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의 시공간에서 열리는 가능성
코로나19 국내 첫 확진자가 나온지 어연 1년이 지났다. 업무환경과 생활방식을 통틀어 그간 모든 분야가 달라졌는데, 현장 경험을 큰 가치로 내세웠던 전시와 공연도 변화를 꾀해야 했다. 취소 연기되는 행사들도 있었지만 일부 미술관은 ‘온라인’을 새로운 소통의 공간으로 인식하며 미술관에 오지 않아도 관람할 수 있는 온라인 전시를 여러 방법으로 시도했다. 전시스케치 영상이나 큐레이터 가이드 투어 영상을 온라인 플랫폼에 올리기도 하고, 오프라인 전시의 맥락을 온라인에서도 볼 수 있도록 전시 사진과 설명을 제시하기도 하였다. 또 강연과 퍼포먼스를 관객 없이 진행하고 녹화해 온라인으로 상영하기도 했다.
한편 오프라인 공간의 임시적인 대행물로써 온라인을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온라인 공간의 특성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전시의 형식을 실험하는 시도들도 있었다. 대표적으로 일민미술관의 《인류세 한국 X 브라질 2019-2021》, 한국-러시아 상호교류 30주년 기념 전시 《네 번째 차원을 본 사람》, 서울시립미술관 소장품전 《컬렉션_오픈 해킹 채굴》이 있다. 이번 글에서는 이 전시들을 되짚어보며 이들이 온라인 공간의 특성을 전시 기획에 어떻게 이용했는지, 온라인 전시의 장단점은 무엇일지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 이 글과 이어질 다음 글에서는 온라인이라는 시공간 조건을 보다 적극적으로 활용한 작업들을 통해 현대미술이 작품을 보여주기 위한 장으로서 가상의 시공간을 다루는 사례를 살펴보고자 한다.
일민미술관의 《인류세 한국 X 브라질 2019-2021》 전시는 일민미술관과 브라질 상파울루 비데오브라질(Associação Cultural Videobrasil)의 국제교류 프로젝트로, 2019년 일민미술관에서 열렸던《디어아마존: 인류세 2019》에 이어 한국을 인류세의 현장으로 주목한 전시이다. 이 전시는 코로나로 직접적인 국제 교류가 어려워진 현 상황에 디지털 전시 플랫폼을 전시장으로 삼아 한국 작가들의 작업을 브라질과 세계에 선보였다.
비데오브라질 웹페이지에 접속하면 큐레이터의 소개 영상이 나오고, 이후 전시관을 이동하듯 작품에서 다른 작품으로 페이지를 건너갈 수 있다. 작품 제목에 커서를 올리면 전시장 벽에 붙어있는 설명처럼 작가와 작업에 대한 설명도 읽을 수 있다. 이 전시의 특징적인 점은 온라인으로 보았을 때 감상 경험이 저하될 수밖에 없는 회화나 조각, 설치 작품이 아닌, 관람 장소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영상 작업을 중심으로 진행되었다는 것이다. 10편 이상의 단편, 중편 영상들이 상영중이었다. 이렇게 많은 영상 작업이 오프라인 공간에 전시되었었으면 끝까지 보지 못하거나 지루해했을 텐데, 집이라는 편안한 공간에서 보니 작업들이 효과적으로 전달될 수 있었다.
전시 홈페이지: http://ilmin.org/kr/exhibition/anthropocene-korea-x-brazil-2019-2021/
《네 번째 차원을 본 사람》은 한국과 러시아 작가들의 교류전이다. 시간과 공간을 주제로 다루는 한국 작가 5인과 러시아 작가 4인이 참여했다. 이 전시의 방식 또한 일민미술관과 유사한데, 전시를 위해 만들어진 홈페이지 첫 화면에 기획 의도의 글이 올라와 있으며, 전시장에 입장하듯 작가명을 클릭하고 페이지를 넘기며 작업을 볼 수 있다. 이 전시는 영상뿐만 아니라 사진과 회화도 다룬다. 사진/회화의 경우 이미지를 클릭해 고화질의 확대본을 볼 수 있도록 해, 실제 전시장에서 보는 것보다 더 생생하게 작업에 가까이 가는 효과를 주었다. 현장에서만 느낄 수 있는 회화 작업의 세밀한 요철들이 전달이 안된 점은 아쉽지만 전반적으로 오프라인 전시 감상과 비슷한 경험이었다. 오히려 시공간에 제약을 받지 않고 원하는 때에 접속해 원하는 작업만 보고 나올 수도 있어서 관람이 더 자유로웠다.
