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글에서는 온라인으로 진행된 세 전시를 살펴보며 온라인 전시와 오프라인 전시의 차이와 장단점에 대해 이야기했다. 이번 글에서는 새로운 공간적 조건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작품들을 소개하고자 한다. 비단 오프라인의 것을 온라인으로 옮기는 것이 아니라, 전시 공간에 대한 고민을 작품의 형식과 내용에 반영해 보여주는 작품들이다.
우선 《네 번째 차원을 본 사람》에서 전시된 김희천의 <나 홀로 ‘멈블’ 보기 (2020)> 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다. 이 작업은 아틀리에 에르메스에 전시했던 기존 작업 <멈블(2017)>을 온라인 전시를 위해 바꾼 것이다.
2017년 전시 당시에는 단채널 영상으로 전시장 모니터에서 상영되었지만, 이번 전시에서는 게임과 영상 사이의 어떤 것으로 바뀌었다. 다른 영상 작업과 달리 이 작업은 플래시 게임에 입장하듯 화면을 눌러서 시작할 수 있으며, 키보드 키 (WASD)를 눌러 화면 내에서 이동이 가능하다. 작품이 시작되면 끄지 않는 한 멈추거나 스킵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게임 같은 형식이긴 하지만 사실상 화면에 보이는 것은 대부분 어둠이고 간혹 움직이다 보면 흐릿한 빛이나 아이폰 화면, 형체를 분간할 수 없는 무언가가 보인다.
이 작품은 유사-게임이라는 형식을 통해 감상자의 공간을 이전시키는 효과를 가져온다. 감상자는 집에서 노트북 스크린을 보고 있지만 키보드 방향키 조작이라는 모션을 통해 영상 속에서 움직이는 인물에 투사되고 우물 속에 갇힌 존재로 전이된다. 내 방과 책상은 그대로이지만 어느새 갑갑한 어둠은 저 멀리 있는 대상이 아니라 내 캐릭터이자 곧 내가 처해 있는 현실이 된다.
또한 이 작업은 여러 겹의 내러티브를 통해 현실에 여러 시공간의 레이어를 덧올린다. 작업은 가상 공간에 맵핑 된 현실, VR시점에서의 공사장, 가상 시스템 상에서만 존재하는 친구, 밤에 잠을 잘 때 꾸는 꿈 등 현실과 가상을 오간다. 감상자들은 온라인이라는 가상 전시장에서 여러 차원의 시공간을 경험하면서 기술과 시공간에 대해 작업의 형식과 내용 모두에서 생각해보게 된다.
한편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전시된 양숙현의 <언박싱, 컬렉션>와 김정태의 <PICO>는 온라인을 전시 공간으로 사용하는 것을 넘어서서 작품을 전시할 공간을 작품 자체 안에서 새로 만들었다. <언박싱, 컬렉션>은 미술관이 보유하고 있는 3D 시뮬레이션을 작업의 배경으로 가져왔다. 관람객들은 작품 속에서 가상 미술관 공간을 이동하며 공간 곳곳에 놓여있는 박스를 오픈한다. 박스 안에는 이미지나 문구 같은 모호한 힌트들이 들어 있다. 관객들은 집에 있으면서 작품 안에 만들어진 미술관 공간으로 다시 이동하게 된다. 3D 미술관 전시장은 작품이자 작품을 위한 배경이 된다.
김정태의 <PICO> 는 VR 장비를 착용하고 감상하는 작업이다. 가상의 공간에 전시장을 만들고 작가의 디지털 작업을 전시해 놓았다. 관객은 조이스틱을 쥐고 달리고 점프하고 레이저를 쏘면서 가상 세계에 펼쳐진 전시를 본다. 만약 점프를 잘 못해 떨어질 경우 다음 작업으로 이동하지 못하고 다시 처음부터 시작하게 된다. 미술관에서 전시되었지만 <PICO>의 작업이 위치한 곳은 작품 속 가상 세계일 것이다. 장비와 소프트웨어만 있다면 어디서든 이 가상현실 전시장에 입장할 수 있게 된다. 미술관이라는 오프라인 공간은 감상을 위한 제도적인 테두리만을 제공할 뿐이다.
이렇듯 온라인 오프라인도 아닌 제 3의 공간을 만드는 작업들은 작품을 어디서 어떻게 보여줄 수 있는지에 대한 고민을 이어가고 있다.
《인류세 한국 X 브라질 2019-2021》은 한시적으로 진행된 전시였지만, 《네 번째 차원을 본 사람》은 뚜렷한 종료 일자를 이야기하지 않은 채 계속 되고 있다. 《컬렉션_오픈 해킹 채굴》은 2021년 4월 11일까지 진행된다. 본 전시가 끝나면 홈페이지는 어떻게 될까? 오프라인에서의 전시 철수처럼 이 사이트도 문을 닫게 될까? 물리적인 공간을 점유하지 않으니 전시는 계속될 수 있는 것일까, 혹은 실제 세계의 법적인 논리 (저작권, 소유권 등)가 가상 공간에서도 작동하기에 이 전시들은 곧 사라지게 될까.
온라인 기반을 실험하는 전시들이 계속 시도되고 있다. 미술이 이 변화한 조건을 어떻게 새롭게 헤쳐나가는지 방 안에서, 모니터 앞에 앉아서 지켜보고 싶다.
표지이미지: 김정태 <PIC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