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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전시의 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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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도그림 Sep 09. 2017

크지슈토프 보디츠코 전- 목소리와 충격

예술이 소외된 사람들을 돕는 방식

미술이 더 나은 사회를 만드는데 기여할 수 있을까? 미술이 부유한 컬렉터들의 취미활동이나 심미적 감상물 이상으로 사람과 사회를 위해 역할을 할 수 있을까? 미술에서의 미적 감상 이상의 더 큰 기능을 고민하던 요즈음의 나였는데, 이런 내 눈길을 끄는 전시가 있었다.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진행중인 크지슈토프 보디츠코 회고전: 기구, 기념비, 프로젝션 전이다.



"사회 내에서 소외되고 배제된 사람들의 존재를 드러내는 작품", "사회개입적 예술", "공공예술"

 

 그의 작업을 소개하는 이러한 문구들이 호기심을 자아했다. 이 작가는 예술을 통해 사회 문제에 어떻게 참여하고 있을까? 특히 복합적인 매체로 작업을 하는 작가로서 그는 영화나 문학 같은 다른 분야들과는 어떻게 다르게 정치적 발언을 하고 있을까? 이 작가는 정말 내 마음을 움직일 수 있을까?


  결론부터 말을 하자면, 전시장을 나오는 내 마음은 욱신거리고 있었다. 나를 정의하고 정당화했던 갑옷같은 껍데기에 균열이 생기고 있었다. 그의 작업이 어떤 것이었기에 그러했을까? 이 통증과 균열의 정체는 무엇이었을까? 이번 글을 통해 이를 밝히고자 한다.



크지슈토프 보디츠코의 작품 세계: 충격 주기



 크지슈토프 보디츠코는 미디어, 퍼포먼스와 기술을 활용해 공공장소에서 프로젝션 작업을 해온 폴란드 출신 작가이다.  

 그의 대표적 시리즈인 기념비와 프로젝션 작업에서 그는 일상적인 공공장소를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사용해 시각적, 청각적, 서사적인 충격을 주면서 감상자들의 마음에 어떤 베임 같은 상처를 만들어낸다. ​전시장소로 보디츠코는 미술관이 아닌 공공건물이나 기념비의 외관을 선택했다. 그는 사람들의 신체 일부를 보여주는 영상을 마치 이 장소에  잠시 어떤 영혼이 씌인 것처럼 투사하고 이와 동시에 그들의 목소리를 내보낸다.

 이 목소리는 그들이 경험한 폭력과 부조리에 대한 것이다. 변태적인 폭력 아래에 무력했던 과거에 대해, 정신적 트라우마에 의한 가족의 붕괴에 대해, 전쟁에서의 부상과 죽음, 정신적 충격에 대해, 남성의 권력을 당연시하는 제도 속에서 필요한 도움을 받지 못한 채 폭력 속에 침잠해가야 했던 시간들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다.


 이러한 그의 작업은 충격적이다. 왠만한 아방가르드가 진부해져 버리고 자극적 표현에 익숙해진 현대 사회에서도 그의 작업은 강한 정서적 반향을 남길 만큼 인상적이다. 이는 일차적으로 그의 작업이 시각적으로 낯설고 강렬하기 때문이다. 위인 조각상이 우리에게 말을 거는 듯한 방식의 프로젝션이나, 눈, 손, 클로즈업된 얼굴을 투사해 이들의 포장되지 않은 심리상태와 마음을 드러내는 방식은 사람들의 호기심과 끌고 시선을 잡아둔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그 후의 이야기가 마음에 베임을 내는데 결정적이다. 이는 권력의 하층에 있어 발언권이 없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공공장소에서 거의 처음으로 울려 퍼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들의 이야기가 일상적으로 접하는 세계나 소비적 미디어에서 생산하는 사회에 대한 이미지와 너무 큰 격차가 있기 때문이다. 듣는 사람들은 연민, 분노, 불편함, 부조리함과 같은 감정에서부터 수없는 고통의 호소에 따른 피로함, 그 배후에 있는 거대한 모순 앞에서의 무기력함 같은 온갖 감정을 느끼게 된다. 그리고 복합적이고 욱신거리는 감정은 우리에게 소외된 자들에게 관심을 가지고 행동하라고 말한다.


 그는 스크린이나 텍스트에 국한된 영화와 문학과 달리 재료와 작업방식 선택에 무한한 다양성을 가지고 독창적인 매체와 방법을 사용한다. 눈앞에 존재하는 물질적인 장소와 기념비를 이용하는 방식은 영화나 문학보다 더 직접적이고 감각적인 효과를 주고 이는 그 순간을 함께하는 감상자들의 정서적 반향을 배가한다. 이를 통해 보디츠코가 전달하고자 하는 정치적 메시지가 더 강력하게 전달되는 것이다.  