전시 홈페이지: https://thefourthdimension.gallery/ko
한편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열린 《컬렉션_오픈 해킹 채굴》은 온라인과 오프라인에 걸쳐서 진행된 전시이다. 서울시립미술관의 소장품을 재조명하는 이 전시는 ‘채굴’, ‘해킹’, ‘오픈’이라는 세 파트로 구성되어 있다. ‘채굴’ 은 연구자들에게 소장품에 대한 비평을 의뢰하여 소장품의 미술사적, 사회적 가치를 발굴해내고자 하는 파트이다. 전시를 위해 만들어진 사이트에는 작품의 이미지와 비평글을 병치해두었으며, 미술관에서는 해당 작품을 직접 보며 바닥에 붙어있는 비평 글을 읽을 수 있다.
‘해킹’은 소장품과 관람객이 만나는 방식을 실험한 5개의 작업을 중심으로 이루어진 섹션이다. AR디바이스로 미술관 소장작품을 발굴하는 아르동의 <뮤지엄 메이커>, 3D시뮬레이션 이미지를 활용한 양숙현의 <언박싱, 컬렉션>, VR전시장을 만든 김정태의 <PICO> 등 공간을 다루는 기술을 접목한 작업들이 많았다. 작업은 온라인과 오프라인, 어플리케이션 등을 통해 볼 수 있으며 전시장에서는 이 작업과 더불어 이들이 해킹하고자 했던 소장품들이 나란히 전시된다.
‘오픈’ 섹션은 미술관 소장품을 특징적인 지표에 따라 공개하는 파트이다. 가장 큰 작품, 가장 작품가가 높은 작품, 경계를 확정할 수 없는 작품, ‘서울시립미술관’ 키워드로 본 작품 등 재미있는 지표들에 맞는 작품을 볼 수 있다. 《컬렉션_오픈 해킹 채굴》의 오프라인 전시장을 핵심적인 기반을 두고 있지만, 전시의 전체 윤곽과 전시 배후를 이루는 텍스트들을 온라인에서 확인할 수 있으며 몇몇 작업들은 온라인에서 보도록 만들어졌다는 점에서 온라인과 오프라인이 시너지를 이룬다.
전시 홈페이지: http://collectionmining.kr/
이들 전시를 보면서 온라인 공간이 오프라인 전시장의 임시적인 모사이자 차선책이 아니라, 온라인 공간만의 장점과 가능성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선 시공간의 제약을 받지 않는다는 점이 큰 매력으로 다가왔다. 직접 먼 곳에 있는 전시장까지 가지 않아도 집에서 작업을 감상할 수 있으며, 육체적 피로감이나 시간 부족으로 전시장에서라면 다 보지 못했을 텍스트나 영상 작업들을 여유롭게 볼 수 있다는 점도 좋았다. 또한 온라인 기반이 관람자에게 감상에서 더 큰 자율성을 부여해 주었다. 사진이나 회화 작업의 경우 확대/축소를 하며 작품과의 거리감을 조절할 수 있었다. 영상 작업은 앞뒤로 타임 바를 넘길 수 있는 경우가 많았는데, 관람자가 자신의 필요에 따라 특정 부분을 다시 보거나, 멈추거나, 넘어갈 수 있어 관람이 용이했다.
하지만 작품을 직접 보지 못하는 데에서 오는 한계는 여전했다. 설치나 조각 작품이 비디오에 담기는 경우 작품이 주는 공감각적인 경험은 납작해져 버렸고, 작가가 원하는 사이즈나 스케일로 작품이 보여지지 못해 모든 작업이 도록에 담긴 듯 비슷해졌다. 작품이 인터넷에서 소비되는 이미지나 영상과 비슷한 수준에서 경험되면서 작품의 아우라가 많은 부분 사라진다는 점도 오프라인 전시와의 차이라고 하겠다. 스킵하고 넘기고 멈출 수 있는 만큼, 이러한 조작이 가능한 여타 영상들과 같은 차원에서 경험되는 것이다. 또한 전시 감상의 형식적인 단위가 되어주었던 미술관이라는 시공간이 없어지자 감상 경험이 하나로 완결되지 않고 잠깐 클릭하다가 다른 사이트로 넘어가버리면서 흐지부지하게 끝나기도 했다. 애초에 전시 주제나 작가에 관심이 없다면 굳이 온라인 전시공간으로 들어갈 여타 동기가 없다는 점도 접근성 면에서 제약으로 다가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온라인의 장점을 오프라인과 시너지를 낼 수 있는 방향으로 활용한다면 전시 감상을 더 풍부하게 하는 효과를 가져올 수 있을 것 같다. 특히 전시장에서 제대로 읽기 어려운 텍스트라든지, 온라인과 연계되는 작업들을 활용하면 전시장에서의 질문과 감흥을 그 밖으로도 가져가게끔 할 수 있을 것 같다.
이어지는 다음 글에서는 온라인 공간에서 작품이 어떻게 경험되는지를 작품의 내용과 형식에 반영한 작업들을 살펴보며 가상의 시공간이 어떻게 작품을 보여주기 위한 또 다른 장이 될 수 있는지에 대해 이야기하도록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