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종사가 되는 것은 오랜 꿈이었다.
절대 이뤄질 수 없어 더욱 간절함이 컸던 꿈.
그 꿈의 시작은 어언 20여 년 전으로 되돌아간다.
공군사관학교에 처음으로 여생도를 받아들이기로 했다.
영화 '탑건'을 보고 파일럿에 환상을 가졌던 당시 나는 금세 마음이 움직였다.
전설의 영화 '탑건'의 톰 크루즈, 리즈 시절의 톰 크루즈닷!문제는 내가 대학에 입학하고 난 이후에, 여성 생도를 받기 시작한 것이다.
가고 싶었지만 재수를 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무엇보다 체력이 안됐다.
무엇보다 시력이 안됐다.
꿈은 꿈이다...
잠시 안타까운 마음으로, 나는 안될 거야라는 생각으로 넘겼다.
직장생활을 시작하고 힘들 때면 해외로 배낭을 메고 도망갔다.
목마른 사슴이 우물을 찾듯 휴가만 되면 무작정 짐을 싸고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인터넷도 안 되던 시절, 핸드폰 로밍이 뭔 말이냐.
책 하나 들고 비행기 티켓을 사고 계획 없이 떠났다.
그저 탈출하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여기만 아니면 돼! 여기만 아니면 현실을 벗어나는 거야!'
공간이동만으로도 현실을 피할 수 있었다고 생각했다.
그런 내게 다시 눈에 들어오는 직업이 있었다.
파일럿.
생돈 주고 여행 다니는 내게 그들은 일과 취미의 절묘한 조화를 누리는
최고로 부러운 사람이었다.
각 잡힌 멋진 제복을 입고 공항을 런웨이 삼아 당당히 걷고
길게 늘어선 입국심사대를 일사천리로 통과하고.
오랜 비행의 시간만큼 호텔에서 푹 쉬며 시티투어를 하는
그들의 삶은 완벽 그 자체였다.(물론 뭣도 모르는 사람의 시선으로)
다시 도전하고 싶었다.
파일럿.
하지만 여전히 시력이라는 체력적 한계가 발목을 잡았다.
시력이 나쁜 나는 절대로 도전하기 힘들었다.
대한항공 아시아나 모집 요강이 뜰 때마다
들어갈 방법이 없을까... 살펴보다 말다를 반복했다.
안 되는 줄 알면서도 매번 조종사 모집 공고가 뜨면
그저 내 일처럼 설레다 포기하다를 반복했다..
그러던 어느 날,
나이가 마흔이 넘어가던 어느 날,
지역항공사에서 지역인재를 대상으로 조종사를 양성한다는 기사를 봤다.
시력도 교정시력도 가능하다고 돼 있었다.
다시 한번 운명이 손짓하는 듯했다.
당시(2018년)에는 해외여행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면서 조종사가 턱없이 부족하던 실정이었다.
키워 놓으면 대형 항공사로 이직하고 키워 놓으면 외국항공사로 옮겨가던 시절이었다.
조종사 확보가 시급한 지역항공사로서는 직접 인재를 키워 투입하겠다는
야심 찬 프로그램이었다.
그 야심 찬 프로그램에 나름 지역 인재라고 주장하는 내가 도전하려고 했던 것이다.
마흔이 넘은 노구를 이끌고... 게다가 여성인 내가...
후회를 남기고 싶지 않았다.
적어도 시도는 하고 싶었다.
이번마저 하지 않으면 평생 후회할 것이라는 생각이 며칠을 괴롭혔다.
하자!
Why Not!
마음을 먹었다.
하지만 시험은 아무나 치는 것이 아니다.
체력적인 조건이 되는 사람만이 시험에 응시할 수 있었다.
항공 신체검사 증명서, 소위 말하는 화이트 카드가 필요했다.
지정 검사 병원은 대부분 서울에 있었기에
서울로 향했다.
물론 당시 나는 직장을 다니고 있었고(무려 20년 가까이나 몸담고 있는 직장이)
숙직 후 휴식이라는 절묘한 타이밍을 이용해 서울행에 나섰다.
수십만 원이 드는 검사비도 아깝지 않았다.
후회 없는 도전을 위해 수십만 원은 아무것도 아니다! 아니다!(눈물 찔끔)
병원 검진,
"흠.. 지금 파일럿으로 재직 중이신 거예요?"
의사가 조심스레 물었다.
"아니에요! 첫 도전이에요! 직장 옮길라고요!"
"아... 네.. 화... 이... 팅... 하세요"
비슷한 또래로 같은 여성이었던 의사는 의아함과 격려와 동정이 섞인 표정을 보였다.
가장 중요한 시력검사!
생전 처음 하는 정밀검사!
잘 보이지가 않았다. 교정시력으로 1.5,1.2 정도 됐지만 그게 문제가 아니었다.
경험하지 않은 새로운 검사방법에 당황했다.
보이지 않는 듯한 글자를 울면서 외쳤다.
"감으로 때려 맞추면 안 됩니다. 정확히 보이는 것으로 말씀하셔야 해요!"
