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행은 참 늪 같다.
첫 걸음은 그리 대수롭지 않다.
누가 내 험담을 한 걸 알았다던지
지난 주보다 1.5kg 정도 늘었다던지
상사에게 꾸사리를 먹었다던지.
두번째 걸음은 좀 무겁다.
내 험담을 했다는 지인이 괘씸해진다.
'뭐야. 지난달 지 생일 때 선물까지 했는데'
맛있는 건 0칼로리랬던 친구에게 짜증이 난다.
'망했어. 옆구리 잡히는 것 봐...'
상사의 말은 곱씹을 수록 고깝다.
'업무 시간에 페북만 하면서 지가 뭘 알아.'
세번째 걸음부턴 늪이다.
내 험담을 했다는
지인의 옷깃만 봐도 불쾌해진다.
늘어진 볼살에 거울 볼 때마다
짜증이 솟구친다.
상사가 콩을 콩이라 해도 아니꼽다.
감정의 늪이 무서운 건
이 감정에 머물러봤자 좋을 게 없단 걸 알면서도
계속 파고들게 된다는 것.
맨날 보는 것도 아닌 지인이 그리 버겁다면
단톡방은 읽씹하면 그만, 만남은 피하면 그만.
하지만 '그가 미워'란 늪에 빠지면
그 단톡의 행간마저 해석하려 들게 된다.
살 좀 쪘다면 이제부터라도
덜 먹고 더 움직이며 관리 좀 하면 그만.
하지만 '나 살 쪘어'란 늪에 빠지면
밥도 데이트도 쇼핑도, 세상 즐거운게 사라진다.
(그러다 잔뜩 먹고 잠만 자게 된다.)
상사의 말 중 옳은 건 받아들이고
틀린 건 듣고 흘리면 그만.
하지만 '저 사람은 잘못됐어'란 늪에 빠지면
그의 일거수 일투족에서 꼬투리를 잡게 된다.
그야말로 늪이다.
불행으로 침잠하는.
그러다 어느 순간
그 불행의 늪에서
나도 모르게 빠져나올 때가 있다.
그건
불행을 초래한 갈등이
해소되었을 때가 아니다.
(대개 그런 갈등은 완전히 해결되지 않는다.)
젖먹던 힘까지 끌어모아
불행한 생각을 하지 않게 되어서도 아니다.
(늪에선 힘을 주면 더 빠져 들어간다.)
그건,
미처 몰랐던
행복한 뭔가에 눈떴을 때다.
그래서
그 불행에서
이 행복으로
눈으로 돌리게 될 때다.
방금 메일로 받은 가족 사진 몇 장이
나를 불행의 늪에서
행복의 숲으로 순간이동시켰다.
'내가 이렇게 아름다운 곳에서 살고 있었네.'
'우리 딸, 정말 해맑게 웃는구나.'
'아가씨 시절 샀던 옷, 아직도 잘 어울리네?'
'우리 남편 어깨 좀 봐. 세상 든든해.'
'이 날 햇볕이 정말 좋았어. 정말 다행이다.'
우울의 순간,
사소한 행복에 집착해야 하는 이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