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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전시의 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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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도그림 Aug 15. 2019

배달음식 문화 뒤집어 보기

구동희 <딜리버리> 展


 구동희는 우리가 그 안에 있어 잘 조망할 수 없는, 동시대 일상의 한 부분을 확대해서 들여다 보는 작업을 한다. 그녀의 확대경 속에는 익숙하고 만연한 대상들이 안과 밖이 뒤집힌 채로 있다. 이번 아트선재센터의 개인전 <딜리버리>는 2014 ‘올해의 작가상’ 이후 5년 만의 국내 개인전이다. 여기서 구동희는 배달과 배송, 특히 배달음식을 둘러싼 문화와 그 감각들을 포착한다.




 전시장을 들어서자마자 흰 벽에 있는 작은 스크린의 영상 하나와 마주하게 된다. CCTV를 연상시키는 저해상도 클립들의 연속이다. 식당에서 포장된 음식을 받는 장면, 트렁크에서 음식을 꺼내는 장면, 배달하는 장면, 냉장고에 냉동음식을 넣고 꺼내는 장면이 세부에서 약간의 차이를 보이며 반복된다. 어떤 서사도 없는 이러한 병렬적인 반복 앞에 오래 발을 묶이게 하는 것은, 카메라의 특이한 위치다. 배달원의 몸, 오토바이의 트렁크 뚜껑, 냉장고 안 벽면이라는, 그 누구의 눈도 위치하지 않은 곳에 설치된 카메라는 트렁크 뚜껑이 열리고 냉장고 불이 켜질 때마다 그 주변 풍광을 보여주고 있다. 관람객들은 ‘배송’ 신청과 동시에 하루에도 수 천 번씩 일어날 일을, 배달원, 냉장고, 트렁크의 시점에서 본다. 이 영상이 빌려주는 눈과, 그 프레임으로 포착한 배달음식 문화의 단면은 독특한 반향을 준다. 영상의 유일한 소리인, “감사합니다. 맛있게 드세요.” 하는, 건조하고 예측 가능한 배달원의 목소리는 녹음기에서 재생하듯 똑같이 되풀이되며 이 영상이 불러일으키는 사고의 연쇄를 촉진시킨다. 






 전시장으로 더 들어서면 영상의 여운을 의문스럽게 터뜨리는 오브제가 발길을 막는다. 유리로 된 푸드 커버 안에 들어있는 빨간 소주병 뚜껑들이다. 그리고 각각 광고쿠폰과 적립쿠폰이 들어있는 유사한 오브제가 전시장 다른 곳에서 반복된다. 한편 진열대에 나 있는 둥근 구멍을 허리 숙여 들여다보면, 예상치 못한 사물들, 피자의 삼각 고정핀과 비닐포장을 뜯는 플라스틱 칼, 거울, 물티슈, 빨대, 이쑤시개 같은, 당연히 있고 사용될 뿐인 물건들이 특이하게 결합되어 있다. 이러한 배치의 비약과, 전시 공간의 높이와 깊이의 변화, 낯선 것과 갑자기 마주하는 놀람은 작품으로 흡인시키는 힘이 된다. 주변에서 발생하는 사건들에 관심을 갖고 각종 매체를 통해 자료를 수집하는 구동희는, 대부분이 의식하지 않은 채 사용하는 사물에서 특이한 지점을 찾고 이들을 결합해 조직된 혼합물을 만들어낸다. 그 자체로는 완결되어있고 주변과는 공명하는 이러한 형상들은 현실에서 작동하고 있지만 포착하기 어려운 무언가를 보여준다.







 한편 전시장 안쪽에 놓인 피자 모양의 계단과 페퍼로니와 치즈가 기름지게 둘러진 기둥은 실물크기로 서서 시선을 끈다. 계단에 놓인 작은 조각상은 분수를 연상시키며 이 계단이 광장에 위치한 휴식과 사교의 장이라는 인상을 준다. 피자 조각 안에서 사람들은 누워서 잠을 자고, 앉아 대화를 나누고 휴식을 취할 것이다. 배달된 피자가 사람들에게 그러하듯이. 



 구동희는 이처럼 동시대 문화를 반영하는, 하지만 안과 밖이 뒤집힌 또 다른 공간을 만들어낸다. 들여다보면 재치있고 유머러스하면서도 정확하게 짚어내는 작업들이 또 다른 현실처럼, 뚜렷한 비판이나 제언 없이 서 있다. 구동희는 이러한 동시대적 현상들의 외부에 서서 이를 사회학적으로 분석하거나 비평하지도, 이 현상 내부에서 자신의 경험과 느낌을 풀어놓고 있지도 않다. 대신 그녀는 이 현상들에 대한 자신의 인상과 느낌을 3인칭의 위치에서 탐구한다. 현실을 재구성하여 비가시적인 감각들을 보여주는 이런 작업은 유희나 풍자, 때로는 부조리를 꼬집는 듯한 인상을 주며 관객들에게 여러 연상과 해석을 가능케 한다. 유통계의 부품이 된, 기계적이고 반복적인 배달원의 노동, 형식적인 서비스 멘트의 범람, 빨간 반투명 플라스틱이나 포장용 골판지, 각종 플라스틱 일회용품에서 드러나는 깊이도 정성도 없는, 얕고 급한 소비 자본주의. 이와 같은 단상들이 전시 공간을 오르내리고 작품을 들여다보는 관객의 머리 속에서 흐릿한 형태를 갖춘다.



 이러한 그녀의 재구성물은 어떤 해설이나 주석 없이도 그 자체로 관객들을 끌어들이고 연상, 상상하게 한다. 그리고 이를 통해 우리가 인지하지 못한 채 경험하는 동시대 문화를 다른 각도에서 볼 수 있게 한다. 이번 개인전 <딜리버리>의 전시 공간을 거닐면서 이를 몸소 체험해보길 바란다. 전시는 아트선재센터에서 9월 1일까지 진행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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