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윤음 Aug 11. 2024

그때 우리, 지금도 우리.

일상의 소중함

 사실 그 모임을 가기 전부터 고민이었다. 약속 이틀 전까지도 안 가는 쪽으로 기울어있었고 친구와 적당한 핑계까지 모의를 하던 중이었다. 일상의 겹침이 없는 관계는 참 유지하기 어려운 법이다. 재작년, 퇴사를 하고 유럽여행을 떠났다. 코로나 시국에 혼자 장기간 여행은 걱정되기도 하고 계획과 일정을 짜는 것조차 귀찮던 지라 사람들과 함께 여행을 했다. 그렇게 약 한 달 정도의 시간 동안 동행했고 귀국해서도 한두 번 만나 반가움과 추억을 나누었더랬다.

 당시 같이 방을 쓰던 언니가 곧 결혼을 한다고 하여 갑자기 일사불란 성사된 자리였다. 만난 지 1년이나 더 지났고, 그동안의 연락도 없던 지라 어쩐지 모를 부담감과 이질감으로 인해 자리를 피하고 싶었다. 청첩장을 직접 전해주는 모임이라.. 식대와 축의, 일정과 이후 이 연결은 어디까지 지속될까 하는 현실의 숫자들이 머릿속에서 룰렛을 돌렸다. 꽝은 예정된 듯한 룰렛이었음에도 이런 룰렛을 돌리고 있는 내 모습에 한숨이 절로 나왔다.

 청첩장만이 이슈는 아니었고, 모임의 한 친구가 한 달 전 교통사고를 당해 큰 수술을 했다고 했다. 각지에서 모이는 터라 장소는 현재 회복 중인 친구의 집으로 결정됐다. 결국 거절과 거짓에 능하지 못한 자는 순순히 피로를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게 더 마음 편한 길이니 어쩌랴. 며칠간을 고민했지만 가기로 결정하니 그에 따른 이유들이 따라붙었다. 관계에 있어 베푸는 것이 좋은 사람을 알아볼 수 있는 기회라는 생각과 여행  사진을 들여다보니 언니가 보고 싶었다. 크고 작은 선택에도 신중한 편이지만 정하고 나면 마음에 드는 이유들을 떠올릴 수 있어 참으로 다행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는 그 자리에 가길 참 잘했지 싶다. 사고를 당한 친구는 다리를 심하게 다쳐, 한 자세로 오랫동안 있는 것도 불편한 상태였다. 한때 추억을 나눈 이가 이렇게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참으로 쉽게 못 본 체 지나치려 했다니. 처음에 왼발을 구부린 채 마중을 나와 난 친구의 다리가 없는 줄 알고 2초 사이에 눈물을 쏙 뺄 뻔했다. 잠깐이지만 놀란 가슴을 지금도 쓸어내리면서 쓴다. 수술을 하고서도 못 걷게 될 줄 알았다며 천만다행이라고, 많이 좋아지고 있다고, 그저 참으로 다행이라고 입모아 반가움과 안도를 끌어왔다.

 그런 친구를 케어하기 위해 어머니가 집에 계셨는데 초등학교 이후로 이렇게 친구 집에 놀러 와 부모님을 뵙고 대화 나눠 본 적이 있었던가. 당당하고 멋진 친구의 성격이 어디서 왔나 했더니 어머니로부터 온 것이었구나, 친구와 꼭 닮은 다정한 두 사람을 보며 포근함을 느꼈다. 

 나는 부모님 세대의 어른과 이렇듯 즐거운 수다를 이었던 적이 있었던가. 식탁에 둘러앉아 이런저런 얘기들을 나누었다. 자연스레 언니의 결혼 얘기와 좋은 사람을 만나고 연애하는 법에 대한 언니와 어머니의 특강이 이어졌다. 실제로 언니도 예비부부교실에 다니면서 배우게 된 내용과 어머니의 경험이 결합된 유익한 시간이었다. 요즘 내가 지내는 일상에서는 알지 못했던 이야기들이었다.

 우리끼리만의 수다에서 그간의 근황들이 이어졌다. 1년 정도의 시간이 지났지만, 이렇게 모이니 다시 유럽으로 돌아간 것만 같았다. 그때가 얼마나 더웠던지 오빠는 물수건과 얼음물을 꼭 챙겨 다녔었다. 언니는 동생과 꼭 커플룩으로 입었었는데, 동생이 벌써 다음 달 제대를 한단다. 유럽에서 담배 피우는 모습까지 멋졌던 친구는 이후 한국에서의 연애로 금연에 성공했다는 이야기까지. 학창 시절 친구들을 만나면 그때로 돌아가듯이 짧은 시간이었지만 동고동락했던 사람들을 만나니 그때로 돌아간 듯했다.


 그동안의 근황에서도 기쁘고 슬픈 다양한 소식에 두 손 가슴 앞에 모으고 손뼉 치며 몸을 젖히고, 알게 되었다. 일상의 소중함과 관계의 소중함을. 하마터면 이런 순간들을 놓칠 뻔했다니. 이야기가 끊이질 않는다는 것이 이런 것이겠지. 그 안에 너무나 감사한 것은 이야기 나눈 모든 일에 '잘됐다. 다행이야. 축하해. 고생했어. 잘 될 거야.'로 점철될 수 있다는 것. 소중한 관계는 만들어가는 것임을. 무뎌지는 일상과 나이 먹어 감에 기분 좋게 꿀밤먹일 수 있었다. 


 다음엔 더 좋은 소식들을 나눌 수 있기를 바라며.

 또 봐요 우리.


작가의 이전글 독서모임이 좋은 이유 2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