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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막걸리와 균

눈에 보이지 않는 생명체들과 함께 만드는 음식

by 지도그림

어느 저녁, 한 미술 작가가 나에게 작은 잔 하나를 건넸다.

“마셔 보세요.”

하루의 끝에 지쳐 있었기 때문에 그런 그가 고마웠다. 잔을 받았다. 희멀건 무언가 들어 있었다.


그는 조용히 털어놓았다.

"이건 인간이 아니라 신의 영역에 있어요."

나는 잔을 흔들었다. 걸쭉한 액체가 둔탁한 모양으로 빙글 돌았다.

그의 스튜디오에는 벌써 몇 번째 방문하는 참이었다. 올 때마다 그는 먹을 수 있는 무언가를 내왔고 대부분 그가 만든 것이었다. 이번에는 막걸리다. 새콤하고 크리미한 맛이 혀 뿌리에 닿았다.

“괜찮죠?”

그가 물었다.


올 한 해 전시 준비로 긴밀하게 교류했던 그였다. 그는 음악의 리듬과 생활 문화를 교차시키는 시리즈의 새로운 작품을 준비 중이었는데 가장 최근에는 강릉 단오제를 촬영하러 갔다고 한다. 오늘 작업실을 찾아온 나를 위해 그는 강릉에서 담근 막걸리를 꺼냈다. 그리고 막걸리, 균, 신비에 대한 이야기를 술술 내어 놓았다.

"이거는 강릉 중앙시장에서 산 누룩으로 만들었어요. 강릉 균? 그게 뭐가 대단하냐고 물으실 수도 있죠."

"맛이 좀 색다른 것 같긴 한데요?"

"그렇죠. 옛날 조선시대까지만 해도 우리나라에 술 만드는 집이 30만 호가 있었대요. 그때 인구가 그렇게 많지가 않은데 모든 집이 한 집 건너 한 집씩 다 술을 담갔던 거예요. 그 집집마다 술맛이 다 달라요. 왜냐하면 그 집의 고유의 균이 다르니까요. 우리 손맛이라고 하는 게 그 사람 손에 묻어 있는 균들의 얘기이기도 하고요. 강릉 누륵에는 이 지역 고유의 균이 뭉쳐 있어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편의점에서 산 막걸리와는 좀 다르다. 더 시큼하기도, 가공되지 않은 날 것의 느낌이 나기도 한다. 쉰 건가? 아니면 맛있는 건가? 표준화되지 않은 이 병 고유의 맛을 다시 한번 들이킨다. 혀 끝으로 술을 굴린다.



"저희가 일반적으로 사먹는 막걸리는 과학적으로 배양한 균을 수입해서 사용해요. 그러니까 한 가지 맛을 확실하게 내도록 만들어주지요. 이런 강릉 누륵 가져다 몇 톤이 되는 막걸리 생산하는 데 넣었다가 시큼해지면 답이 없는 거잖아요. 그러니까 확실하게 되는 걸로 넣죠. 그렇다 보니까 아스타팜도 많이 넣어요. 왜냐하면 맛이 너무 단순하니까. 하나의 균으로 만들어지면 복잡한 술의 맛이 없으니까. 그렇게 나오는 게 시중의 막걸리거든요."

나는 고개를 끄덕인다.

"근데 누룩 같은 경우는 그때 그때 만드는 거니까. 그 안에 뭐가 있는지 아무도 모르죠. 여기는 미지의 우주 같은 거예요. 저기 안드로메다 너머 무언가랑 비슷하게."

누룩


그는 두 손바닥을 맞대고 비비는 모양을 했다. "이게 막걸리를 만드는 손짓이에요." 그는 더한다.

"그저 간절하게 바라는 거죠. 염원해요. 제가 할 수 있는 건 사실 그 뿐이니까요."

발효는 인간이 아니라 신의 영역, 우주적 신비의 영역이라고 그는 다시 강조한다.

"결과가 별로일 때도 있어요. 내가 뭘 잘못했지? 내 마음이 부족했나? 그렇게 생각할 뿐이에요."



나는 그의 작업실을 둘러본다. 구석에 항아리가 놓여 있다. 지금은 비어 있지만 언젠가는 저 안에서 무언가 섞이고 부글거리며 끓고 있었을 것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살아있는 존재들이 안에서 먹고 소화하고 배설하고 있다. 연금술사처럼, 항아리 안에 이것과 저것과 균들을 넣으면 생명체들이 천천히 상호작용하며 변성이 시작된다. 박테리아가 생명의 수를 늘리는 동안 원래 있던 것과는 다른 무언가가 만들어진다. 시간이 흐르고 뚜껑을 열면 거기 놀라운 결과물이 있다. 썩은 무언가 혹은 승화된 무언가. 분해되어 유용해지는 이 과정은 경계를 침투하고 느린 시간에 걸쳐 변화를 가져온다. 새까맣고 세다, 흐릿하게 허옇고 크리미하다, 쿰쿰하고 뭉근하고 퍼석하다. 새콤하고 달콤하다.

"우리가 아는 방식으로 모든 것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걸 발효가 증명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뜻하는 대로 안 되니까 자꾸 발효가 재밌고 궁금해져요. 술 담가놓고 일주일이 걸리거든요. 일주일 동안 뚜껑을 열면 균이 들어가요. 근데 제 작업실에서 온갖 거를 하는데, 흙도 만지고 목공도 하고 이런 장소에서 술을 만들면 여기에 있는 균들이 뚜껑을 여는 순간에 들어가 버리는거죠. 걔네들이 들어가서 어떤 식의 힘으로 작용할지 알 수 없는 거잖아요."


막걸리 발효 과정


막걸리를 담그는 것, 더 넓게는 발효를 한다는 건 예상할 수 없는 미지를 향한 열린 태도를 요청한다. 내가 통제할 수 없음을 인정하고 그저 그렇도록 두는 태도 말이다.

작가는 발효의 시간성이 좋다고 한다.

"발효되어 가는 과정을 보는 기다림의 시간이 좋은 것 같아요. 그러니까 매체의 즉시성이라 그럴까요? 팍팍팍 전달해 주고선 이해되고 끝나는 순간이 아니라 계속 기다려야 되는 말도 안 되는 시간이 주는 매력이 큰 것 같아요."

어떤 시점에도 시간에 대한 평가를 끝맺을 수 없다. 시간은 미래를 향해 열려 있다. 오늘의 기포가, 부풀음이, 쿰쿰함이 어쩌면 내일의 향미가 될 수 있으니까. 무슨 일이 일어날까? 다가올 동요와 경탄에 열려 있는 것. 발효의 태도란 우연과 운명, 반가운 손님과 감사한 기회를 기다리고 마중하며 이를 따라 걸어나가는 것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작은 생명체들과 함께 만들어내는 음식, 그는 나에게 발효의 세계를 열어 주었다. 그와 많은 말을 나누고 요리를 맛보았다. 그 시간은 고유의 리듬과 흥겨움으로 흘렀다. 그 동안 그의 공감하는 열린 태도와 촉촉하고 호기심 어린 시선이 내게 들어와 모르는 새 자라났다. 눈에 보이지 않는 효모와 박테리아처럼 내 안에서 증식되어 갔다. 그렇게 나는 조금씩 미지의 시간을 향한 열린 태도를 내 삶과 요리에 들이기 시작한다.




발효 이야기는 계속됩니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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