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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전시의 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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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도그림 Jan 01. 2021

매우, 매우 약하고 살아있습니다

노영미 개인전 <지붕 위의 도로시>


   어느 겨울 오후, 찬 공기가 감도는 전시장에 두 소리가 선명하고 아득하게 맴돈다.

   “트윙클 트윙클 리틀 스타-“

   별을 노래하는, 기계같이 건조한 목소리다. 소리가 나오는 화면의 영상에는 꽃병, 얼굴이 지워진 액자, 물컵, 둥근 창과 그 밖에서 흔들리는 나무가 있다. 모두 흑백이거나 몽롱한 하늘색이다. 형상은 점들로 이루어져 윤곽을 뚜렷하게 파악하기 쉽지 않다. 별처럼 박힌 점들이 짙은 남색의 화면 가장자리를 두르고 있어 영상은 우주를 상상하는 꿈의 한 장면 같다. “up above the world so high like a diamond in the sky” 여느 때보다도 힘없으면서 시적으로 들리는 이 가사 사이로 또 다른 소리가 끼어든다.



   터지듯 튀어나오는 기침소리다. 켈럭 켈럭, 콜록. 오른편 똑같은 크기의 스크린에 이번에는 한 여자가 있다. 아까의 창문과 테이블은 한 켠에 비껴 있고 가운데에서 여자는 몸을 수구리고 기침을 한다. 엉덩이와 목덜미가 하얗게 드러나 있다. 벽에 걸린 둥근 시계는 아홉시 삼십분을 향해 조금씩 바늘이 움직인다. 기침할 때마다 여자의 몸이 움찔거린다.

   나란히 되풀이되는 이 두 영상 옆에는 <돌아와 다시 만나자 歸迴石› 라는 오브제가 있다. 약한 석질의 돌에 가짜 다이아몬드가 일렬로 붙어있는 이 조형물은 저 스크린 속 세계에서 튀어 나온 것 같다. 수석의 조악한 모사품일 뿐이라 하기에는 당당하게 서 있고 어떤 시적인 기운이 느껴진다.



   대안공간루프에서 진행중인 노영미 개인전 <<지붕 위의 도로시>>에는 세 영상 작업 <Cough Cough.>, <Twinkle Twinkle>, <1021>을 비롯해 점묘법으로 제작한 7개의 평면, 무빙이미지, 오브제, 렌티큘러 등이 전시되어 있다. 그간 보여주었던 <파슬리 소녀>, <KIM> 이 웹에 돌아다니는 이미지 소스들을 조합해 설화나 동화를 다시 보여주었다면 이번 작업들은 점을 기본단위로 해서 작가가 직조한 서사에 이미지들을 입힌다.


   입구에서 엿본 이 세계는 아래층의 영상 <1021> 에서 한 편의 기이하고 갑갑한 이야기가 되어 펼쳐진다. 이 중편 애니메이션은 ‘10월 21일’이라는 키워드 검색을 통해 발견한 100년간의 데이터를 재조합해 만들어졌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 2011년의 지구 종말 예언, 2003년 행성 에리스 발견 등 10월 21일에 일어난 사건들은 이야기 속으로 짜여 들어오고, 사건의 본 이미지들은 망점이 드러나는 낮은 해상도로 변환되어 그래픽노블 같은 이미지들과 얽혀 제시된다.



   황정우 음악가의 음울하고 분절적인 기계 음악이 장면과 장면을 접합한다. 기억이 잘 나지 않는 답답한 꿈 속에 있는 듯, 사건의 파편들은 뚜렷한 개연성 없이 이어지고 두 인물의 생은 어쨌든 만들어진다. 새로운 세상이 열릴 것이라며 홀연히 떠난 ‘옥토버’를 추억하며 기이한 소설들을 쓰다 갑작스럽게 죽은 ‘하이마’와, 야생에서 온 아이 ‘해인’이 산사태로 실종된 후 평생을 약물중독과 갱생을 반복하며 살다 정신병원을 탈출해 사라진 ‘옥토버.’


   스크린 안에서 완성된 이 세계는 건조하고 극단적이지만 동시에 어떤 지향점과 아름다움을 품고 있다. 그만의 시적인 정서를 가지고, 슬픔과 비극이 있는 완결된 세계이다. 노영미의 점들은 기침 방울이 되어 파리하고 병적으로 튀어나오기도 하지만 또 이 점은 별이고 다이아몬드이다. 전시장 1층에 전시된 <룬가 박사 / Ars Lunga>가 이 세계를 농축해 보여준다. 렌티큘러 형식으로 제시되는 이 작업 한 면에는 SF작가 어슐러 르 권의 시 ‘Ars Lunga’가 있고, 각도를 비틀면 구글 번역기로 7차례 번역을 거치며 의미가 벗겨져나간, 그 구멍들이 독특한 느낌을 주는 시 ‘론가 박사’ 가 있다.



   픽셀과 망점의 몸으로 움직이는 노영미의 인물들은 한번에 아홉 개의 삶을 다 사는 (“by living all these lives / nine at once or ninety”), “매우, 매우 약하고 살아있”는 존재들이다. 취약하지만 생생한 생명력으로, 모든 면들이 다 노출된 채 (“all sides exposed”), 그을리도록 마음을 열어둔 이들이다. 데이터를 거듭하며 열화된 이 세계 속에서 이들은 기침하고 별을 노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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