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의 아침

유럽 여행기 2

by 윤음


간신히 로마에 도착하니 새벽 1시가 훌쩍 지나 있었다. 도착하고 3주가량은 숙소와 차량 이동, 간단한 시내 투어가 포함된 새미 패키지를 예약해 두어서 다행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여행을 떠나기 삼일 전까지 근무였고, 퇴사를 앞두고 주변 정리로 바빠 여행에 대한 일정은 고사하고 짐 꾸리기만으로도 빠듯했다. 짐을 찾고 나오자마자 마주친 인솔자님! 어찌나 반갑던지.. 차로 이동하면서 스산한 거리에 은은한 조명의 건물들을 마주하자 여기가 유럽이라는 것이 실감이 났다. 피로를 잠시 잊고 내가 이 먼 땅에 왔음을 실감했다.


이 밤에, 피로로 기름진 이마와 축 처진 어깨에도 놀라워하며 사진 찍은 엘리베이터! 이게 엘리베이터라고요? 비상구 아니고요? 26인치 캐리어와 사람 두 명이 간신히 들어가는 비좁은 공간이 엘리베이터라니. 유럽은 오래된 건물을 허물지 않고 보수하여 쓰기 때문에 엘리베이터가 없는 경우가 많다고 했는데, 그렇게 만들다 보니 어쩔 수 없는 구조였던 듯하다. 지내다 보니 엘리베이터는 자주 고장이 나 멈췄고, 그 작고 막힌 공간에 사람이 갇혀 엉엉 울며 나오기도 일쑤였다. 인솔자님은 늦은 시간에 호텔까지 이동, 체크인, 인터넷 연결까지 도와주셨다. 겨우겨우 혼자가 되어 객실 침대에 대자로 뻗고 나서 확인한 시간 02:56 AM. 으아! 하는 소리가 절로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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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베이터 문과 내부


로마에서의 아침




그 컴컴한 밤에 새로운 것들을 마주해서 일까, 기내에서 쪼개서라도 잠들었던 탓일까, 여행의 설렘 때문일까 잠을 청한 지 3시간도 되지 않아 일어나 창문을 열어 아침 햇살을 맞았다. 내가 이곳에 왔구나. 멀리, 멀리 날아 손에 쥐고 있던 것들을 놓고 이 먼 땅에. 몇 시간 전까지의 고됨이 햇살에 녹는 듯했다. 호텔을 나와 천천히 걸었다. 근처에 카페에서 아침을 먹으려 했는데 찾은 곳은 구글맵과는 다르게 오늘 쉬는 듯했고, 기웃기웃하다 찾은 카페에 들어가 라떼와 샌드위치를 시켰다.






가족끼리 운영하는 카페인 듯 보였는데, 젊은 남자가 챠오~ 하는 인사와 함께 무심하면서도 경쾌하게 주문을 받았고, 옆에서 굉장한 노련미와 전통을 담아 커피를 내어줄 것 같은 할머니 바리스타가 커피 머신 앞에서 바지런히 손을 움직이셨다. 척척 커피를 내어주는 할머니의 동작에 분명한 프라이드가 느껴졌다. 커피를 받으면 배운 인사말을 꼭 하고 싶었기에 그녀의 동작을 유심히 보며 주문한 커피를 기다렸다. 그리고 드디어 내 커피! "그라찌에(Grazie-감사합니다)!" 그리고 그녀는 별일 아니라는 듯하지만 확실하게 눈을 맞추며 대답해 주었다. "쁘레고(prego-천만에요)"

커피와 샌드위치를 들고 구석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이탈리아 커피가 그렇게 맛있다던데! 유일하게 스타벅스를 찾아보기 힘든 나라,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취급하지 않는 나라. (판매하는 매장도 종종 있었지만 대부분의 경우 찾기 어려웠다.) 나도 커피를 좋아하지만 처음부터 에스프레소를 시킬 염두가 나지 않아 주문한 라떼는 부드럽고 생각보다 연했다. 물론 맛있었다. 이 카페의 단골로 보이는 손님은 에스프레소를 들고 서서 그 자리에서 몇 모금 마시며 젊은 남자와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었다. 홀 담당으로 보이는 할아버지 직원은 테이블을 정리하고 바닥을 쓸고 문을 잡아주곤 했다. 카페에 머무르며 이탈리아의 문화 속으로 들어온 듯했다.


이탈리아 문화 속으로 with 커피


할머니 바리스타와 할아버지 직원을 보며 한국의 노인 분들이 떠오르지 않을 수가 없었다. 조금은 무거운 얘기지만 여행을 떠나기 몇 달 전, 할머니의 장례를 치른 참이었다. 시골에서 농사를 지으시며 7남매를 키우신 할머니. 농경 인구가 많았던 그 시절의 노년과 현대의 노년. 어쩔 수 없는가 싶다가도 나아갈 방향성이 어렴풋해 보이기도 한다. 노인이 되어서도 일을 해야 하는가로 질문하자면, 누군가는 매몰찬 시각이라고 말할지 모르겠다. 죽을 때까지 일을 해야 한다는 무심한 지적도 아니다. 그들은 충분히 보호받아야 하고, 돌봐드려야 마땅하다. 하지만 한편으로 그들 또한 노련미와 정통성으로 하여금 빛이 날 수 있다. 우리가, 아니 내가 간과한 사실이었다. 그들이 인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오래도록 빛이 나기를. 그들의 빛이 이미 소멸했을 거라 여기며 외면하지 않는 이가 많아지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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