냉정한 검사 선생님의 목소리에 호소하듯 말했다.
"저는 진짜 이 시력이 잘 나와야 해요!"
우여곡절 끝에 통과!.
그런데 복병은 다른데 있었다.
척추측만증이란다! 그것도 경계를 아슬아슬하게 넘나드는 수준으로!
하지만 요가를 열심히 하고 자기 관리를 잘하겠다는 나의 의지와 다짐에
의사는 다행히 합격점의 점수를 줬다.
그렇게 발급받은 화이트 카드!
자랑스럽게 들고 찍은 화이트카드. 평생에 이 카드를 손에 넣을 줄이야!단 유효기간은 2년.
우여곡절 과정이지만 이제야 겨우 기본을 갖춘 것에 불과했다.
하지만 그동안 몸뚱이가 조종사 조건에 미달이었던 나는
화이트 카드 발급 만으로도 반은 자격을 인정받는 느낌이었다.
필기시험을 시험을 치러 갔다.
한참 동생뻘 되는 응시생들이 모여들었다.
회사가 요구한 첨부자료(화이트 카드)와 응시서 등을 회사 관계자에게 제출했다.
현장에서 일일이 서류를 확인한다.
회사 관계자이자 중년의 아저씨가 학생들에게 상세히, 가끔은 반말로 안내하고 있었다.
내 차례,
"다음! 서류는 순서대로 다 했고?(라고 말이 짧아지려는 순간 이력서에 적힌 나의 나이를 보자 화들짝 놀라는 표정으로 나를 보며) 요?"
라고 즉각 말을 올렸다.'
'뭐지?'라는 표정으로 살펴보는 듯했다.
부끄러웠지만 당당해야 했다.
'나이가 많은 게 죄는 아니잖아!'
얼굴이 더 붉어지기 전에 고사장으로로 급히 몸을 돌렸다.
고사장은 항공대 큰 강의실 여러 개를 나눠서 쳤다.
역시나 내가 들아간 고사장, 즉 강의실에는(아니 통틀어서도) 여자는 단 몇 명 겨우 보일 뿐이었다.
'그래! 오늘 이 시험장에서 내가 제일 노땅이다!!!!'
자랑스럽게 시험지를 펼쳤다.
앞부분은 그동안 예상문제로 공부했던 부분이 나왔다.
(조종사를 준비하는 인터넷 카페 등에서 뽑은 자료 등을 바탕으로 독학을 했다. 지금에 와서 생각하면 얄팍한 생각이었다.)
'나는 천상 파일럿인가 보다!'
술술 풀리는 듯해 자신감이 붙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난해한 그래프들로 가득 찬(대기업의 직무적성검사와 비슷하다는)
문제가 펼쳐지면서 머리가 돌기 시작했다.
정해진 시간 안에 풀기는 턱없이 부족했다. 그냥 찍었다. 맞다. 그냥 찍었다. 퍽퍽 퍽퍽
파일럿이 적성에 맞지 않는다는 것을 문제는 적나라하게 말해주고 있었다.
시험장을 빠져나오자 눈이 마주친 한 남학생이 말을 걸었다.
사투리가 동향인듯했다.
"시험이 어려웠던 거죠?"
딱히 할 말이 없던 나는
"그걸 저한테 물으시면 안 될 것 같은데요(저는 아마 최하점일 테니)"
답했다.
순간 남학생의 표정이 굳어졌다. 본인을 무시한다고 생각했나? 그 뜻이 아니라
정말 내게 물어서 될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뜻하지 않게 생판 모르는 사람에게 무안함을 안겨주고 무거운 발걸음으로
기차를 타고 집으로 내려왔다.
결과는... 보나 마나 했지만
역시나였다.
그렇다.
그저 시도한 것에 대한 만족이었다
(그러기엔 검진비용 수십만 원에 왕복 기차표에 호텔비까지 돈 백만 원 가까이 깨진)
지금 생각하면 필기에 붙었어도 최종 합격은 힘들었을 것이다.
(필기에 붙을 것이라고 생각하며 실기에 매진하며 면접할 때는 뭐라 말할까 김칫국을 마신 내가 바보고 오만 한자다!)
무모한 도전이야 개인의 자유지만 누가 40이 넘은 여자를 파일럿으로 뽑아주겠나
(여성차별이 아니라 현실적으로...)
다시 말하지만 그저 시도한 것에 대한 자기 위로, 자기만족이었다.
이후에 코로나가 터지면서 조종사들이 많이 힘들어졌다.
채용은커녕 기존에 일하던 조종사마저도 비행 편이 줄어드는 바람에 타격을 받았다.
천운으로 그때 뽑혔다면... 힘들었을 수 있었을 거란 생각도 든다.
지금도 파일럿이 쓴 글이나,
파일럿 업무와 관련한 글이나
파일럿 도전기 등을 보면 마음 한편이 아려온다.
이 생에서 결코 이루지 못한 꿈.
얄팍한 시도도 시도는 했다라며 자기 최면에 걸고 있지만...
내겐 참 아쉬움으로 남는
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