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전시의 맛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지도그림 Apr 17. 2018

영화 몬태나- 생존, 증오, 이해

우리는 너희와 다르지 않다

   광활하고 황량한 사막에 오두막 한 채가 있다. 집 안에 갓난아기는 잠들어 있고 어머니는 예쁘고 오순도순한 두 딸에게 영어를 가르치고 있다. 그 때 갑자기 밖이 시끄러워오고 말발굽소리가 커진다. 아버지는 장총을 들고 나가고 나머지 가족은 영문 모를 난데 없는 상황에 겁에 질려 우물쭈물하고 있다. 원주민들이 달려온다. 아버지는 이들을 향해 총을 쏘지만 결국 화살에 맞아 쓰러지고, 얼굴을 검붉게 칠하고 광기 어린 서늘한 웃음을 입에 건 원주민이 칼로 아버지의 머리 가죽을 벗긴다. 이마와 머리카락의 살점이 덜렁거리는 채로 아버지는 쓰러진다. 뒷걸음치는 아이들과 원주민의 눈이 마주친다.  

   영화관 의자에 앉자마자 숨돌릴 틈도 없이 눈 앞에 충격적인 장면들이 연속된다. 바위 밑에 숨어 혹시나 소리를 낼까 본인의 입을 틀어쥐는 로잘리(로자먼드 파이크)를 따라 내 어깨도 잔뜩 긴장해 올라갔다.  


출처: 구글 이미지

   

   첫 시퀀스에 사로잡힌지 채 되지 않아 이번에는 눈 앞에 광활한 미국 서부의 사막과 숲이 펼쳐진다. 마사노부   타카야나기 (Masanobu Takayanagi)의 시네마토그라피와, 그 풍광에서 나온 것처럼 드넓고 황량하며 서스펜스와 심연을 담은 막스 리히터(Max Richter)의 음악은 여느 영화에서나 만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때는 1892년, 미국이 아메리카 원주민들을 보호구역으로 강제 이주시키는 매니페스트 데스티니 (Manifest Destiny) 정책을 펴면서 이에 대한 반발과 학살, 원주민과 이주민들간의 전쟁이 막바지에 이르렀을 즈음이다. 군인으로서 평생 원주민들과 싸운 조셉 블로커(크리스찬 베일)는 과거에 부대원들의 목숨을 앗아 갔던 옐로우 후크 추장(웨스 스투디)과 그의 가족들을 고향 몬태나로 호송하라는 명령을 받는다. 블로커는 원수를 도와야 하는 상황에 분노하지만 결국 명령에 따라 포트 베링거에서 몬태나까지의 긴 길을 떠난다,  



출처: 다음 영화


   그 여정에 위협은 끊이지 않는다. 로잘리 퀘이드의 가족을 살해한 코만치 부족들에서부터, 사막을 돌아다니는 사람들, 몬태나의 땅을 차지하고 있던 사람들까지 위험은 계속된다. “미국 영혼의 본질은 단단하고 고독하고 금욕적이며 살인자이다. 그것은 절대 아직 사라지지 않았다. (The essential American soul is hard, isolate, stoic and a killer. It has never yet melted.)”라는 D.H. 로렌스의 말처럼, 이곳은 호전적인(hostile) 곳이다. 대화와 타협이 없는 무질서, 죽이지 않으면 내 사람들이 죽는다. 누구도 악인이 아니지만 모두가 악인인, 다들 우선 살아남기를 바랄 뿐인 폭력의 장소를 영화는 말없이 보여준다. 

   영화는 인물의 과거, 그들이 겪고 행한 잔혹한 학살과 서로에 대한 분노, 그간 쌓인 회한과 자책에 대해 많은 설명을 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인물의 감정선을 따라가고 호응할 수 있는 것은 배우들의 탁월한 연기 덕분이다. 블로커(크리스찬 베일)의 억세고 절제된 표정은 그의 의중을 되묻게 하고, 로잘리(로자먼드 파이크)의 텅 빈 눈빛과 원통해하는 몸짓에 어찌할 바 모르는 안타까움이 밀려온다. 말을 삼간 채 오직 표정과 몸짓으로 연기하기에 더 주의를 기울이게 된다. 


출처: 구글 이미지


출처: 다음 영화


   이렇게 인물들은 길을 가고 텐트를 치고 적을 만나면 죽이고 상실에 괴로워하고 짧은 대화를 나누고, 또 길을 간다. 2시간 넘게 계속되는 이 여정을 따라가다 보면 이 질문을 하게 된다. 

   --이들은 무얼 위해 가는가? 그래서 남는 건 무엇인가?


   이 여정 끝에는 폭력과 상실의 트라우마만이 있을 뿐이다. 자신이 살리지 못한 사람들에 대한 자책, 그들이 남긴 공백, 야만적이고 비인간적으로 변한 자신에 대한 경멸과 두려움 같은 것. 남은 사람들이 할 수 있는 것은 서로의 상실감을 이해하고 상처 위에서 살아가는 것뿐이다. 목적지에 도착했는데도 행복도 사랑도 성취감도 안도감도 없고, 이들은 아무것도 얻은 바가 없다. 그래도 원주민 아이와 로잘리에게 가는 블로커의 마지막 선택에서처럼 우리와 너희가 다르지 않았다는 것, 다들 상처받는 사람일 뿐이었다는 것, 그 이해와 변화만이 이 호전적인 길 끝에 남은 것 아닐까. 









<몬태나 (Hostiles)> , 2017, 스콧 쿠퍼 감독



매거진의 이전글 크지슈토프 보디츠코 전- 목소리와 충격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