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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도그림 Mar 02. 2019

어디까지가 나일까?

나를 이루는 수많은 타자들을 보는 법

“이 작업은 자화상이라고 할 수 있지요.”

달의 표면 같은 큰 원이 벽에 투사되어 있다. 분화구 같은 울룩불룩한 모양들이 천천히 움직이고 있다. 여기서 얼굴의 형상을 찾을 수 있는 것일까? 혹은 이것은 작가의 내면을 표현한 그림일까?

< Succession 연속 >


이 작업은 작가의 얼굴 일부를 촬영한 것이다. 다만 우리가 흔히 ‘얼굴’이라고 생각하는 영역을 찍은 게 아니라 캔버스를 얼굴에 문대어 피부에 있는 박테리아를 체취하고 그 박테리아들이 9일동안 번식하고, 생존하려고 하다 죽는 과정을 촬영한 것이다. 우리 몸에는 흔히 우리와 다른 개체라고 여겨지는 박테리아와 세균들이 공존하고 있으며 이런 개체들은 우리의 생존에 필수적이다. 우리는 단일하고 독립된 존재가 아니라 다양한 미생물들로 이루어져 있기에 이들을 찍은 작업도 충분히 자화상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이다.




이 작업을 한 테리케 하포자(Terike Haapoja)는 뉴미디어와 신기술을 활용한 비디오, 설치, 무대 작업을 하는 핀란드 출신의 작가이다. 그녀는 자아를 표현하고 자의식을 드러내는 기존 미술의 관행을 거부하며 흔히 자아와 다르며 분리되어 있고, 자아가 속해있는 배경이나 맥락 정도로 여겨지는 대상들을 중점적으로 다룬다.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다양한 생명체들에 초점을 맞춘 작업을 하는 것이다. 특히 이 중에서도 인간의 감각기관으로는 식별할 수 없는 생명체나 생명과정을 신기술과 정교한 과학기구들을 이용해서 보여준다.



그녀는 이들의 이미지를 드러냄으로써 여태까지 주목되지 않았던 관계들을 조명하고자 한다. 예술이 보이지 않는 것을 보여줌으로써 인식을 확장시키는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믿는 것이다. 그녀는 자기에 집중된 감상자들이 자기중심적인 시선에서 벗어나 자신이 환경이라는 확장된 관계망의 일부임을 인식하도록 이끈다. 인간이 외부에 의존하지 않고 스스로 자신의 생존을 보장하며 살아나가는 독립적이고 개별적인 개체라는 통념이 사실이 아니며 대신 여러 생명체들에 상호의존하며 살아나가는 것이 인간의 실제임을 보여주는 것이다.




 

< Dialogue 대화 >



한편 하포자의 또 다른 작업 <Dialogue 대화>는 인간과 나무의 대화를 다루는 참여형 작업이다. 감상자가 나무 앞에서 휘파람을 불면 대화가 시작된다. 이 호흡을 감지해 나무에 달린 이산화탄소 센서가 활성화되고 나뭇가지에 달린 세 개의 불이 밝혀지며 이 빛을 받아 나뭇잎은 광합성을 시작한다. 결국 감상자가 숨을 내쉼으로써 나무에게 이산화탄소라는 양분을 공급하고 나무는 광합성을 통해 산소를 생산하며 인간의 말에 반응하는 것이다. 나무의 대답을 보여주기 위해 하포자는 식물학 연구에서 사용되는 광합성을 측정용 소리 생성 장치를 나무에 달았다. 이 장치는 광합성을 감지해 소리를 내고 이는 나무가 마치 인간에게 다시 휘파람을 불어주는 듯한, 실제로 대화가 이루어지는 듯한 효과를 주는 것이다. 이 작업을 통해 하포자는 우리가 알고 있지만 일상적으로는 지각하지 못하는, 서로 다른 종 간의 상호작용을 드러내고, 두 개체 간의 대화로도 볼 수 있는 이 상호작용이 언제나 만연해 있음을 전달하고자 한다.





< Community 공동체 >



한편 <Community 공동체>는 죽음을 다루는 비디오 설치이다. 여기에서는 말, 송아지, 고양이, 새, 개의 사체의 열이 식어가는 과정을 적외선 카메라로 촬영해 보여준다. 하나의 조직된 개체가 죽음 이후 무정형의 상태로 전환되는 과정이 2시간에서 5시간 동안 진행되는 것이다. 열이 식음에 따라서 동물의 이미지는 점차 스크린에서 사라진다. 작가는 죽음이 생명의 끝이라고 여겨지는 통념과 달리 실제 물질적인 현실에서는 죽음이 끝이 아니며 한 생명이 죽은 후에도 자연의 다른 일부로 재조직화되는 과정이 일어남을 보여주고자 한다. 결국 현재 살아있는 존재들은 다른 생명체들의 죽음에 기반하고 있는 것이다.




그녀의 작업은 여태까지의 서구 철학의 기반을 뒤집는 작업이기에 의미가 있다. 인간을 이성적인 주체로 놓는 기존 철학에서는 인간을 자율적이고 자급자족하며, 비의존적인 존재로 보았다. 외부에 있는 무언가를 필요로 한다는 것은 불완전한 상태이며 결핍이라고 본 것이다. 독립적이고 자율적인 정신으로서의 인간이라는 관념은 우리 자신에 대한 생각에도 영향을 끼친다. 우리 또한 자신에 대해 생각할 때 스스로가 ‘너’, ‘저 사람’, ‘저 나무’, ‘손에 묻어 있는 균’으로부터 독립된, 개별적인 존재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실제 인간은 다른 개체들과 상호 영향을 주고 받으며 다른 개체들에 의존해 살아간다. 이러한 관점으로 인간과 자연을 보면 모든 영역에서 인간은 자족적일 수 없음이 드러난다.


셀프카메라 속의 얼굴에서 시선을 돌려 나를 이루는 수많은 타자들을 의식해보는 것은 어떨까. 나는 ‘고유한 나’, ‘외부로부터 자유로운 나’ 가 아니라 얼굴 표면의 박테리아들, 내 몸의 미생물들, 나를 이루게 된 죽은 동식물들에서부터 나와 관계되어 있는 사람들, 이 사회와 역사, 자연과의 상호 영향을 주며 의존하고 있는 존재이다. 독자적이고 특별한 ‘나’라는 관념에서 벗어나 관계망으로서 인간과 세상을 규정한다면 현실을 이해하는 관점도, 삶을 살아가는 방식도 달라질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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