꽤 가깝게 지내던 A와 갈등이 생겼다.
마냥 좋던 사이에 금이 가기 시작한 건
지난 여름이었다.
A는 나를 오해했다.
그 오해가 증거없음으로 판명난 후에도
A는 사과하지 않았다.
막역한 사이라
그걸 말로 해야 알겠냐 싶었던 걸까.
가까운 사이라
더 자존심 세웠던 것일까.
혹 아직도 자신의 오해를
옳다 생각하는 것일까.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며
A와의 골은 드라마틱하게 깊어졌다.
요즘은 A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 촉각을 세운다.
확신하고 싶은 거다.
A의 행동에 대한 나의 분노가
잘못되지 않았다고 확인 도장을 받고 싶은 거다.
이를테면 이런거.
'것봐. A 정말 너무 하지 않냐?'
'맞어. A는 원래 그런 사람이었어.'
A의 뭐라도 하나 거슬리는 날은
가깝게 지내는 B와 C, D에게
하소연을 하는 날이다.
치졸하게도 '답정너'가 되어
내 편을 들어주길 바란다.
어제도 그랬다.
A는 내게 상처가 되는 질문을 했다.
순간 무례하다고 느꼈고 우린 다퉜다.
분노로 휘갈긴 나의 메시지를 받은
B와 C, D의 반응은 다 달랐다.
B : 내가 보기에 A는 답이 없어. 그냥 쌩까.
C : 그랬구나. 니 맘이 많이 안 좋았겠다.
D : ...... 내 생각엔 A가
그런 의미로 한 말은 아닌 것 같아.
B의 반응은 날 우쭐하게 했다.
나의 분노가 정당하다고 맞장구를 쳐줬으니까.
C의 반응은 날 편안하게 했다.
나의 슬픔을 토닥여주는 느낌이랄까.
D의 반응은 불편했다.
그는 지금 내 분노와 슬픔은
'불필요'하다고 했다.
D가 아는 'A'는 그렇게 말 속에
칼을 숨기는 사람이 아니라 했다.
D가 아는 '나'는 얼마 지나지 않아
지금 이 미움의 시간을 후회할 거라 했다.
그 후회를 최소화하기 위해
지금 A에 대한 감정을
섣불리 표현하지 말라 조언했다.
......
분명 내가 듣고 싶은 답은 아니었다.
하지만 나의 분노 역시 오해일 수 있다고,
D의 말을 듣고 처음 생각했다.
A와 가깝게 지내던 시절의 일기를 꺼내보았다.
이걸 내가 적었나 싶게 일기는 생소했다.
A에게 느낀 존경심, A에게 받은 배려.
A의 삶에서 배운 것, A에게 진 빚.
'아, 그랬었지.'
그가 나를 오해한 것처럼
나도 그를 오해하고 있을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지난 여름 이후 처음이었다.
내 편을 들지 않았다고 내편이 아닌 게 아니다.
내 편은 때론 맞장구를 치고 때론 날 토닥이며
어떨 땐 아픈 조언을 꺼내기도 한다.
그간 내가 받아온
숱한 맞장구와 토닥임에 감사하다.
동시에 아픈 조언을 건넨 이들에게
큰 빚을 졌다.
더없이 따뜻하고 아늑했을지나
맞장구와 토닥임에만 길들여졌다면
서른 몇 살 먹어
세 살 아이 마냥 자기 감정만
앞세우는 이로 살았을지도 모른다.
서른 몇 살 먹어
때론 맞장구로, 토닥임으로
때론 날선 조언으로
내 편을 들어준 내편들이
새삼 고맙다.
그런 내 편 중엔
다시 들춘 기억 속의 A도 있었다.
그 따뜻한 기억을 갖고
그와 이야기를 시작해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