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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도그림 Oct 10. 2024

읽은이 되기

날이 쌀쌀해져서 그런지 이불 속에 들어가 편안히 책장을 넘기는 게 좋다. 가만히 몽상적인 시간. 문장이 만들어내는 이미지들이 어떤 느낌이나 윤곽으로서, 혹은 한 귀퉁이의 색깔만으로서 생성되었다가 점토처럼 어그러지고 변모하는 시간. 그저께는 노란 수면등이 밝히는 방에서 이불을 머리 끝까지 둘러쓰고 손가락으로 전자책을 넘기다가, 휴일이었던 어제는 아침 일찍 서점에 갔다. 종이의 촉감, 인쇄의 판형, 폰트의 반듯함, 페이지와 페이지의 거리를 한 손에 쥐는 독서를 하고 싶어서?


옷장 안에 쌓아 두었던 문예지와 단행본을 판매할 겸 중고 서점으로 갔는데 내 책들의 터무니없는 시장가를 듣고는 이들은 도로 챙기고, 한치 가벼워지지 않은 가방을 다시 짊어진 채 책장 앞에서 오래 서성이다가 계간지 하나를 펼쳐 들었다. <자음과 모음> 50호.


뒷표지에 빽빽히 쓰인 목차에서 최근 관심을 두기 시작한 번역가, 비평가, 편집자들의 이름이 보인다. 다루는 주제도 흥미로워 오늘의 독서로써 좋겠다 싶었다. 하루 종일 계속 책을 펼쳤다 내려놓기를 반복하며 특집을 중심으로 반 정도 읽었다.  



어떤 지식을 얻기 위해서가 아니라 누군가의 시선, 생각, 감정, 목소리를 따라가기 위한 독서이다. 이들은 세상에서 무엇을 보고, 무엇을 아끼며 이를 어떻게 글이라는 매체로서 형식화하여 소중히 간직할까? 문장을 사랑하고 섬세히 다룰 줄 아는 동시대 이들은 어떤 글을 읽고 쓰는가?


 "빠르게 업데이트 되고 있는 세상에서 누군가의 글을 읽는 행위는 단순하고 다정한 일처럼 느껴진다." (김효연, P. 94) 는 말처럼, 잡지에 실린 에세이 하나하나를 내게 발신된 편지인양 다정한 시선으로 소중히 읽었다. 이 글들이 일종의 '편지'라는 상상은 잡지의 머릿말에서 언급된 우편엽서에 대한 비유에서 비롯되었는지도 모른다.


데리다는 <우편엽서> 라는 책에서 글쓰기를 연인에게 보내는 우편엽서에 비유한다. 우편엽서는 그것이 쓰인 시간들의 누적적 시차, 그리고 그것이 수신자에게 도달할 때까지의 시차를 품고 있다. 또 우편엽서는 수신자가 아닌 다른 사람들도 읽어볼 수 있다는 불안, 그리고 어쩌면 배달 사고로 그 주소에 도착하지 못할 수도 있다는 불안을 품고 있다. 여기서 데리다는 이 지연과 차이로 인한 흔적들을 지닐 수밖에 없는 텍스트의 운명에 대해 말한다. [...]

잡지 역시 우편엽서와 비슷하다. 이를테면 <자음과 모음> 이번 호는 2021년 가을호이지만, 여기 수록된 글들은 올해 여름 또는 그 이전부터 쓰인 것이다. 그리고 잡지의 특성상 어떤 분이 우연한 기회에 이 글들의 수신자가 될 지 알 수 없는 일이다. 따라서 이 책도 누군가에게 읽힐 때 쯤에는 수많은 차이를 오롯이 간직하고 있을 터다. 그럼에도, 보내는 즉시 전달되고, 수신 확인까지 할 수 있으며, 무엇이든지 더 생생히 전달할 수 있는 온라인, 동영상 매체의 세상에서 여전히 글을 쓰고 문예지를 만들는 것은 그런 무수한 차이들이 의미들을 만들어낼 것임을 믿기 때문이다.

