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에 걸친 어떤 것
2월 27일 오후 8시 6분 난방을 켠 지 얼마 되지 않아 찬 기운이 도는 방에서 M은 엉덩이를 데우는 전기 매트 위에 앉았다.
아직 겨울의 기운이 걷히지 않은 저녁이기에 M은 긴팔 긴바지의 의상을 입고 있는데, 위에는 면 100프로 안감의 남색 180cm 남성용 상의를 입었다. 포르투갈에서 생산해 삼성물산에서 수입한 이 메종 키츠네 맨투맨 가슴에는 파리지엥 (Parisien) 이라고 흰 필기체로 써 있다.
한편 붉은 색, 녹색, 청색, 노란색, 흰색의 두꺼운 선들이 수직으로 교차하는 체크무늬 바지는 면 100프로에 95사이즈로, 대한민국 예인통상이라는 제조사에서 제작했다. 장을 보던 어머니가 마트 매대에서 돌연히 집어왔을 이 옷에 자주 손이 가, 매일 저녁 M은 외출복에서 이 사각사각한 고무줄 면바지로 갈아입고 있다.
팬티는 그 감촉을 느끼기에도 오직 면으로만 이루어졌을 것 같지는 않다. 이 작은 천 조각에 붙어 있는 이름표, 빨래를 거듭해 이제는 유들유들해진 이 사각의 옷 설명서에는 이 섬유가 '조성' 혹은 '혼용'되었고 그 비율은 사용된 세 원단이 모두 다르다고 한다. 폴리에스터 90프로에 폴리우레탄 10프로가 섞인 원단 1, 나일론 70프로에 폴리우레탄 30프로가 섞인 원단 2, 그리고 면 100프로를 사용한 원단 3. (주)티에스인터내셔날코리아에서 수입한 이 속옷은 (주)롯데마트가 판매했다.
M은 그렇게 어느 한 저녁에 인도 원산의 아욱과에 속하는 식물의 종자모를 이용해 짠 천으로 만든 상의, 하의, 속옷을 입고, 이 옷들 안에서 마침내 편안하게 휴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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옷을 차려 입기가 무엇보다 귀찮았던 그날 아침, M은 외출 전 옷장에서 보이는 아무 것, 편안한 느낌을 줄 수 있는 어느 것이든 꺼내 입었다.
먼저, 색이 바래고 모양이 일그러졌지만 보온용이기에 아무렴 어떤 검은 히트택 (4-5년 전 구매? 구매처 미상, 가격 1만원 내외?) 을 입고, 그 위에 세로로 봉제선이 들어간 얇은 검은 가디건을 걸쳤다. 이 가디건에는 은색 후크가 일곱 개 달려 있는데, 잠그었을 때 한 후크와 다음 후크 사이가 벌어져 그 아래의 옷이 드러난다. 작년과 제작년에 일부 유행한 디자인이라고 할 수 있다. (1년 전후로 구매, 온라인 쇼핑몰, 6-7만원 가량)
하의는 짙은 숲색의 카고 스타일 바지를 입었는데, 바지선이 D자 모양으로 부풀었다가 발목에서 조여지는 디자인이다. M의 지인은 이를 'Kim Possible 바지 (2000년대 디즈니 채널에서 방영한 애니메이션으로 여주인공이 건빵 주머니가 달린 군대 스타일 의상을 입고, 이곳 저곳의 문제를 해결하러 다니는 에피소드들로 이루어져 있다)' 라고 불렀다. 그 말대로 이 바지는 터프하고 보이시한 인상을 준다. 다소 '힙'하고 '스트릿'해보이기도 한다. (1년 전후로 구매, 유니클로, 5만원 내외)
M은 문득 이끌려 이 착장에 베이비 핑크색 양말을 신고 (1년 전후로 구매, 유니클로, 3개 묶음에 만원), 분홍, 흰색, 빨간색이 섞여 있는, 온화한 어글리 슈즈 운동화를 신었다. (4년 전 구매, 베네통, 20만원 가량) 그리고 짙은 카키색의 숏패딩을 걸치고 (9년 전 구매, 빈폴 아웃도어, 40만원 가량) 시간에 쫓겨 현관 앞에서 거울을 바라보았다.
거의 뭐 패션 테러리스트인데?
여기서 춥다고 패딩을 목 끝까지 잠그어 버리는 순간, 이도 저도 않은 녹색 긴 타원 덩어리가 되어서, 얼룩덜룩해보이는 현란한 핑크 신발을 신은 이상한 사람이 될 것이다. 허나 그날의 기분은 '아몰랑 ㅎ' 이었으니, M은 어깨를 으쓱하고 패딩을 목 끝까지 잠근 후 현관문을 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