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연어솥밥과 배춧국

재료-손님들과 함께 창작하기

by 지도그림

"요리하기란 비인간 생명, 물질들과 협업해 공동 생산하는 것이다. 요리를 이런 관점에서 본다는 것은 맛의 창작 활동을 다르게 인식하고 재정비하도록 한다."


우선 이런 문장을 써두고 기억이 흘러가는 대로 적어본다. 나는 이 말을 하필 요리를 실패한 날 만났다. 실수와 오판이 연속되는 주방에서의 시간, 나는 그 시간을 저 문장에 대입해본다. 내 투박함과 미숙함과 마주하면서 요리에 대해 새롭게 이해한 바가 있었다. 요리란 주방에 혼자 있더라도 혼자만의 일이 아니며 내가 요리에 초대한 손님들과 함께 하는 창작이다. 오늘은 그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요리를 각각 자신의 특수함을 지닌 존재들과의 공동 생산 과정이라고 생각했을 때 나는 어떻게 식재료가 되어준 생명들과 요리 과정에 함께하는 사물들을 달리 바라보게 될까?





시작은 어느 배고픈 밤이었다. 나는 침대에 누워 요리책을 뒤적이고 있었다. 냉장고의 상황과 내일의 입맛을 상상하면서. 어떤 메뉴를 같이 요리하면 동선과 타이밍이 맞을지를 그려보면서. 그래 정했다. 내일은 한식으로. 연어솥밥과 배춧국을 끓일 것이다.


요리책은 타임라인을 짜 주었다.

"어떤 건 하루 밤, 어떤 건 두 시간, 어떤 건 10분이 필요해요."

그러니 오늘 밤 잠들기 전에는 냉동실에서 연어 스테이크를 꺼내 냉장실로 옮기고 다시마 냉침 육수를 만들기 위해 물병에 다시마 한 조각을 넣으면 된다. 다음날 아침엔 현미를 씻어 물에 담그고 연어는 간장소스에 재워둘 것이다.

"연어는 소스에 담가 네 시간 이상 냉장고에 두세요."

마음의 여유도 있어 마트에 가서 쪽파와 배추를 사와 미리 손질해둔다.



저녁 시간이 가까워온다. 드디어 이 모든 것을 한데 조합할 시간이다. 나는 배춧국용 채수를 끓이는 동안 연어를 프라이팬에 살짝 굽고 뚝배기에 쌀과 물을 1:1 비율로 넣는다. 물이 끓어오를 즈음 앞뒤로 구운 연어를 밥 위에 놓고 뚝배기 뚜껑을 닿는다.

"강불로 5분, 끓으면 중약불로 10분 익히고, 쪽파를 넣고 5분 뜸 들이세요."

나는 요리책의 매뉴얼을 숙지했다, 좋다, 타이머를 맞춘다.


레시피에 적혀있던 15분이 지났다. 뚝배기 뚜껑을 열어보는데 포슬포슬한 밥은 커녕 아직 한참 남은 듯 물이 잔뜩 고여있다. 예상과 다른 모습에 마음이 다급해진다. 물을 너무 많이 넣었나? 밥이 죽처럼 되면 어떡하지? 내 몸은 이제 감으로 반응한다. 수저를 가져와 뚝배기에 고인 물을 떠내고 뚜껑을 덮은 뒤 불을 더 세게 올린다. 물을 끓여 없애 버려야지. 조금 지난 뒤 열어보았지만 아직 흥건하다. 쌀도 어째 익은 듯 안익은 듯 딱딱하다. 현미라 그런가, 분명 반나절은 불렸는데.


국이나 들여다보자, 하며 배춧잎과 양파 조각들이 끓고 있는 냄비 뚜껑을 연다. 요리책에서는 마지막에 들깨가루를 넣으라 한다. 냉장고에 예전에 사둔 들깨가루가 있었지, 꺼내보니 유통기한이 몇 달 지났다. 나만 먹을 거니까, 에잇 모르겠다 하며 세 숟갈 크게 넣는다. 넣자마자 바로 실수했다는 것을 알았다. 향이 시큼하다.


"들깨가루에서 기름 냄새 같은 게 올라오면 산패한 거에요. 버리세요."

