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간 정지 신호로 건널목 앞에서 대기 중이었다.
내 차 앞으로 한 할머니가 카트를 밀고 지나가셨다.
느린 걸음으로 힘겹게.
그런데 카트 안에 있던 박스가 하나 툭 떨어졌다.
할머니는 모르고 계속 가셨다.
순간 나도 모르게 클락션을 울렸다
클락션 소리에 할머니는 몇 번 좌우를 둘러보셨다. 정작 아래는 보지 않으셨다.
건널목을 다 건너갈 즈음 안 되겠다 싶어 차 창문을 열고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할머니! 할머니!"
할머니는 또 뭔가 하는 표정으로 좌우를 둘러보셨다.
나는 이제 클락션과 할머니라는 소리를 동시에 질렀다. 손까지 흔들었다.
"할머니! 박스! 할머니! 박스!"
할머니는 멀리서 내 몸짓을 드디어 알아챘고, 박스가 떨어진 것도 알아챘다.
할머니가 다시 건널목을 건너오려 했지만 늦었다. 보행 신호등은 빨간불이 됐다.
1초도 안돼 뒤차가 빵빵하기 시작했다.
나는 갈 수 없었다. 할머니가 건너오려고 하시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 상황을 아는 것은 할머니와 나뿐.
인내심이 약한 뒤차는 계속 빵빵댔다.
신호가 끝나자 내 차선을 제외한 차들을 쌩쌩 달리기 시작했고
할머니는 건널목 건너는 것을 포기하셨다.
나는 망설였다.
내가 가면 저 박스가 달리는 차에 부딪칠지도 모르는데.
뒤 차들의 클락션 소리는 더 커졌다.
할 수 없이 핸들을 꺾고 차선을 바꿔 박스를 피해 갔다.
그제야 뒤 차들도 무슨 상황인지 알고 박스를 피해 가기 시작했다.
조마조마한 표정으로 박스가 무사하길 바라는 할머니의 표정이 백미러에 보였다.
그나마 신호등이 안 바뀌었을 때 내가 내려서 박스를 주워 드렸어야 했나...
할머니는 박스 떨어지는 것도, 본인을 부르는 소리도 어찌 그리 못 알아들으셨을까.
옆에서 누군가 챙겨드려야 할 것 같은 할머니.
그 할머니에게서 나는 당신의 모습을 봤다.
귀가 어둡고 잘 흘리고 다니던 나의 아빠 모습이.
그래서 돕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