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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도그림 Nov 22. 2018

미술은 생태에 대해 무슨 말을 하는가?

동시대 미술 보기 



 투명한 페트병에 호스들이 연결된 기구가 있다. 안에는 초록빛 조류(수생생물의 이름)가 자라고 있다. 이것은 에이미 프란세시니 (Amy Franceschini)와 환경 과학자인 조나단 메수어 (Jonathan Meuser)의 콜라보 작업 DIY 조류/수소 생물반응기 키트 DIY (Algae/Hydrogen Bioreactor Kit) 이다. 이 기구는 조류의 효소를 이용해 수소를 생산하고 이를 통해 에너지를 만들어낸다. 두 작가는 개인들이 독립적으로 무공해 대체에너지를 생산해 공해를 유발하는 중심화된 에너지 산업에 대한 대안을 모색하는 것을 목표로, 그것이 완전히 불가능한 이야기는 아니라는 것을 집에서도 만들어낼 수 있는 작은 에너지 생산 키트를 통해서 보여주고 있다. 


 이것은 과학일까? 기술일까? 생태주의 사회운동일까? 이것이 현대미술이라는 이름으로 행해지고 있다는 것은 미술을 고전적인 회화나 인상파 그림이나, 잭슨 폴록, 앤디 워홀과 연결시키는 사람들에게는 낯설 것이다. 이 프로젝트를 기획한 에이미 프란세시니는 미술관이 경계를 넘어서는 탐색이 환영되는 장소이기에 이러한 DIY에너지 기술을 선보이기에 좋은 자리라 생각하였다고 말한다. 예술은 눈길을 끌 수 있고 표현적인 속성을 갖기에 사람들이 어렵지 않게 과학기술에 접근하고 관심을 가질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하였던 것이다. 이들은 이후 이 키트를 만들어내기 위한 일러스트 가이드북을 출간하고 미국 내 초등학교에서 관련 교육을 하기도 했다. 




 이 프로젝트를 추진한 에이미 프란세시니는 미래농부 (Futurefarmers)라는 단체를 만들어 다양한 매체로 작업하는 예술가들과 함께 환경 문제에 대한 공공 예술을 선보이고 있기도 하다. 이 단체는 사람들이 참여해 서로 상호작용하며, 해당 지역과 관련되어 있는 작업, 추상적인 아이디어들을 시각화, 촉각화, 공간화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시민들이 집에서 농작물을 기를 수 있게 키트를 제공하고 도시 공간의 생산적인 가능성에 대한 워크숍을 열었던 빅토리 가든 프로젝트, 도시에 비어있는 건물을 이용해 사람들에게 무료 수프와 지역의 토양 샘플을 나누어주면서 토양 복원, 풍력 에너지 생산, 도시 농업 등에 대한 워크숍과 토론을 진행한 soil kitchen 프로젝트가 있다. 



 



 동시대 미술(Contemporary Art)이라고 일컬어지는 이러한 작업들은 전통적인 예술이나 모더니즘 예술과는 다른 새로운 종류의 예술이다. 과거의 예술이 이전시대의 감수성에 부합했던 것이라면, 동시대미술은 현대의 감수성에 맞으며 우리가 맞닥드린 문제에 대해 이야기하는 미술인 것이다. ‘이런 것도 예술이라고 할 수 있는가’, ‘난해하다’ 하는 선입견에서 벗어나면 다른 어떤 시대의 미술보다도 더 공감되고 재미있고, 생각할 거리들이 많을 수 있다. 


 앞으로 몇 차례의 글을 통해 이러한 동시대 미술을 생태 미술을 중심으로 이야기해볼 것이다. 시작하기에 앞서 동시대 미술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수 있는 큰 프레임을 제시해보고자 한다.  포스트모던, 그리고 그 연장선에 있는 동시대 미술은 이전의 미술과는 다른 미학적 바탕에 있다. 이들과는 다른 목적을 추구하기에 동시대 미술은 전통 혹은 모던 예술과는 다른 기준으로 감상하고 평가해야 하는 것이다. 전통적인 고전주의 미술이 외부에 있는 의미있는 대상을 정확하게 재현하는 것을 목적으로 했다면, 모더니즘 미술은 ‘부정’을 핵심으로 이러한 고전주의 전통과 이후 새로운 규범이 된 모던아트를 부정하며 여러 미술 사조들을 만들어냈다. 이 때 미술은 위대한 예술가의 천재적 구상을 표현한 것이기에 특권적인 것으로 여겨졌다. 


 하지만 포스트모던과 동시대 미술은 다르다. 이들은 세상의 충실한 재현을 목표로 하지 않고, 회화는 회화의, 조각은 조각의 고유함을 찾아야 한다고 매체를 분리시키지도 않으며 예술에 특권적인 위치를 부여하지도 않는다. 과거에 고급문화 대 대중문화, 추상 대 재현 전통 대 혁신으로 대립하던 구도들을 포스트모던과 동시대 미술은 무너뜨리는 것이다. 하나의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단선적이고 진보적인 역사관도 거부되었다. 대신 동시대 미술에서는 여태까지 주변으로 배제되었던 타자성에 대한 관심이 대두되었다. 즉 제국주의적인 근대 문화에 대해 도전하고, 여성운동, 생태학과 환경문제, 비서구 문화에 대한 관심을 갖는 새로운 주제들의 작업들이 등장하기 시작한 것이다. 따라서 기존의 고전주의, 모더니즘 미술을 보는 방식으로 작품을 감상할 것이 아니라 동시대 미술이 기존의 틀을 와해하고 있음을 이해하고 이들 작업에서 현대의 주제들을 어떻게 풀어내는지를 중심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이러한 동시대 미술은 다양하게 전개되고 있다. 앞으로의 글에서는 특히 생태미술을 중심으로 동시대미술의 단면을 살펴볼 것이다. 생태미술은 지구의 생물, 자원, 생태를 보존하고 복원하고 이에 대해 발언하고자 하는 예술 장르이다. 그 실천에는 다양한 방법이 동원된다. 이미지나 오브제를 통해 지구 환경에 대한 정보를 전달하고 대화를 유도하기도 하며, 다른 종들과의 공존 방법을 그들의 작업 속에서 고민하기도 하고, 오염된 환경을 환경과학자, 조경건축가, 도시계획자 등과의 협업을 통해 복원하기도 한다. 혹은 공공정책에 영향을 끼치는 실천적인 변화를 시도하거나 지역공동체를 참여시켜 그들이 지속 가능한 삶의 방식을 실천하도록 유도한다. 기존 ‘예술’의 경계를 넘어서는 방법으로 환경과 생태에 대한 의미 있는 발언을 하는 이러한 독창적인 작업들에는 무엇이 있을까? 앞으로의 글에서 이를 살펴보고자 한다.  



 이 글들이 독자들에게 환경과 자신의 관계에 대해 더 생각해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우리에게 자연, 생태, 인간 이외의 존재들은 어떤 의미일까? 이들을 어떻게 보아야 할까? 같은 질문들을 숙고해보는 것이다. 또한 이 글을 통해 동시대 미술의 다원적인 전개를 보고 그 흥미로운 아이디어들을 나누었으면 좋겠다. 동시대미술은 아직 규범적인 설명방식으로 정리되지 않은 채 여러 미학적, 미술사적, 예술사회학적 담론들이 개진되는 중에 있다. 그 한복판에서 무엇이 진행되고 있는지, 이 글을 통해 함께 느낄 수 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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