인터넷 동료들이 말한다. 국에는 벌써 상한 들깨가루들이 떠다닌다. 다시 임기응변의 시간이 왔다, 나는 체에 국을 걸러 국물을 버리고 들깨가루를 씻어낸다. 촘촘한 망에 걸린 흐물흐물한 배추 덩어리들을 바라보다 이걸 배추 무침으로 탈바꿈하기로 한다. 이미 엑기스는 국물로 다 빠져 버린 듯하니 찬창에 있는 후리가케들을 잔뜩 뿌려 사라진 풍미를 대강 채워준다. 연어솥밥은 밥이 설익은 듯 하지만 어찌저찌 잘 되었다. 된장과 쪽파로 양념장을 버무려본다.


폭탄을 맞은 주방과 동요하는 마음을 접어두고 예상보다 훨씬 늦은 시간에 저녁상을 차린다. 혼란했던 일련의 시간과 임시방편으로 조합된 정체불명의 덩어리들(맛은 그래도 괜찮았다)을 앞에 두고 나는 허탈한 상념에 빠진다. 시간을 많이 쏟았는데, 기대와 정성을 드렸는데. 그럼에도 오늘의 요리를 '성공'이라고 말하긴 어려울 것이다. 레시피를 충실히 따른 걸로도 안 된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 거지? 밥은 왜 제때 안 익었을까? 나는 요리를 하며 길을 잃었던 순간들을 돌이킨다.


어쩔 수 없지. 그렇다면 이 만들기의 실수를 신선한 정보의 원천으로 검토해보기로 한다. 기술자들이 사용하는 리버스 엔지니어링이라는 방법이 있다. 이는 기계를 분해하여 그 창조 과정을 역행하면서 기계의 작동 원리와 설계 정보를 알아내는 것이다. 분해하고 거꾸로 가며 지식을 새로이 구성해내기, 그리하여 다른 창조로 나아가기. 이 방법을 사용하여 나는 오늘의 설익은 연어솥밥과 배춧국무침 덩어리를 해체해 보기로 한다. 분해함으로써 나는 요리과정을 달리 인식하고 성찰해 재정의할 수 있을까?


세 가지 실수가 있었다. 우선 밥을 지을 때 레시피에서 '쌀'이라고 했던 것을 무턱대고 '현미'로 해석했다는 것, '중약불'의 세기가 내 뚝배기와 화구 기준으로는 어떤 세기인지가 불명확했다는 것, 들깨가루의 상태를 판별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나는 나의 협업자들에 대해 충분히 알지 못했다. 현미, 뚝배기, 불, 들깨가루, 레시피. 오늘 나와 요리를 공동 생산하는 이 비인간 존재들 각각의 특성과 행동양식에 귀기울이지 못했다. 그러니까 식재료와 조리 도구들을 잘 이해하지 못하고 레시피의 뼈대나 악보같은 특성, 즉 요리사로서의 연주자가 자신의 맥락에 맞게 해석하고 변용해야하는 속성을 이해하지 못한 채 기계적으로 이들을 한데 붙여두었던 것이다.


"현미로 밥을 지을 경우 하루 이상 불려주고, 현미만 사용할 경우 찰기가 부족할 수 있으니 찰현미나 백미를 섞어주세요."

"뚝배기마다 그 특성이 다르니 사용하면서 그릇의 성격을 이해해보세요."

"각 재료에는 보관 방법과 기한이 있습니다. 재료의 상태를 읽어내는 감각적 신호에 민감해야 합니다."


나는 오늘 요리 과정에 초대한 재료-손님들이 유일하고 특수한 존재들이라는 것을 인지하지 못하고 이들을 거칠고 기계적으로 다루었다. 어쩌면 경험치의 부족이라고도 할 수 있다. 이는 각 존재들의 특수성과 그들이 다른 존재와 관계맺는 방식에 대한 관심과 관찰이 부족했음을 뜻한다. 경험치가 쌓인다는 건 주방에 함께 하는 존재들을 섬세하게 고려할 줄 알게 되는 것일 수 있겠다.


나는 테이블에 놓인 밥알과 생선살, 뚝배기와 배춧잎을 바라본다. 아직 서로 알아갈 것이 많다. 요리는 협주라는 것, 재료와 사물과 내가 함께 만들어 나간다는 것을 잊지 말자. 숟가락에 크게 올려 한 입 먹는다. 요리는 계속될 테니까... 다가올 실험을 꿈꾸며, 함께 씹히고 한데 뭉치는 오늘의 손님들을 입 안에서 감사히 느낀다.

금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