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을 달콤하고 부드럽게 얼어 붙이는 냉각의 예술
처음 배운 건 제조의 과정에 대한 용어들이었다. 원료 배합, 오버런, 경화. 그곳에서 일을 시작하고 한 달이 지난 때였다.
그 날은 겨울비가 추적이는 어느 날이었는데 새 아이스크림 버켓을 꺼내 꽝꽝 얼지 않도록 가장자리부터 뒤섞고 있던 나를 괴짜는 뒤편 주방으로 불러냈다. 여태껏 포스기를 다루거나 손님을 응대하고 아이스크림을 옮기던 나를 그의 실험실로 들인 것이다. 크고 육중한 스테인리스 냉각기 앞에 서서 괴짜는 말했다.
"잘 들어 아이스크림의 생명은 유지방과 공기야. 거기서 시작하고 거기서 끝나. 제조의 세 단계는 뭐다?"
하며 저 단어들을 뱉었다.
고등학교 졸업을 앞두고 어제를 내일처럼 빈둥거리며 살던 내게 고모가 주선해 준 자리였다. 고모 친구가 하는 가게인데 일손이 부족하다고, 하는 거 없으면 일이나 도우라고, 나는 "오 옙 그러죠." 하며 용돈이나 벌어볼 생각으로 시내 골목 귀퉁이에 있는 그 오래된 가게로 갔다.
입구부터 예사롭지 않은 기분이 들었다. 똑바로 세워진 아이스크림 콘과 엎어져 녹아내린 콘 모양의 대형 조형물이 출입문의 양 옆에 서 있고 그 옆으로는 녹슨 자전거, 원예용 물 주전자, 철제 벤치, 곡선형 의자들이 나름의 규칙으로 어지럽게 배치되어 있었다. 검은 나무 간판에는 금색 필기체로 '알키미스트' 라고 쓰여 있었다.
안은 밖보다 더 번잡했다. 벽에는 유리 진열장에 각종 골동품과 키치한 조각들이 늘어서 있었고, 한 구석에는 작은 유리병들이 층층이 쌓여 있었다. (나중에 자세히 보니 위스키 샘플러들이었다. 괴짜는 3년 전 위스키 아이스크림 개발에 몰두했다고 한다.) 벽에는 우드 카빙과 유화와 판화가 듬성듬성 걸려 있었는데 항구에 정박한 배 그림부터 "I love beer" 라 말하며 씨익 웃는 팝아트적인 광고 사진까지 아무런 통일성이 없었다.
카운터 뒤편에서 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면접?"'
"네."
"잘 왔어요. 저기 앉아요."
나는 유리창 옆 테이블에 앉았고 그가 다가왔다. 눈썹 숱이 풍성했고 이제 희어가는 긴머리를 질끈 묶고 있었다. 눈빛은 다소 엄해 보였다.
그는 무슨 맛 아이스크림을 좋아하냐고 물었고 나는 바닐라라고 대답했다.
"바닐라. 딱 기본이지." 그는 중얼거렸다. 그리고는 얼마나 오래 일할 수 있는지, 다른 알바생들 근무 시간, 근무 복장 몇 가지를 이야기하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카운터 뒤 공간으로 홀연히 사라졌는데 거기가 그의 연구소이자 성소, 이 작은 가게를 생기 있게 하는 심장 같은 곳임은 차차 알게 되었다.
"뭐야. 좀 이상한데? 괴짜 느낌인데?" 나는 웅얼거리며 가게를 나왔다.
수향미, 흥국쌀, 카다멈과 시나몬, 피스타치오, 마카다미아, 쑥, 숯, 아보카도, 망고스틴, 체리... 메뉴는 스무 가지가 넘었다. 처음에 나는 메뉴를 외우고 맛의 특징을 설명하는 법을 배웠다.
"저희는 설탕과 감미료를 안 쓰고 재료 자체의 단맛, 그리고 꿀만 조금 첨가해서 맛을 내요. 같은 메뉴여도 저희 가게 아이스크림만의 맛이 있죠."
