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서촌의 아지트, 바 오무사

마음 놓고 밤을 의탁할 수 있는 곳

by 지도그림

아지트라고 부를 만한 식당이나 바를 찾는 건 쉽지 않다. 한 주에 네댓번 외식을 하고 같은 식당을 반복적으로 들리는 사람이지만 혼밥하기 좋거나 동선이 맞아서가 아니라 방문이 기대되고 경험이 설레어서 가는 집은 드물다. 한 동네에 가면 무조건 들리는 곳, 오히려 그곳에 가기 위해 약속지를 정하는 곳. 갈 때마다 이전보다도 그 장소가 더 좋아지며 비밀인양 아끼는 사람하고만 함께 가고 싶은 그런 음식점은 그래서 더 소중하다.


내게 아지트의 조건이란 이렇다. 차분하고 따뜻한 분위기의 공간, 대화가 잘 들리고 풍성해지는 곳, 깔끔하고 편안한 음식이 있고 가격이 부담스럽지 않은 집, 공간과 음식을 가꿔나간 정성과 개성이 느껴져 어떤 사람들이 어떤 마음으로 운영하고 있을지 궁금해지는 곳.


오늘 이야기하려는 서촌의 이 작은 바를 처음 방문한 건 2020년 즈음일 것이다. 이 근방에서 일을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았던 나에게, 네가 좋아할 것 같다며 한 친구가 데려간 바(bar) '오무사'는 통인시장을 지나 청운동까지 한참을 올라갔을 때, 가게들이 드물어지고 거리가 어두워지는 지점에 이르러서야 그 아담하고 담담한 몸체를 드러냈다. 나무 문을 열고 들어가니 비에 젖은 나무와 이끼향이 끼쳐왔다.


출처: bar.omusa 인스타그램


일본 시골의 오두막에 들어온 것처럼 친근하면서도 이국적인 공간이었다. 적갈색의 목재로 둘러싸인 벽, 서로 얼마간 사적인 거리를 두고 배치된 사각 나무 테이블, 따뜻한 주황빛의 간접등으로 밝혀진 차분한 어둠. 그 속에서 사람들은 술을 앞에 두고 삼삼오오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단단한 표지의 메뉴판에는 각종 위스키, 칵테일, 레드, 화이트, 포트 와인과 안주 메뉴가 있다. 첫 날 나는 무엇을 마셨던가? 레드 와인? 혹은 압셍트 칵테일?


그 날 이후 이 곳을 자주 방문했다. 공간 때문인지 함께한 사람과의 깊은 대화 때문인지 매번 들어올 때보다 더 훈훈하고 촉촉해져서 나갔다. 저녁식사 후의 가벼운 2차로, 친구들과의 축하 모임을 위해, 어느 주말 한 낮 열기에 기분 좋게 취하고 싶어서, 추운 겨울 밤 피트한 위스키 향을 혀 끝으로 조금씩 느끼기 위해 그 나무 문을 밀고 들어갔다. 썸을 타는 사람과, 이별을 예감하는 연인과, 외국에서 혹은 고향에서 온 친구와 함께 이 곳을 찾았다.



보틀 메뉴는 주종과 품종, 산지가 다양해 그날의 입맛에 따라 고를 수 있고, 클래식 레시피에 문학적 변주를 더한 칵테일은 기초가 탄탄해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다. 안주도 정갈하고 적절하다. 애플 파이나 치즈 플래터, 와인 플래터, 아포가토, 여긴 뭐든 다 괜찮으니 마음이 끌리는대로 주문해도 이견이 없다. 때로 기본 안주 생각이 나서 일부러 다른 술집을 거르고 오무사에 들리기도 했다. 이곳에서는 변함없이 소금 프레첼, 땅콩버터 과자, 견과류를 넣은 작은 종지를 내주었는데 하나씩 집어먹기 좋은 그 짭짤하고 바삭하고 꾸덕한 조합이 종종 그리워지는 것이었다.


이야기와 기억이 쌓여갔다. 방문할 때마다 이전의 시간이 흐릿하게 겹쳐졌다. 그리고 오늘, 공간은 또 다른 이야기를 입는다. 서촌의 주민이 된 지금은 어쩌다 보니 옛날처럼 자주 가지는 않게 되었지만, 다른 바에 갈 때면 자주 이렇게 생각하곤 한다.

"오무사 갈 걸. 오무사가 나았을 걸."


어느 밤을 마음 놓고 의탁할 수 있는 나무 향이 밴 집, 이런 아지트 하나로 도시와 동네가 더 친밀해진다.



금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