겹겹의 꽃잎처럼 오늘의 요리를 감싸는 말들
코트와 머플러를 건네주고 돌아왔을 때, 어니스트는 길버트가 꽃다발에 얼굴을 파묻고 코끝이 찡해질 정도로 가득 향을 들이키고 있는 것을 보았다. 오렌지 빛 장미와 백장미, 다알리아, 카네이션, 패랭이 -- 이질적인 계절과 장소의 꽃들이 오로지 오늘의 다발이 되기 위해 모였다. 어니스트는 길버트 옆에 가까이 다가가 어깨에 손을 올렸다.
"그렇게 하는 것도 좋지. 영혼을 치유할 수 있는 건 감각뿐이니까. 감각을 고귀하게 정련시킬 수 있는 건 영혼뿐인 것처럼."
길버트는 꽃다발에서 고개를 들고 의자 깊숙이 앉았다. 그의 머리는 단정했고 목과 쇄골에는 다채로운 문양의 실크 스카프가 겹겹의 주름을 드리우며 메여 있었다. 그의 눈빛은 무심했다. 삶의 자극들에 노출되어 무디어지고 무감해진 사람처럼 그는 천천히 눈을 깜빡였다. 얇은 두 입술은 굳게 닫혀 있었다.
"그래. 오늘 넌 비밀을 하나 알게 된 거야. 지금 이곳의 감각에 섬세하게 빠져들 때 비로소 영혼은 치유돼. 식사에 초대한 것도 그래서야. 이곳저곳 쏘아 다녔다지? 숨 돌릴 틈도 없었다지? 한 해를 좀 더 고전적으로, 담백하게, 우아하게 마무리할 필요가 있어. 오늘 이곳에서. 정밀하고 부드러운 미각과 후각, 시각이 너를 감싸줄 거야."
길버트는 입꼬리를 올리고 어니스트를 쏘아보았다. 그는 이 하얗고 담담한 사람, 뱁새가 노래하듯 매혹적으로 속삭이는 사람을 싫어할 수 없었다. 귀공자 같은 살결에 떠오른 변화무쌍한 표정이 늘 그의 눈길을 끌었다. 숱 많은 검은 눈썹은 그 자신의 음성에 맞춰 오르내렸는데 춤추듯 우아하면서도 우스꽝스러웠다.
"꽃다발은 잠시 치워둘까? 내가 좋은 바롤로 와인을 한 병 들고 왔지. 네비올로 품종, 들어봤을 거야. 포도에 안개처럼 흰 곰팡이가 피어서 발효를 돕는다는군. 이 체리 빛 음료가 널 돋구어 주길 바라. 저기 지배인 선생님이 오시는군."
태이블에는 둥근 와인잔이 놓인다. 술이 채워진다. 굽이 높은 사각 도자 그릇에 아무르 부슈가 놓인다. 곧이어 상큼하고 부드럽게 입맛을 돋우는 전채 요리가 나온다.
"어떤가?"
어니스트에 물음에 길버트는 옅은 미소를 띄며 고개를 끄덕인다. 어니스트는 테이블 위로 몸을 드리우고 말을 부추긴다.
"우리는 이야기를 해야 해. 아니면 시간은 혀 끝에서 사라질 거야. 이 식사는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스쳐갈 거야."
"말이 무슨 상관이지?"
길버트는 묻는다. 여전히 닫히고 피곤한 표정이다.
"가장 중요해. 너처럼 입맛이 새침해진 사람에게는 더더욱."
"왜?"
"언어가 우리를 일깨우고 이끌어주고 변화시키기 때문이지. 혀끝에서부터 시작해 온몸으로 응답하려면 입 속의 일들이 언어로 번져 나가야 하지. 우리는 영혼을 달래기 위해 왔으니 더욱이 필요해."
"잘 모르겠는데."
"입을 그렇게 굳게 닫고 있으면 모를 수밖에. 너는 지금 어디에 있지? 나와 이 테이블 앞에 앉아 이 격자 모양 샐러리 레물라드를 뒤적이면서도 너는 다른 생각을 하고 있어. 그런데 내가 묻는다면, 이게 뭐지? 이게 무슨 맛이지? 묻는다면, 너는 너의 그 멀고 성가신 과거나 미래나 상념의 세계로부터 벗어나 여기 이 그릇 앞으로 오게 되지. 이 아삭하고 크리미한 식감, 셀러리 셀룰로스의 곧음, 수학적으로 배치된 사각의 대하구이가 더해주는 악센트. 난 질문으로 너를 여기에 호출해. 주의는 이전되지. 허튼 것은 묻지 않겠어. 올 한 해가 어땠어? 따위가 아니라 이 요리에 뭐가 들어간 건지를 물을 거야. 어쩌면 이 맛에 올해의 감정들이 배어 있을 수도 있겠지. 그렇게 감각과 영혼이 연결될 수도 있겠어."
