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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도그림 Dec 20. 2017

온기

온기 속에서 잠이 들었다

 진흙두덩이처럼 생겨서 맨질맨질하고 못나게 웃던 어린 시절, 할머니 집 뜨끈한 방바닥에 까슬까슬한 이불을 깔고 할머니가 가운데에 언니와 내가 양 옆에 누웠다. 창문으로 부옇게 번진 빛이 은은하게 들어오는 어둠 속에서 할머니가 이야기를 하면 나는 좋다고 히죽거리며 이야기를 들었다. 몸을 웅크리고 할머니께 꼭 붙이고는 할머니가 언니 쪽을 보고 있으면 왜 언니 쪽을 보냐며 할머니 고개를 내 쪽으로 돌렸다. 그러면 언니가 또 왜 내 쪽을 보냐며 고개를 돌리고, 할머니는 우리의 손길에 고개를 이리저리 돌리다가, 허허, 하다가 그 방의 온기 속에서 잠이 들었다.



 그보다 좀 더 커서 어느 저녁 텔레비전 앞 기다란 사인용 가죽 쇼파에 가족 넷이 앉았다. 10시가 되면 꼭 챙겨보던 재밌는 사극이 하는 중이었고 나는 엄마 배에 머리를 대고 누워서 엄마가 숨을 쉴 떄마다 배가 올라갔다 내려갔다 하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내 머리도 조금 올라갔다, 조금 내려갔다 했다. 엄마는 머리가 왜 이렇게 무겁냐며 앉으라고 했고 나는 쇼파에 기대 앉아서 이번에는 내 발을 아빠 다리에 올렸다. 항상 손발이 차던 터라 아빠는 앗 차가워- 왜 이렇게 차가워, 하면서도 가만히 계셨고 열이 많았던 아빠의 몸에 내 발도 금방 따뜻해졌다. 사극 속 일본군에게 우리 군대가 밀리고 있을 때면 언니와 나는 벌떡 일어나 텔레비전 앞으로 달려가서 허공에 주먹질도 하고 발길질도 하며 힘을 보탰다.



 넙데데한 미소에 착한 눈망울을 한 나는 자랐다. 누런 흙덩어리에서 팔이 길쭉 자라나고 다리가 주욱, 그리고 생각들이 가지처럼 길게 자라서 이곳저곳을 뚫고 나왔다. 나는 다른 사람에게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는 법, 나를 내 안으로 추스르는 법을 배웠다. 나는 더 강해지기 위해 똑똑해지기 위해, 내 안의 어떤 가능성을 틔워보기 위해 힘썼고 또 점점 무언가와 멀어져갔다. 나는 막대기처럼 대화했고 막대기처럼 밤길을 걸었다.







 슬픔이 자꾸 찾아오는 시기가 있다. 책을 집중해서 읽다가 쉬려고 고개를 들었는데 거꾸로 엎어 놓은 책 위로 슬픔이 찾아온다. 집까지 오는 짧은 길을 이리 저리 늘려가며 걷다 혼자 있는 방에 돌어와 잠이 오지 않는 시간을 구기며 보낸다. 바쁜 하루를 마치고 일어나 몇 걸음 떼지 않았는데 또 문득 내 안에 있는 슬픔을 바라보며 이것은 언제부터 있었나, 나는 원래 슬픈 사람인가, 여태까지 그걸 애써 이겨내고 하루를, 한달을 보낸 것인가, 하고 생각한다. 몇 분 전만해도 그러지 않았는데.  



 그러다보면 몇몇 따뜻했던 품들이 떠오른다. 손에 꼽을 정도로 몇 되지 않는 기억들이다. 그 품 속에서 나는 나도 모르게 줄줄 울었었다. 왜 울고 있지, 하면서 고개를 떨구고 눈물을 뚝뚝 흘렸다. 안길 수 있는 품이 있었다는 것, 마음이 황량하고 쓸쓸할 때 온기를 나누어 줄 사람이 있었다는 것이 좋았다. 지금의 나는 누구에게 안길 수 있지? 누구를 안을 수 있지? 거리를 두게 만든 것은 시간이고 세월이었나, 서로에게서 멀어지는 것이 이 사회와 시절의 필연적인 방향인가. 관계를 지우는 쪽은 항상 나였던 것 같다. 안에서부터 서서히, 혹은 한번에 주욱. 그리고 혼자 길게 서 있다. 나를 안아주지 못하는 단어들이 날 둘러싸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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