안서현, P. 4



2021년 가을의 잡지니 어느덧 3년의 시차를 두고 나에게 도달한 글들이다. 3년 전은 어떤 시대였을까, 이때의 고민은 어떤 언어로 쓰였을까? 이 글을 쓴 사람들은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나, 어떻게 세상을 바라보고 무엇을 느끼며 쓰는가? 나의 읽기는 과거 시점의 현재를 다시 지금으로 불러오는 일이다. 문단과 문단 사이에서 잠시 쉬어 갈 때면 간단히 검색을 해보기도 한다. 이 글에서 언급된 작품들은 그 이후로 어떤 재해석과 재연의 경로를 거쳤는가? 시간을 건너온 이 엽서들은 나에게 무엇이 될까?



창간 50호 기념인 이번 부수는 잡지의 읽은이가 게스트 에디터로서 특집 기획에 참여하는 구성으로 되어 있었다. 총 네 명이 초대되었는데, 이들이 제시한 주제는 큰 틀에서는 ‘읽기와 쓰기’로 수렴되었다. 자신이 인상적으로 읽은 책과 독서의 이유를 적절한 글쓰기 형식에 담아내려는 고민이 엿보이는 글들이 많았다. 이를 읽으며 나는 무엇을, 왜 읽어왔는지, 앞으로 어떤 독서를 하고 어떤 글로 내 감각과 사유를 풀어내고 싶은지 질문하게 되었다.


돌이켜보면 대학생 때부터 근 10년간 내 독서는 상당히 목적 지향적이었다. 어떤 주제에 대한 기존 논의의 지평을 알고 싶어서, 특정 이슈를 어떻게 사유할 수 있는지 그 논리와 언어가 궁금해서 책을 엄선해 발췌독 한다. 이런 독서는 마음을 다잡고 책상에 앉아 꼼꼼히 밑줄치며 요약하는 다소 긴장된 몸가짐 속에서 전개되었다. 하지만 각자 독서의 이유를 담담히 풀어내는 이 글들을 보며 내가 잊어왔던 다른 모양의 읽기를 떠올렸다. 그저 문장 속에서 다시 유희해보면 어떨까, 즐거움 그 자체를 위해 읽는다면 어떨까?



책을 고르는 일은 고독을 선택하는 일이기에 지극히 개인적이다. 그것은 한동안 내 머리 위를 덮을 하늘과 기댈 감정, 삶의 분위기를 정하는 일이다. 내가 속할 새로운 세계를 결정하는 동안 우리는 우리에게 익숙한 시간을 잃고 원래의 '나'와 기꺼이 멀어진다.

유지혜 <나의 독서 연대기와 아끼는 전차 한 권>, P. 109


혼자 놓여진 것 같은 시간을 견뎌 내게 하고 스스로를 알아가는 방법을 가르쳐주는 매개가 책이 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사람을 만나 털어놓고 웃으며 이야기하는 시간이 필요하듯이 책을 읽으며 감정을 알아내고 조용히 줄을 긋는 시간을 배우는 것 또한 필요할 겁니다.

글을 재료로 만들어진 책이라는 예술이 당신이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다정하게 읽어줄 거예요.

김효연 <읽음으로써 돌아가는 상상 속 영사기>, P. 107


일상의 시간에서 한 발 물러나서 지금 어떤 분위기 속에서 어떤 기분이고 싶은지에 따라 책을 고르기, 이 시간에 입장하는 설렘을 회복하기. 타인의 문장을 통해 나를 돌아보고 내 상황과 감정을 알아가기. 서로 다른 성격의 필자들이 각각의 방식으로, 각자의 진지함, 유머, 섬세함, 예리함, 도전성, 노골성으로 들려주는 삶의 이야기와, 이 세계의 과거, 현재, 미래, 신비와 슬픔들에 다시 매료되어 보는 것은 어떨까 싶었다. 그리고 좋은 문장을 그저 따라 쓰고 싶다는 욕망에 이끌려 공책을 펼쳐 보는 것이다.


이 특집 호에 대한 짧은 응답이자 허공에 띄워 보내는 하나의 엽서로서 어느 아침, 이 글을 적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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