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하다. 감기에 걸렸다. 코로나가 염려되어 검사도 해봤으나 선명한 한 줄에 조금은 안심하고 앓기로 한다. 병원에서 약을 처방받아 삼킨다. 입맛이 떨어져 오히려 좋아를 외쳤는데 생각보다 음식이 양껏 들어가 스스로도 놀랐다. 살이 찐 게 입맛이 좋은 탓을 해댔는데 이게 뭐람. 그냥 잘 먹는 거였다. 아파도 잘 먹는 몸뚱이가 감기 따윈 가볍게 짓누르는 효과라도 보여줘야 조금은 미더워 보이겠다.
습관이 아닌 영역이 없다. 먹는 것도, 움직이는 것도, 쓰는 것도. 모든 게 다 습관에서 잉태되는 일이라 지금의 행동이 습관인 양 하염없이 세뇌라도 해야 겨우 글 앞에 앉는 것이다. 좋은 습관을 갖는 것이 목표였는데 목표는 언제나 그렇듯 쉽게 비웃으며 내 앞을 지나간다. 생각하지 않고서도 하는 매일의 무언가는 매우 힘이 세다. 나는 요즘 무엇을 매일같이 하고 있는지 돌아보니 헛웃음만 나온다. 나는 자꾸 마음만 고쳐 먹으려고 하는데, 이 또한 습관이겠지. 오늘은 그래도 멱살을 잡아끌듯 글 앞에 앉았으니 다행이다. 내일도 이리 고쳐 앉아 습관의 '습'이라도 되뇌어야 이 글을 올릴 수 있겠지.
그간의 일상을 꾸역꾸역 주워 담아 올리는 글이니 나름의 성과인지도 모르겠다. 단조로운 일상이 소중한 것일 수 있는데 힘들었던 사건과 기억을 돌아보면 아주 넉넉히 배부른 나의 상태가 무엇을 바라는지 자꾸만 살피게 되는 것이다. 인간은 힘들지 않은 상태로만 만족하며 사는 것은 아니구나. 일상의 재미나 의미 같은 것들을 찾기 위해 애쓰는 중이다.
"너~무 심심해!"
열심히 일했고 적당히 끝났고 집에 가면 됐는데 여간 답답한 마음이 드는 게 아닌가! 집에 가기 싫고 회사에 있기도 싫고 어디라도 가고 싶은데 그게 어딘지는 안 정해진. 그냥 한마디로 "너무 심심해!" 너무 심심한 나머지 뇌의 구불구불 나있는 근육을 줄줄 풀어 줄넘기를 하는 이미지까지 상상했다. 고로, 일은 끝났지만 집에 가지 못하고 회사 근처 카페에 앉아 글을 쓰는 지경에 이른다. 뭔가 무료해. 뭔가 지루해. 재미가 없어. 잠시 SNS와 친구들의 근황 구경으로 무료함을 달래고, 다시 글을 쓰자니 알 수 없게 된 날씨처럼 공허가 몰려온다. 공허는 날씨인가 보다. 종잡을 수가 없다.
그러다가 알게 된 책에서 답을 찾아 이 글이 마무리되었으며, 떠도는 공허를 붙잡았다.
[우리가 사랑한 내일들]_유선애 인터뷰집
유선애 에디터가 10명의 90년대생 여성들을 인터뷰한 내용을 책으로 엮은 것이다. 각자의 기준으로 삶에 충실한 이들을 보며, '이러니까 내가 지금 재미가 없지.'라고 느꼈다. 각기 다른 분야의 이름을 알린 여성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공통의 마지막 질문은 {삶 속에서 되고 싶고, 기꺼이 사랑하게 되는 여성의 모습이 있다면요?}이다. 결국 인터뷰 내용과 그들의 삶을 대하는 태도는 같았다. 10명의 공통점인 만큼 (당시) 20대. 여성.이라는 주제를 갖고 있긴 하지만, 이를 저마다 자신에게 적용해 보아도 전혀 무리는 없을 것이다.
나는 어떤 삶의 모습이 되고 싶은가, 그런 태도를 어떻게 전달하거나 말하고 싶은가. 살펴보면 별로 그런 건 생각하지 않고 지낸다와 가깝지 않은가! (이러니 재미가 없지!) 스스로도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 어떻게 되고 싶은지 생각하지 않고 있으면서 어떻게 일상에 무료함을 달래려 했는지 모르겠다. 무언가 시도하고 노력하고, 그 의미만으로 결과보다도 과정이나 행위 자체를 즐기는 것. '삶에 충실함'이 없는 일상은 단조로울 수밖에. 목표에 매몰된다면 또 다른 이야기겠지만 삶을 풍요롭게 하는 것 또한 그 안에 녹아있는 것이다.
의미와 미래지향점이 분명하지 않더라도 희미한 선만으로도 충분하다. 그렇게 쌓아가다 보면 언젠가 닿을 수 있지 않을까. 책의 공통 질문을 독서모임에 들고 가 던져보았다. 저마다 다른 답을 했지만, 하나의 의미를 향한다고 생각한다. 자신을 아는 것과 그런 모습이 되기 위해 노력하는 것. 이게 맞든 아니든, 알 수 있든 없든, 저마다 원하고 되고 싶은 모습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 기꺼이 그런 자신을 사랑하기 위해 노력함. 삶의 보물찾기 중 하나를 찾은 듯하다.
나는 내 삶을 하여금 어떤 모습을 그리고 싶은 걸까. 무엇을 쓰고 무엇을 말하며 무엇을 먹고 어떤 행동을 하고 싶은지. 그러기 위해서는 자신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차근차근 풀어나가야겠지. 삶은 기니까. 일상은 짧고 시간은 멈추지 않으니까. 나의 속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