작가의 의도


 보디츠코의 이러한 작업을 통해 감상자들의 세계에 대한 이해와 지각을 변화시키고자 한다. 기념비에 투사되는 발언들이 폭력이 가져오는 상처를 기억하는 기념비로 남아, 기념비가 그러하듯 미래를 향해 과거의 충고로, 비판적인 대화로 기능하도록 하려는 것이다. 하지만 그에게 이보다 더 근본적이고 중요한 것은 이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사람들을 돕는 것이다. 일상적인 질서에서는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자신의 공적 목소리를 개발할 기회를 주고, 보호받고 있다는 생각이 드는 환경에서 이 이야기들을 전함으로써 이들의 상처가 개선되기를 희망하는 것이다.






전시장을 나서며


 그렇다면 보디츠코의 프로젝션 앞에서 내가 느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작품은 나에게 어떻게 다가왔고 내 마음은 어떻게 변화했을까?
 처음에는 불편함이었다. 상황과 전제들을 따지며 휘말리지 않고 가능한 객관적인 판단을 내리려는 경향이 있는 나였기에, 영상 속 사람들이 토로하는 고통으로 문드러진 이야기들이 지나치게 감정적으로 느껴졌다. 나와 저들간 거리를 둔 채로 '왜 저렇게까지 슬퍼하지, 논리적으로 따지면 이해할 수 있는 것 아닌가, 자신의 상황과 심리에 대한 반성적 분석이 결여되어 있는 것 아닌가, 인간과 사회는 원래 부조리한데', 하며 관조했다.
 하지만 8개의 프로젝션을 하나하나 주의 깊게 보면서 나는 점점 이들과 가까워지고 있었다. 고개를 갸우뚱하며 관조하는 대신에 이들의 공포와 상처를 나도 느끼고 있었던 것이다. 아무리 스스로에게 현 상황을 논리적으로 설명한들 어떤 치유도 되지 않는, 설명이 관여할 수 없는 아픔 자체를 이들은 겪고 있었다. 인간사는 원래 비극적이야, 라는 차갑고 무책임한 말의 덮개를 들춰보면 나날이 고통받고 폭력성 앞에 무력한, 실제 사람들이 있었다. 마지막 관 김구 조각상 앞에서 나는, 고통을 어떤 역사적, 심리적, 사회적 맥락으로 설명하든지 간에 이러한 고통을 겪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 자체가 잘못된 것이고, 이를 개선하기 위해 행동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다들 각자가 떠안은 사연을 풀어내는데 우린 그동안 너무 단절됐었다. 작가가 주목하는 부분 또한 이것이다. 겉으로 드러난 모든 정치적 사건을 뒤로하고 인간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감정을 이야기하고 호소하며 소통하자는 거다. "(중략) 타인의 고통에 귀를 기울이고 그것이 어떤 것인지 느끼려는 노력, 함께 소통하려는 '태도', '관점'이 중요하다. 그럼 많은 부분이 해결될 수 있다. 만약 해결이 안되더라도 개선될 수 있다." 여기서 그가 말한 해결, 개선은 단지 위안에 그치는 차원이 아니다. sympathy가 아닌 empathy로 나아가야 한다는 거다.
-월간미술 8월호
 <크지슈토프 보디츠코 전> 중-



 출발은 어렵지 않다. 지금 여기에 존재하는 여러 아픔들에 귀를 기울이고 그들에게 공감하는 것이다. 더 나아가 이 감정적 동력을 바탕으로 문제를 찾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행동하는 것이다. 여태까지 나의 정치적 무관심을, 정치적 사태들에 대해 감정적으로 동요하지 않고 비판적으로 거리를 두는 중이라고 스스로 합리화하였는데, 결론적으로 그런 거리두기는 사유하지 않음이자 행동하지 않음이었고 아무런 힘이 없었다. 전시는 과거의 태도에서 벗어나 보다 경청하는 사람이 되고 그래서 정치적인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다짐을 남겼다.




 우리 사회에서도 그 어느 때보다 '공공 예술', '사회 개입적 예술'에 대한 관심이 높다. 수십년간 겪은 남북 분단이라는 특수한 정치적 상황으로 인하여 예술 분야에서 정치 사회적인 특성에 집중하는 것이 금기시되어 왔는데 이러한 금기가 조금씩 해체되고 있다. 정치적인 예술에 대한 억압으로부터 조금씩 벗어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사회적으로, 예술적으로 적절한 시기에 보디츠코의 예술을 만나게 되었다.
-큐레이터의 말-



 
 나에게 있어서도, 관념적인 미와 논리의 세계 밖으로 발을 디디려는 시기에 이 작품들이 적절하게 이 찾아온 것 같다. 다른 이들도 책임감 같은 어떤 무거운 감각을 안고 전시장을 나와 이를 오래 지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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