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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전시의 맛

올라퍼 엘리아슨: 세상의 모든 가능성 展

현대적인 자연, 감각의 일깨움

by 지도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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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 물, 자연, 시간, 기하학, 거울, 인공, 기계, 현대인




이 단어들이 만나면 무엇을 낳을까?

이 단어들을 합쳐 하나의 미적세계를 만들어낸다면?


올라퍼 엘리아슨 展 <세상의 모든 가능성>에서는 감각적이고 독창적인 예술 세계를 만날 수 있다. 올라퍼 엘리아슨은 덴마크 출신의 작가로 시각미술에 기반하여 다양한 실험적 시도들을 거듭하면서 자연, 철학, 과학, 건축 등 다양한 영역을 다룬 작품을 만들었다. 주로 움직임이나 빛, 거울을 이용한 착시효과, 기계로 만들어진 유사 자연 현상, 빛과 색채를 이용한 시각 실험과 같은 비물질적 요소로 작품들이 이루어지는데, 이 작품들은 그것이 놓이는 장소를 전혀 다른 공간으로 변화시키며 관람객들에게 새로운 인식과 경험을 제공한다.

(출처: 삼성미술관 Leeum 홈페이지)



이 글에서는 이번 전시에서 내 마음에 남은 좋았던 점들에 대해 써보겠다. 전시를 나오면서 생긴 복합적인 감정을 '자연과 인공', '지금 여기를 끌어들이기'라는 키워드로 정리할 수 있을 것 같다. 이미 전시를 보고 온 사람이라면 전시 경험을 반추해 보고, 아직 보지 않았다면 이 글을 통해 이 전시에 매력을 느끼고 직접 가서 경험해보았으면 좋겠다.









자연과 인공

그의 작품은 겉보기에는 인공적이고 현대적이다. 현대미술에서 기대할수 있는 기계, 거울, 유리, 철근, 같은 소재들, 기계, 사진 같은 매체를 이용하고 있다. 하지만 독특한 점은 이런 비자연적인 소재를 통해 자연을 예찬하고 자연의 경이에 대해 말하고 있다는 것이다. 표면과 내용의 불일치, 자연과 인공의 결합이 새롭고 흥미롭다. 그의 자연은 현대인이 느끼는 자연이다. 고대인들처럼 자연이 두려운 대상도 아니었으며 동양의 산수화처럼 자연이 이상적인 공간도 아니었고, 유럽의 정원처럼 인간의 손길이 닿아야지만 아름다워지는 존재도, 혹은 숭고미를 자아내는 대상도 아니었다. 오히려 현대인이 생각하는 자연이란 일상과는 다소 분리되어 있으면서도 아름다움을 품고 있는 것, 하지만 인간의 힘으로 변형하고 필요에 따라 이용할 수 있는 것이다. 그는 현대인의 시각에서 자연을 바라보고 이를 인공적이고 비자연적인 소재들로 담아내고 있다. 그는 특히 빛과 물에 관심을 가졌다. 그는 빛과 물에 대한 어떤감각적 경험을 선사하고 있는가? 또 빛과 물을 이용해서 어떤 새로운 예술을 만들어냈는가? 그의 작품을 보며 구체적인 이야기를 해보자.



20161004_115214.jpg <희미해지는 바다(빨강, 주황, 노랑, 초록, 파랑, 보라)>, 2016


연한 색을 칠한 캔버스 5개. 이그림은 도대체 뭘까? <희미해지는 바다> 는 마치 빛을 캔버스에 옮기려고 시도하는 것 같았다. 인상파들이 아름다운 풍경 형상을 통해 빛의 작용을 표현하려고 했다면 이 그림은 빛을 형상 없이 그 자체로 화폭에 담으려는, 순수한 빛 자체를 그림으로 보여주려는 시도인 것이다. 캔버스에 칠해진 색은 어디선가 비춰오는 조명처럼 은은하고, 아래로 갈 수록 점점 투명해져 사라진다. 전시 시작부터 그는 빛에 관한 것, 빛에 의한 것이 그의 작품 세계에 중요한 면을 차지함을 알리고 있는 것이다.







IMG_20161204_173222.jpg <조클라 연작>, 2004



<조클라 연작>도 처음 보았을 때는 벽을 따라 길게 전시한 사진 연작일 뿐이었다. 그런데 이것이 아이슬랜드에 있는 조클라 강이고, 그 강을 처음부터 끝까지 항공 사진으로 찍어 붙여놓았다는 배경 설명을 듣고 사진을 다시 찬찬히 보니 놀라웠다. 자연을 기록하는 방식이 기존의 회화들처럼 시점과 구도에 신경을 쓰며 강의 길이와 아름다운 측면들을 드러내는 식이 아니었다. 대신 긴 강을 긴 것 자체로 보여주고 있었다. 강을 처음부터 끝까지 그냥 쭉 보여주는 것이다. 길지만 강렬했다. 아이슬랜드의 산지와 그 사이를 구불구불 흐르며 하류로 내려가는 강을 보면서 암석 산과 그 사이를 흐르는 차가운 강물이 생생하게 느껴졌다. 무덤덤한 항공 사진의 연속을 통해서 사람들이 강을 보게 하고 그 아름다움을 느끼도록 하고 있었다.








