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 유적기

유럽 여행기 3

by 윤음


오늘 둘러볼 곳은 키르쿠스 막시무스(로마의 옛 전차 경기장)와 아벤티노 언덕, 비밀의 열쇠 구멍, 진실의 입이었다. 로마의 7월은 햇빛 아래로 발을 내딛을 때마다 마음의 준비가 필요했다. 파아란 하늘과 함께 숨구멍을 막는 듯한 더위가 덮쳐오기 때문이다. 지하철역에서 나와 바로 앞에 보이는 거대하고 황량한 전차 경기장 터와 잔해들을 보자, 유물들이 갖는 오묘한 힘에 이끌렸다. 전차경기장에 바람이 불 때마다 모래 파도가 크게 일렁였다. 어찌 보면 이 넓은 공간에 잔디를 깔고, 공원이나 다른 용도로 활용할 수도 있지 않았을까. 하지만 텅 비어 황망한 터가 분명하게 남아서 말하는 바가 있다고 느꼈다. 그 아무리 위대했던 역사라 해도, 영원한 것은 없다고, 영원하지 않지만 그 또한 의미가 없지 않다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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빙 둘러 아벤티노 언덕으로 향했다. 모래와 햇빛의 멈추지 않는 공격을 받다가 다다른 아벤티노 언덕은 마치 안전 가옥 같았다. 커다란 나무들이 바람에 맞춰 춤을 추며 그늘을 내어주는 곳. 경치를 보며 나무 아래 벤치에 앉아 땀을 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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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언덕에서 조금만 더 가면 비밀의 열쇠 구멍이 있는 곳이다. 찾으려 애쓰지 않더라도 작은 열쇠 구멍으로 바라보는 그 한 장면을 위해 사람들이 줄을 선 것을 볼 수 있었다. 솔직히 이 뙤약볕에 늘어선 줄을 보고 포기하고 싶었다. 사진 찍는 것을 좋아하지만 이렇게 까지 할 일인가 싶을 정도. 짧은 순간에 온갖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내 사진에 대한 열정, 여행의 의의, 살이 익을 것 같은 햇빛과 줄줄 흐르는 땀, 이곳까지 오기 위해 들인 발품, 역사적 의미, 기록과 호기심. 약 3초 후, 인내의 침을 삼키고 줄을 선 나는 그중에 어떤 것에 더 많은 무게를 기울인 것인지 아직까지도 잘 모르겠다. 더위를 외면하기 위해 앙다문 입과 온몸의 땀줄기를 기꺼이 느끼며 기다림에 찍은 사진. 구멍을 들여다 보고, 사진의 초점을 맞추고, 찰칵임을 대여섯 번 기울이고 재빨리 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어딘가 모르게 뿌듯했다. 이 사진이 상징적인 이유는 사진을 찍으려 서있는 곳과 수도원 내부 직후 영토는 로마이며, 열쇠 구멍 안으로 보이는 숲길은 몰타기사단 나라의 영토, 성 베드로 성당이 보이는 곳은 바티칸 시국으로, 이 3개국을 담을 수 있다는 것에 있다. 역사에 대해 잘 알지 못하지만 유럽 여행에서 역사를 빼면 반쪽짜리임을 시간이 갈수록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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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걸어서 조금만 더 가면 진실의 입이었다. 이 코스가 그리 멀지 않은데도 뜨거움이 걸음걸음마다 나를 붙잡았다. 지도상에서는 가까운 거리여서 가죽 샌들을 신고 가벼운 마음으로 왔건만, 가죽이 바닥의 열기를 타고 내 발을 요리했다. 정확하게 잘 익은 족발이 되어가고 있었다. 진실의 입 앞에서 오드리 햅번처럼 예쁘게 사진을 찍고 싶었는데 족발과 육수를 곁들인 한국인에게 예쁜 인증샷은 무리였던 것이다. 지금 다시 보면 그때 흘렸던 땀이 생각나 너털웃음 지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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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까지 보고 숙소로 피신을 가야만 했다. 더는 이 뜨거운 태양 아래 머무를 수가 없었다. 오아시스를 찾듯 커다란 아이스크림 모양을 보았던 가게로 들어가 젤라또를 사 먹었다. 역시 이탈리아에선 1일 1젤라또! 젤라또 만만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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