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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도그림 Aug 27. 2019

01. 올리브색 메뉴판

이것이 그녀가 오래 꿈꿔왔던 바로 그 책임을 알았다

  올리브색의 나무판 표지를 만지면서 윤영은 이것이 그녀가 오래 꿈꿔왔던 바로 그 책임을 알았다. 요리와 미식의 마법 같은 매력을 오감에 펼쳐놓고, 한 접시에 배어있는 겹겹의 이야기들을 설명하는 유일한 방식은 일종의 메뉴판을 쓰는 일이다. 요리를 꿈꿀 때의 뭉클한 기대, 재료를 만지고 썰고 익히는 느린 시간, 예쁘게 차린 테이블 위의 따뜻하고 풍족하며 정갈한 음식, 그 침이 고이게 하는 외양, 한 입, 한 입을 이빨로 찬찬히 씹기, 입천장과 혀 사이 공간에서 노닐게 하기, 맛의 조화를 가늠하기, 그 즐거움- 모든 것이 이 작은 책자 안에 들어있다.



윤영은 표지를 넘긴다. 그녀는 선택해야 한다. 그 날, 그 시간을 충만하게 할 수 있는 감각의 향연을. 오늘의 즐거움을 상상하는 짧지만 풍성한 시간이다. 여러 갈래의 갈림길 앞에 선 사람들, 이들에게 다가올 수 있는 미래의 가지들을 그린 지도가 이 단단한 나무 표지 아래에서 윤영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큰 유리창 옆 이인용 원목 테이블에 윤영은 앉았다. 넓은 공간에 시원스레 배치된 테이블, 곳곳에 놓인 길쭉 뻗은 관엽식물들. 투명하고 맑은 공기는 고소한 버터 향에 물들어 있다. 사람들의 생기 있는 음성은 대기에 잔잔히 녹아 둥글고 포근하다. 웨이터가 다이스 토마토가 올려진, 올리브유에 촉촉하게 구운 생선 요리를 들고 테이블 사이를 지나간다. 윤영은 ‘앙트레’라 적힌 두 번째 페이지부터 눈으로 훑기 시작한다.










작가의 말: 메뉴판처럼 읽으면 되는 소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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