20161204_144030_HDR.jpg <강한 나선>, <부드러운나선>, 2016



이 두 작품은 천천히 돌고 있는 두개의 나선이다. 철근이 안에는 흰색, 밖에는 검정으로 칠해져 있어 돌 때마다 바깥은 아래로 내려가는 듯하고 안은 위로 올라가는 듯하다. 두 나선은 시간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것 같았다. 나의 밖에서 묵묵하고 천천히 그저 흘러가고 있는 시간, 거대한 나사가 나와 관계 없이 멈추지 않고 계속 돌듯이, 태양도 떠오르고 지고, 물도 아래로 떨어지고, 시간도 그저 흘러갈 뿐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 같았다. 현대적 소재인 철근으로 만든 회전하는 나선으로 자연의 흐름을 암시하는 것이다.







한편 그는 빛과 물, 시간을 화폭과 조형물로 재현하는 것을 넘어서 이러한 자연적 소재를 활용하여 독창적인 표현을 해냈다. 그 중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당신의 예측 불가능한 동일성>이었다.



<당신의 예측 불가능한 동일성>, 2014


이 작품에서는 조명이 시계추 같은 막대에 매달려 자유분방하게 흔들린다. 양 옆으로 살짝 움직이다가 바이킹처럼 크게 거의 한 바퀴를 돌기도 한다. 그때마다 끝에 매달린 조명은 흔들리면서 전시 공간에 움직이는 그림자를 드리운다. 관람객의 그림자도 같이 좌우로 흔들리면서 흥미로운 시각적 경험을 준다.








20161204_151711_HDR.jpg <무지개 집합>, 2016



한편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한 층을 더 올라가면 습한 기운과 물 냄새가 코를 자극한다. 그리고 눈 앞에 물의 장막과 물에 빛이 산란되어서 생기는 오묘한 빛깔이 신비한 공간을 만들어내고 있다. 경탄을 자아내는 풍경이다. 사람들은 우산을 쓰고 이 공간에 들어가고, 물 냄새를 맡고 물을 맞기도 한다. 후각과 촉각, 시각, 청각, 모든 감각이다 자극되면서, 자연 속에서는 할 수 없는 비자연적인 자연이자 현대적인 자연을 체험할 수 있다.












지금, 여기를 끌어들이기



올라퍼 엘리아슨의 또 다른 특징은 작품 속에 현재라는 시간과 여기라는 공간을 끌어들이고 있다는 것이다. 그의 작품은 과거 회화나 조각 작품처럼 완성된 채로 존재하지 않는다. 한면이 비어있고, 그 자리를 감상자와, 전시 공간과 시간이 채운다. 작품 자체가 감상자나 주변 풍경에 따라 계속 변화하는 것이다. 특히 그는 거울을 이용해서 이러한 효과를 준다.





20161204_145038_HDR.jpg <자아가 사라지는 벽>, 2015


<자아가 사라지는 벽>은 한쪽 면에는 검정 벽이, 한쪽 면에는 기하학적인 모양으로 배치되어 있는 거울이 있는 통로이다. 거울은 자신을 비추기도 하고, 뚤려 있어 벽의 반대편에 있는 사람들이 보이기도 한다. 또 삼각형 모양의 구멍 안에는 거울이 비스듬한 각도로 놓여 있어 거울 속에 거울 속에 거울이 보인다. 이 통로를 통과하면 내 모습도 조각나고, 복제되고, 지나가는 사람들도 일부만이 언뜻 비췄다가 사라진다. 어느 하나도 온전히 알 수 없는 머릿속에 들어온 것 같다. 이 외에도 그의 작품들 대부분은 감상자들이 직접 들어와 새로운 미적 공간을 체험할 수 있게 열려 있다.











전시를 나서면서


여러 체험들을 뒤로하고 전시장을 나오는 나는 어떤 사람인가? 어떤 사람이 되었을까?

감각이 민감해지고 내 주변에 있던 것들을 조금은 새롭게, 다시 느낄 수 있게 된 것 같다. 바람과 빛과 물과 시간이 이전과 달리 새롭게 느껴진다. 평소에는 보지 못했던, 빛이 만들어내는 색과 그림자를 느낄 수 있고, 바람이 대상을 흔들어 놓는 것과 시간이 흘러가는 것을 감각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올라퍼 엘리아슨의 창조적인 에너지를 나눠받아 내 상상력도 새로운 방향으로 뻗어나갈 수 있을 것만 같다. 모든 사물에 무한한 가능성이 숨어있고 이것을 나도 길어 올릴 수 있을것만 같다.

현대 문명 속의 자연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평소 느끼지 못하는 감각적인 경험을 하고 싶은 사람이라면, 기발하고 새로운 현대 예술을 보고 싶다면 이 전시를 추천한다. 감각을 일깨우고 상상력을 충전하는 새로운 경험이 될 것이다.











사진출처: 직접 촬영 혹은 삼성미술관Leeum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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