길버트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는 나이프로 샐러리 가닥을 썰어 흰 소스와 함께 입에 가져간다.
"마요네즈나 버터 소스의 일종인 것 같아. 기름과 산이 유화되면서 만드는 풍미."
어니스트는 눈썹을 치켜 올린다.
"그래, 잘 시작했어. 이제서야 함께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드는군. 언어를 통해 비로소 우리의 감각은 정교해져. 이 느낌은 뭐지? 그 모호한 무언가에 부합하는 단어를 찾으려 하면서 개념의 한계, 표현의 제약에 맞닥뜨리지. 식사를 하며 그 한계를 조금씩 밀고 나가는 거야. 알아보고 이해하고 느끼게 되지. 이제 감각과 영혼을 지성이 매개한다고 말할 수 있으려나?"
길버트는 어니스트의 지성에 대해서라면 잘 알았다. 백과사전이라고도 불릴 정도로 어니스트는 식재료와 산지, 조리법과 식사 방식에 대해 박식했다. 음식만큼이나 달콤하고 흥건하게 그는 이야기를 늘어 놓았다.
때때로 꿀을 빨아먹는 나비처럼 그는 한 접시 앞에서 우아하게 날아다녔는데 예를 들면 지금 나온 '날개 달린 거품 랍스터' 플레이트 위에서 그는 식사의 동선을 그려 나갔다.
"나라면 이 노일리 프랏 소스의 거품이 꺼지기 전에 우선 소스를 한 술 뜨겠어. 그 후엔 오픈 라비올리의 개별 재료들 차례이지. 구운 방울 양배추를 한 조각 썰어 맛보고 랍스터의 쫄깃하고 부드러운 익힘을 느끼고, 콘길리에 안에 오목하게 담긴 소스와 함께 이 쇼트 파스타의 탄수화물을 가볍게 질겅인 다음에 전체를 한 숟가락에 얹어 맛볼 거야. 그 후에는 자유로이, 입맛이 호출하는 대로 움직여야지."
어니스트가 발랄하게 플레이트를 재조립하는 것을 보며 길버트는 웃는다. 한 접시에서 어니스트는 겹겹의 베일을 보고 그것을 포크와 나이프로 조심히 걷어내며 그 사이를 반갑게 기웃거리는 것이었다.
메인 요리 전에 입을 정리하는 청량한 샤베트가 나온다. 기분이 한껏 명랑해진 길버트는 냅킨을 무릎 위에 가지런히 놓고 와인을 한 모금 들이킨다.
"이제부터 메인입니다. 스테이크도 그렇지만 이 요리의 소스가 와인과 잘 어울릴 거에요. 산딸기와 라즈베리를 농축한 소스인데 페어링이 좋습니다."
지배인은 넓고 흰 플레이트를 두 사람 앞에 놓는다. 접시에는 둥근 오리구이 한 점과 짙은 보랏빛 야채가 놓여 있다. 포크 끝으로 소스를 찍어 먹어 본다. 곧이어 날카로운 나이프로 고기 한 점을 썰고 소스를 발라 입에 넣는다. 비트와 체리 가니시를 맛보고, 가니시 위에 올라온 머랭 모양의 흰 소스를 다시 뜬다. 음식의 기억이 떠나기 전에 와인을 곁들인다.
“난 때때로 오리 요리를 해. 내가 보기에 이 고기는 겉면을 익히기 전에 수비드를 한 것 같군. 안이 레어처럼 붉은데도 핏물이 안 떨어지잖아? 보통 이 색은 아직 안 익었을 때 나거든.”
“오리를 수비드 하면 이런 맛인가?”
“저온에 익혔다는 점에 내기를 걸지. 콩피의 식감은 아니니 수비드라고 하겠어.”
어니스트는 한쪽 눈썹을 올리며 냅킨 끝으로 입술을 닦는다. 어니스트를 바라보는 길버트는 자기 안에서 옅은 쾌감이 번져 나가는 것을 느낀다. 이건 또 어떤 집요한 사랑인가? 어니스트의 말은 겹겹의 꽃잎처럼 요리를 감싼다. 그를 사로잡은 음식이라는 신비하고 아름다운 존재, 이에 대한 애정과 경탄이 언어로서 자라난다. 덩굴처럼 그날 밤을 휘감아 촉촉하게 하면서 식사의 경험은 풍성해지고 향기롭게 되는 것이다.
어니스트와 함께 요리의 화원을 거닐고 식사의 향기를 맡고 있다는 생각에 길버트의 기분이 부풀어 오른다. 눈은 깨끗해지고 입 안은 짧은 무용극 속에 잠시 빠져 있던 사람처럼 지나온 막과 장들의 기억으로 재잘거린다. 체리 빛 유리잔 속에 일렁이는 밤의 색을 가만히 응시하며 길버트는 오늘을 위한 말들을 떠올린다.
* 길버트와 어니스트는 오스카 와일드에게 잠시 빌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