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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만세 Feb 05. 2022

마음을 다해 대충 한다는 것

안자이 미즈마루 : 마음을 다해 대충 그린 그림

제 이름을 썩 좋아하지는 않지만 ‘윤’이라는 한 글자에 대한 애정만큼은 어린 시절부터 분명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 글자에 담긴 ‘진실로'라는 의미가 마음에 들었기 때문인데요. 나름대로 진실에 가까운 것들을 추구하면서, 진심이 느껴지는 것들에 누구보다 크게 감탄하며 살아오면서 이 글자가 사실은 내 삶을 관통하는 주제이지 않을까 어렴풋하게나마 생각해 왔습니다.


진심이란 뭘까요?

뭔가를 간절히 바라고, 엄청나게 노력을 다하고, 열정이 폭발하고, 눈물이 줄줄 나고 막··· 이런 것들을 떠올릴 수도 있겠으나 제가 추구하는 진심은 자연스러운 것, 편안하고 왠지 모르게 웃음이 나는 것에 가깝습니다. 뭔가를 봤는데 픽 웃음이 난다 → 관심이 생겨 찾아보다가 → 누가 만들었는지 알게 되고 → 그 사람에 대해 알아가면서 → ‘아니, 이건 뭐지???’하는 순간을 만난다. 뭐 대충 이런 흐름이랄까요?


‘누가 어떤 마음으로 그 일을 했느냐’가 저에게는 무엇보다 중요한 진심의 기준입니다. 예를 들자면, 우연히 들은 음악에 감명받아 제목을 적어두고 다른 곡도 찾아 듣다가 더 궁금해져서 인터뷰를 찾아보았는데, 그 뮤지션이 어떤 (생각을 하는) 사람인지 알게 되고 음악을 만든 배경까지 이해하게 되자, ‘그 사람’이 한 것이라면 뭐든지 다 좋아져 버리는···! 과정과 비슷하다고도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런 경험 한 번쯤 있지 않나요? 

뭔가 좋아할 수는 있지만 그것을 매개로 그 사람까지 알고 싶어지는 것, 알아가면서 좋아하는 이상으로 좋아하게 되는 것은 조금 다른 차원의 이야기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아무튼 제가 추구하는, 제가 말하고 싶은 진심이란 그렇습니다. 이런 방식으로 저의 진심의 세계는 조금씩 확장되어 왔는데요. 2016년의 어느 날, 선물로 받은 책을 슬렁슬렁 넘기다가 이 문장을 만난 순간도 딱 그랬습니다.


최갑수 <우리는 사랑 아니면 여행이겠지>


이 문장을 보는 순간 ‘뭐지???’ 싶었습니다. 누구의 말인지 알게 된 순간, 깜깜하게 불이 꺼져있던 뇌에 쨍-하고 직사광선이 비치는 것 같았죠. 제가 좋아하는 일러스트레이터 안자이 미즈마루 씨의 말이었거든요···! 아아, 이 순간 저는 제가 왜 안자이 씨의 그림을 좋아할 수밖에 없었는지 깨닫고 말았습니다.


아니, 너무나 솔직하지 않습니까? 제가 지금까지 어렴풋이 추구해온 ‘진심'이 비로소 그 모습을 드러낸 느낌이었어요. <안자이 미즈마루 : 마음을 다해 대충 그린 그림>에는 이것 말고도 ‘있는 그대로의’ 문장이 가득합니다. ‘마음을 다해 대충 그린다니. 이게 말이 되는 소리냐?’고 생각할 분들을 위해, 한 가지 사례를 들어볼게요. 안자이 씨가 ‘후와후와’라는 그림책을 만들 때의 이야기입니다.


고양이 이야기이므로 고양이를 그리면 된다고 생각하겠지만, 일러스트레이터로서 표현해야 하는 것은 그 ‘폭신폭신'한 느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게 참 어렵더군요. 날마다 ‘폭신폭신' 생각만 했습니다. ‘폭신폭신'이란 어떤 느낌일까. ‘폭신폭신, 폭신폭신'하고 다른 일을 하면서도 ‘폭신폭신'이란 말만 생각했습니다. 한참 생각한 끝에, 고양이 전체를 그리는 게 아니라 부분적으로 표현해서 저 나름대로 ‘폭신폭신' 느낌을 냈는데, 어떠신가요? 여기서는 사물에 그림자를 넣지 않았습니다. 이것도 ‘폭신폭신'한 느낌을 위해서였습니다.
무라카미 하루키 글, 안자이 미즈마루 그림 <후와후와>


그림만으로는 대충 그린 고양이처럼 보이지만 실은 이런 의도가 담겨있는 것입니다! 이 시점에서 책에 실린 미나미 씨의 말을 인용할 수밖에 없겠네요. 안자이 씨는 자신이 ‘좋네’하고 생각하는 그림을, ‘좋네’하고 생각할 수 있을 때까지 그려서, ‘좋네’라는 생각이 들 때 마무리했습니다.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하겠어’ ‘세상을 놀래주겠어’ ‘한껏 웃겨주겠어’ 그런 이유가 아니라 말이죠. 언제나 그런 ‘진검승부'로 그려온 안자이 씨의 그림이 제 기분을 좋게 하고 편안하게 하고, 어이없어서 웃음이 나오게 했던 것입니다.


d design travel의 표지를 오린 것(죄송합니다..)과 일본의 작은 문구점에서 발견한 엽서. 안자이 씨의 그림은 딱 보면 엇! 하고 바로 알아볼 수 있습니다.


일본에 갈 때마다 서점에 들러 "안자이 미즈마루노 혼와 아리마스까?"라고 묻습니다. 혹시 새로운 책을 발견할지 모른다는 마음으로요. 그렇게 하나하나 모은 책들.


우동을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미즈마루+하루키 콤비가 다녀간 우동집이 있다는 친구의 말에 우동투어를 다녀오기도 했습니다. 덕분에 지금까지 먹었던 우동은 우동이 아니었음을 깨달았죠.


그러고 보니 만쥬님도 첫머리부터 ‘대충 하자'고 이야기했는데요. 이 코너 역시 ‘마음을 다해 대충대충’ 진행하게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하지만 너무 걱정하지는 마세요. 마음이 담긴 것이라면 그 형태가 어떻든 ‘이거 너무 대충 한 것 아냐?’라는 생각이 들지는 않을 테니까요.





흠, 이거 흥미로운데?라고 느낄 법한 콘텐츠를 격주로 전달하는 흠터레터의 <완전진짜너무진심> 코너를 브런치에도 옮깁니다. 흠터레터를 구독하시면 다른 꼭지의 흥미로운 이야기를 함께 만나볼 수 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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