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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도그림 Sep 03. 2017

미술사 공부

조용한 감상 속, 닿을 수 없이 맑은 즐거움이 선물처럼 온다


   요즘 자세히 들여다보는 연습을 하고 있다. 그림과 조각을 꼼꼼하게 감상하고 공부하는 것이다. 미술관에 비슷한 모습으로 자리한 수많은 종교화, 역사화, 초상화, 그리고 여러 인물상들 각각의 적절한 이름을 배워 불러주는 중이다.





   예전이라면 음 평화로워, 표정이 쓸쓸하군, 극적이네, 하고 슥슥 감상하다가 결국 그게 그거 같다며 덮어 두었을 그림들이다. 혹은 작품 속 상황을 머릿속으로 그리면서 인물에게 감정 이입하거나 멋대로 상상의 나래를 펴 주관적으로 감상했을 그림들이다.


   하지만 이제는 그림을 그 자체로, 자세하게 감상한다. 작품의 배치와 구성을 보고 독특한 색감을 느끼기도 하며, 질감과 양감의 표현이 얼마나 탁월한지 평가해보는 식이다. 또 같은 주제를 다룬 작품들과 비교해 그 작품의 독창적 발상을 파악하기도 한다. 그리고 이 작품이 당대의 미학적 문제들을 어떻게 해결하는지, 미술사 속에서 어떤 의미로 위치하는지 이해한다. 작은 근육들을 단련하는 것처럼, 섬세한 언어를 내 단어장에 더하듯, 나날이 눈이 더 민감해져 시각 예술의 여러 층위가 더 면밀하게 보인다.






   미술사 책의 페이지를 넘나드는 손끝에 기대와 긴장이 어려있다. 생기있는 눈으로 여러 도판의 부분들을 비교하고, 다시 멀리서 전체로서의 작품을 감상한다. 색채와 소재, 양감과 질감, 손가락의 섬세한 표현, 윤곽의 처리 방식, 배경 이미지, 공간감, 리듬, 비례, 균형, 조화 같은 단어들이 더 이상 공허한 비평용어가 아니다. 작품마다 이 단어들이 충만하게 채워지고 이 단단한 씨앗들은 작품에 대한 내 애정이 된다.





   이렇게 오래 보고 많이 보고, 생각하고 느끼면서, 차이를 파악하는 눈을 닦아 나간다. 이 과정의 기쁨은 스펙터클이 주는 즉각적이고 강렬한 쾌감과는 다르다. 노력하지 않아도 눈길을 끌고 마음을 황홀하게 하는 것들에서 느낄 수 없는 것이다. 은은하고 고요한 감동, "아... 좋다." 하는 순수하고 닿을 수 없이 맑은 즐거움과, 어떤 이해와 슬픔, 어떤 부조리에 대한 감각이 마음 속에 퍼진다. 베일 뒤에 있던 탁월함이 점점 모습을 드러내면서 놀라움과 경외가 이 조용한 감상 속에서 결정처럼, 선물처럼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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