테이스팅 스푼에 적당량을 퍼 건네는 법을 연습했고 팔의 힘을 최소한으로 들이며 아이스크림을 푸는 법을 습득했다. 괴짜는 몇 주간 나를 지켜보다가 언젠가부터 뒤 골방으로 들어가 아무 소리도 내지 않고 무언가를 했다. 때때로 새로운 버켓을 들고 나와 갈아 끼우는 것을 도와줄 뿐이었다. 저 안에서 무얼 하고 있을까 궁금해하던 나를, 드디어 어느 비오는 날 그 뒤편에 들인 것이다.
그는 신메뉴를 개발 중이라고 했다. 얼마 전에 트러플을 비교적 저렴하게 구할 수 있는 수입상을 뚫어서 이제 수급로가 열렸고 그 기회를 활용해 트러플 아이스크림을 만든다는 것이다. 이와 어울리게 고다 치즈나 그뤼에르 치즈 아이스크림도 만들려 하고, 여태껏 많이 시도하지 않았던 둘의 블렌딩도 해볼까 한다고 말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메뉴 개발을 하고 있다고 얘기했지만 이거 쉽지 않아요. 완전히 새로운 조합을 만들어 내는 거니까. 원래 하는 방법대로 하면 될 것 같죠? 아니죠, 재료가 달라지면 조율이 필요하거든. 냉각 방법부터 달라질 수 있어요. 원하는 텍스쳐나 식감에 따라 일반적인 냉동 말고 드라이아이스나 질소가 필요할 수도 있고. 질소로 냉각하면 식감 재밌어요. 단번에 얼리거든.”
그는 옆에 놓인 기계들을 손등으로 두드렸다.
“그리고 오버런, 오버런이 중요해요. 이게 뭐냐 하면 공기를 넣는 일이에요. 아이스크림을 뒤섞는 것. 저 기계가 휠을 돌리면서 아이스크림이 어는 동안 사이사이에 공기를 접어 넣어요. 공기를 얼마나 넣느냐에 따라서 부드러움이 결정되는데, 아이스크림 대 공기 비율이 백프로가 넘을 수도 있어요. 아이스크림이 두 배 넘게 부풀어오른다는 거지, 엄청 부드럽지. 공기 반 재료 반. 이런 것도 결정해야 해요."
그는 적절한 유지방, 공기, 재료, 당의 비율을 찾을 때까지 테스트와 테이스팅을 계속 해야 한다고 말했다. 앞으로는 재료를 손질하고 준비하는데 도움이 필요하다고 했다. 아이스크림 팔기보다 먹기에 자신이 있었으므로 나는 흔쾌히 동의했다. "네, 좋아요, 해보겠습니다."
그 해 겨울 나는 그 비밀의 방을 자주 들락거렸다. 손님이 뜸해지는 오후가 되면 차가운 스테인리스 기구들에 둘러싸여 우유와 크림을 계량하고 계란 노른자를 꿀과 섞어 믹서기에 갈고, 버섯을 썰었다. 이들을 잔잔히 기포가 올라오도록 끓이고 식혔다. 이중으로 만든 버켓에 냉각 중인 아이스크림을 고루 차가워지도록 뒤적거리고 냉각시켜 둔 아이스크림 기계에 용액을 부었다.
괴짜도 말없이 옆에서 일을 했다. 때로 문자를 받고 나가 송화버섯이나 표고버섯을 가득 들고 왔으며, 재료의 비율과 무게를 나열한 표를 들여다보며 맛을 표시하기도 했다. 그의 곁에는 늘 회색 표지의 작은 노트가 있었는데 괴짜는 분주하게 일하다가도 노트를 펼쳐 무언가 휘갈기곤 했다.
"뭐하세요?" 내가 물었을 때
"메모하지." 그는 답했다.
"뭘 쓰시는데요?"
"아이디어. 얼릴 것. 아이스크림으로 만들 것."
나는 그의 노트를 슬쩍 엿보았다.
- 바람 소리, 질척이는 땅
"질척이는 땅 아이스크림을 만들어요?"'
