 나왔지. 그때 '생각이 비슷하다'라고 답을 주셨어. 그래서인지 이미 예측 가능한 서로가 된 듯한 두 사람을 보는 내가 편안하더라. 비슷한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지만, 또 다른 점들도 발견했는데 신랑님은 참, 섬세하시더라. 우리 혜지는 조금은 무딘 부분이 있는데 말이지. 나만 느낀 것이 아니라 너의 남편이 되실 분이라 소개받은 모든 이들이 잠깐이지만 뵙고 느꼈던 부분인 듯해. 그래서 너를 아끼는 우리들은 어쩐지 안심되었어. 함께 고기를 구워 먹는 그 짧은 팀플레이 순간에도 서로를 챙겨주며 손발이 척척 잘 맞더라고. 나의 깻잎 따윈 떼어주지 않으셨어. 역시나 합격이야. 


 이토록 잘 어울리는 두 사람의 결혼이라니. 부러움을 넘어 편안해. 바다에 모래가 있고, 들판에 노을이 지고, 바람에 나무가 흔들리는 것을 보듯이. 조화롭고 알맞게 느껴져. 마치 두 사람의 결혼은 자연스러운 일인 듯해서 '그렇게 두 사람은 행복하게 살았습니다'라고 마무리되는 것이 딱인 것 같달까.


 혜지 너는 걸음이 느린 편이었어. 같이 등하교를 할 때면 항상 뒤에서 천천히 걸어오는 친구였지. 빨리오라고 재촉해도 뭐 그렇게 빨리 가냐며 투덜거리는, 어쩔 때는 너를 뒤에서 밀면서 걷기도 했지. 그러면 편하다며 허허 웃곤 했는데. 여유를 두고 천천히 걷던 네가 우리 중엔 가장 먼저 삶의 다음 단계를 맞이하게 된 거야. 결혼이라는 게 가까웠던 이를 어디론가 떠나보내는 듯한 감각도 안겨주는데, 너의 속도와 그런 너의 속도를 맞춰주는 사람과 함께하기로 하였다니. 사실 아무 걱정도 안 돼. 그냥 한껏 기쁘게 축하할 뿐이야. 너무나 좋은 날이다.


 마지막으로 신랑님께, 예식 당일이 생일이시라던데. 기꺼이 자신의 생일에 우리 혜지를 그리고 혜지란 사람의 관계를, 이 모든 것을 선물로 맞이하는 신랑님을 보며 감사함과 마음의 품의 넉넉함을 느낍니다. 두 분이 얼마나 예쁘게 잘 살지 기대됩니다. 이제 우리 혜지 말고, 당신의 혜지가 될 혜지는 그 존재 자체만으로 누군가의 선물이 되기에 단연 흘러넘치도록 충분한 사람임을 그녀의 오랜 친구로서 보증합니다. 부디 두 분이 함께하는 시간이 놀랍고 반갑고 행복한 축하의 날들이 되시길 바라며 축사를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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