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친구들과 한 잔했다.
니가 힘드네 내가 힘드네
그놈이 나쁘네 저놈은 더 나쁘네
각축전이 벌어지던 참이었다.
폰을 꺼내 딴짓하나 싶던 후배가
튕기던 엄지손가락을 멈추고 폰을 들이민다.
"이거 읽어보세요."
그가 내민 건 쌩뚱맞게도 '시'였다.
'그렇게 못할 수도'란 이름의.
술기운은 사람을
북극에서 남극으로 이동시킨다.
좀 전까지만 해도 불행의 끝을 달리던 우리는
순식간에 감사의 끝을 달리고 있었다.
우린 햇수로 9년 째
연말을 복작거리며 보내고 있다.
"암, 이렇게 못할 수도 있었지.
불편한 술자리가 얼마나 쌔고 쌘디."
우린 킹크랩의
내장과 밥알을 비비고 있었다.
"암, 이렇게 못할 수도 있었지.
돈없어봐. 꽃게랑도 사치여."
우린 성능좋은 난로 옆에 앉아
부채질에 여념이 없었다.
"암, 이렇게 못할 수도 있었지.
추워봐라, 술 맛나나."
우린 별안간 따뜻한 연말을
사는 사람들이 되어 있었다.
"암, 이렇게 못할 수도 있었지.
이런 시 백 편 읽어봤자 '어쩌라고'
하는 놈도 얼마나 많은데."
술이 얼큰-하니
참 달던 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