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운이 나빴다.
몸이 아팠고, 일로 인한 상실도 맛봤다.
며칠 전 도둑이 집을 부수고 간 순간
올해는 빼도박도 못하는 '재수없는 해'가 됐다.
값있는 모든 것을 가져간 그놈에게
월척은 내 다이어 반지였을게다.
뭐 하나 욕심낸 것 없는 결혼에서
딱 하나 공들이고 돈들인 내 티파니.
연말 백화점 벽에 떡하니 붙은
티파니 광고를 보니 가슴이 쓰렸다.
금은방만 지나도 속이 아팠다.
액땜한 셈 치겠다는 말을
주문걸듯 반복하며
난 점점 괜찮지 않아졌다.
가진 것 중 가장 값진 것이었다.
어젯밤, 그놈의 액땜타령을 하며
초콜릿을 우적우적 씹어먹고 있었다.
엄마가 화장품 하나를 들고 나오신다.
거기서 나온 건 왠걸,
휴지에 돌돌 말린 엄마의 결혼예물이다.
서른 몇 해 전 스물 몇 살의 엄마가
신길동 금은방에서 산 그 다이아.
허전할테니 끼고 다녀.
원래 너 주려 했어.
휴지에선 외할머니의 반지가 마저 나온다.
이건 못줘.
이건 엄마 죽으면 줄게.
생각해보면
도둑보다 더한 것도 숱하게 겪었다.
스물 셋 여행길엔 죽을 위기도 있었다.
그 다음 해에 차이고선 진짜 죽고 싶었다.
간절했던 시험에 떨어져도 봤다.
사람에 치이며 무인도행을 꿈꾼 적도 많았다.
그땐 정말 세상에서 내가 제일 불쌍했다.
근데, 다 잊었다.
이제 남의 기억 마냥 흐릿하다.
내 삶에서 지워지지 않을 고통은
단 하나,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 뿐이다.
몇 년, 몇 십년이 지난다 해도
괜찮아지지 않는 건
아무리 생각해도 그 뿐이다.
사랑하는 이를 잃지 않은 올해는,
그래서 아무래도 괜찮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