그는 노트를 향해 고개를 푹 숙인 채 눈만 들어 나를 올려다보았다.
"그래요. 얼리면 간직할 수 있으니까. 여기서 만드는 게 그냥 버섯 맛 아이스크림은 아니라고 설명 안 했던가? 우리가 하려는 건 오늘 이 땅의 느낌을 얼리는 것이죠. 버섯을 이용해서. 나는 그 느낌을 맛으로 내려는 거에요. 그렇게 보면 뭐든 얼릴 수 있죠. 바람이든 땅이든 얼릴 수 있어."
나는 눈썹을 으쓱한다. 여태까지 서른 번 넘게 했던 이 실험들은 어떤 시간과 느낌을 얼리기 위해서였나? 냉각 기술이란 시간을 중단시키는 기술이었나?
냉동이란 건 어쩌면 식재료와 음식의 시간을 무한히 중단하고 지연하는 방법이었다. 특정 온도 아래로 내려가면 생물의 시간, 변성과 부패의 과정은 현저히 느려졌다. 당장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모르겠는 식재료를 냉동실에 넣어두는 것처럼, 아직 남겨두고 싶은 것들을 얼리는 것이다. 꽝꽝 얼어붙은 채로 준비가 될 때까지 이들은 말없이 기다렸다.
이런 냉각의 기술을 달콤하게 변용시킨 아이스크림은 독특한 시간을 가질지 모르겠다고 나는 생각했던 것 같다. 지연시키고 싶은 시간을 담은 재료들을 뒤섞고, 차게 굳혀 단단하게 하기. 거기에 훗날을 위해 단맛을 추가하고, 또 괴짜가 강조하듯이 공기를 집어넣어 일시 정지되는 존재들 사이에 숨 쉴 공간들을 만들어줄 것. 그리고 그 시절 그 시간으로 돌아가고 싶을 때면 냉장고에서 꺼내는 것이다.
얼어붙어 굼뜨게 나아가던 시간이 마침내 오늘의 공기와 접촉하여 표면부터 녹아내리기 시작했을 때, 한 스푼 가득 떠 입에 넣기. 아이스크림이란 어쩌면 중단과 재생의 중간에서, 우리가 미뤄두고 얼려둔 것을 혀끝으로 달콤하게 방문하는 음식이다.
숯 아이스크림, 라벤더 아이스크림… 내가 설명하곤 했던 이 수많은 아이스크림들은 무엇을 얼린 것이었을까?
그해 겨울 각종 냉동 실험을 하며 맛으로 땅의 느낌을 찾아나갔다. 그리고 달콤하고 부드럽게 얼어 붙이는 이 아이스크림의 기술이야말로 냉각의 예술이라고 부를 수 있지 않을까 한 켠 생각했다.
그렇게 가장 추운 계절을 냉동고에서 보내고 나는 대학에 갔다. 그 후로는 점점 바빠져 더 이상 괴짜의 연금술 공방에 들어가지 못했고 아이스크림과도 멀어져 갔다. 유독 근육이 발달한 오른팔 정도가 그 시절의 기억을 담고 있을 뿐이었다.
지금도 때때로 나는 '아이스크림적인 순간'을 발견하곤 한다. 어느 낮 어느 밤, 어떤 사람과 어떤 분위기와 대화 속에 있을 때. 씁쓸하고 아름다운 찰나의 한 순간일 때. 그것을 정지시켜서 가두어 두고 훗날 꺼내 천천히 녹아내리게 해야지. 지금의 맛으로 다시금 살아나는 옛 시간의 감각을 음미하면서.
한 번도 열어 보이지 않던 괴짜의 냉동고에는 무엇이 들어 있었을까 싶다. 배, 두부, 잣, 호두? 우유와 크림, 와인과 위스키, 털뭉치처럼 얽힌 말들과 거품처럼 흩어지는 웃음들?
나는 어깨너머 배운 이 달콤한 냉각의 기술을 장착하고는 어떤 시간을 얼릴지, 어떤 기억을 뒤섞을지 가끔 상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