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이 된다는 건 무엇일까
샤워를 하다가 '어른이 된다는 건 무엇일까' 같은 생각을 잠시 했던 것 같다.
젖은 발로 카펫 바닥을 밟으면서 미국에 있었을 때 살았던 카펫 깔린 집과, 바닥을 청소하던 엄마에 대해 생각했다. vacuum과 손걸레 같은 것.
나는 그 집에서 놀고, 자고, 이렇게 저렇게 또 놀았다. 노래를 부르고, 그을리도록 돌아다니고, 글을 쓰고, 모험 소설을 읽고, 싸우고, 투정부리고, 공부하기 싫어 울고, 언니를 따라하고, 똘망똘망한 어린 목소리로 헤헤- 싱글거리면서, 혹은 억울한 눈물을 뚝뚝 흘리면서.
늘 일을 해왔고, 기억 속에선 항상 아이같고 개구장이 같은 엄마와, 점점 뿌리를 내리고 가지를 뻗는 아빠에 대해 생각한다. 아빠는 기다랗고 가는 나무에서 멋지게 주름져 가는, 둘레가 굵은 성목이 되었다. 엄마는 이야- 노래를 부르며 날아다니다 밑둥에 몸을 누이고 잠에 든다.
나도 어떤 어린이가 세상을 탐험할 수 있게, 상상할 수 있게 도와줄 수 있는 사람이 될까?
그것이 어른이 되는 것일까? 나는 그런 어른이 될 수 있을까? 되고 싶을까?
계산하고, 피곤하고, 반복적인 사람. 내가 좋아하던 어른들은 별로 그런 모습이 아니었는데. 내 손등에 다섯 손가락을 누르며 각각의 다른 무게를 짚어주고, 연주하는 내 옆에서 발레리나처럼, 선율의 뾰족함과 부드러움을 몸으로 보여주던 피아노 선생님이랄지, '뻗히다와 뻗치다의 차이가 뭘까? 왜 히-가 아니라 치-를 썼을까?' 물으며 시의 아름다움을 처음 느끼게 해준, 수업마다 꽃잎들을 흩뿌리고 갔던 국어 선생님도, 고슴도치를 키우고 물고기를 키우고 아이를 키우고, 그냥 대충 해도 돼, 하며 허허 거리는 예쁜 사촌언니도, 블루베리 주스를 앞에 두고, 낮고 조곤조곤한 목소리로 조경디자인과 도시설계에 대해 이야기하던 '멋진 하버드 언니'도, 도서관 강당에서 미장셴, 시퀀스 같은 신비한 단어를 써가며 영화를 설명해주던 어떤 평론가도.
심지어 헤겔 철학을 공부한다던 논술 첨삭 선생님, 똥머리를 묶고, 던킨도너츠 커피 향을 풍기며 내 글을 짚어주던 그 분도 무언가 두 눈에, 다듬지 않은 숱 많은 눈썹에 웃음자국 같은, 능글한 즐거움 같은 것이 있었는데.
반짝거림을 잃고 싶지 않다고, h는 말했다.
- 어른이 된다는 건, 책임감이 커진다는 것 같아.
h는 소설 이야기를 했다.
- 어른? 어른이 된다는 것, 요즘 그 생각을 많이 한 것 같아. 어떤 일본 소설을 읽었어. 어떤 남자랑 여자가 서로 엄청 좋아하는 건 아닌데, 안정적인 생활을 하고 싶어서 결혼을 하는데, 근데 그 여자가 마음을 바꿔. 그게 어떤 마을에서 일어나는 일인데, 이 소설 너도 알 것 같은데...
나는 어떤 마을을 상상한다. 마음을 바꾼 한 여자를 상상한다. 이야기는 여기서 더 진행되지 않는다.
- 글쎄... 어른? 어른이 된다는 건, 책임져야 하는 일이 많아진다는 것 같아. 돈도 벌어야 하고, 가족도, 나 자신도 다 내가 책임져야 하는 거니까.
마음을 바꾼 사람, 마을, 책임, Being free means being responsible....
한 사람이 떠오른다. 단발머리에 큰 눈을 가진 사람, 안나 카리나, 어떤 배우, 어떤 캐릭터, 어떤 이미지.
길쭉한 몸으로 어느 카페 이층에서 빙글빙글 테이블 사이를 돌며 춤을 춘다. 스윙 재즈가 공간을 채우고, 몸짓은 어색해도 거리낌이 없다. 무심한 시선이나 이상하다는 듯이 흘깃거리는 눈길도 카메라처럼 덤덤하게 지나친다.
수잔 손택은 이 영화에 대해 이런 말을 했다. -- 자유롭다는 것은 책임진다는 것이다. -- 자유와 책임, 자유는 책임?
이 수수께끼같은 대목은 이렇게 시작한다.
"Nana knows herself to be free, Godard tells us. But that freedom has no psychological interior. Freedom is not an inner, psychological something- but more like physical grace. It is being what, who one is."
--- 자유로움은 내적이고 심리적인 무언가가 아니라 신체적인 우아함과 비슷한 것이다. 자유로움은 나인 어떤 것, 나인 누군가가 되는 것이다.
손택은 죽고 싶다고 했던 나나, 자기 자신이 아니라 다른 사람이기를 바랐던 나나에서부터 마침내 자기의 길을 가게 된 나나에 대해 이야기한다. 손택은 영화 후반부 나나가 했던 말을 인용한다.
"나는 책임져. 난 고개를 돌려, 나는 책임져. 난 손을 올려, 나는 책임져."
"I am responsible. I turn my head, I am responsible. I lift my hand, I am responsible."
"Being free means being responsible. One is free, and therefore responsible, when one realizes that things are as they are. Thus, the speech to Yvette ends with the words: "A plate is a plate, A man is a man, Life is.... Life."
--- 자유롭다는 것은 책임진다는 것이다. 우리는 자유롭기에, 책임진다, 사물은 사물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그래서 이베트와의 대화는 이런 말로 끝난다: "접시는 접시야. 남자는 남자고, 삶은 삶이야."
삶은 삶이고, 나는 책임지기에 자유롭게 살아간다.
책임이라는 건 무엇일까, 무겁고 막중한 것일까? 내가 지금 있는 곳, 내가 내린 선택을 받아들이고 그 속에서 나의 춤을 추는 것, 내 춤을 보는 시선들을, 카메라처럼 덤덤하게 되바라보는 것.
접시가 접시이듯이, 삶은 삶이라는 걸 이해하는 것.
테이블이 있고, 사람이 있고, 음악이 있는 공간에서, 이 세상에서 나로서, 움직이는 것.
Susan Sontag, "Godard's Vivre sa vie", in Against Interpretation and Other Essay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