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드니 여행도 두렵네. 그래도 떠나보자.

공항만큼은 언제나 좋다

by 집녀

"아.....후......"


이제 한국 공기를 마실 마지막 기회.

공항 안으로 들어가기 전 입김을 다시 내본다.


"아....후.....아...."

입김이 몽글몽글 솟는다.

초겨울이다.

여행을 다녀오면 입김의 농도가 더욱 진해지겠지?


이 순간이 정말 좋다.

공항에 도착하는 이 순간.

부산역에서 11시에 출발한 버스는 새벽 4시 전 공항에 도착했다.

비행기 출발 시간은 오전 8시 20분이니 거의 4시간 전 도착한 것이다.

너무 일찍이냐고?

절대 아니다. 공항에서는 시간이 금방 간다. 얼마나 할 일이 많은가.

면세점도 둘러보고, 무엇보다 이번에는 라운지를 갈 것이다.

인천공항 라운지는 처음이다. 얼마나 많은 먹을 것, 할 것들이 펼쳐질까.

이미 유튜브를 통해 내가 갈 라운지를 들여다봤다.

뭐 할지 순서도 미리 정했다.

샤워도 하고 많이 먹고, 발 뻗으며 활주로를 쳐다보는 그 여유를 빨리 누리고 싶다.


'스르륵'

공항 자동문이 열리면 특유의 공항냄새가 훅 들어온다.

온갖 인종이 섞여 내는 특이한 냄새.

새 건물은 아니지만 청소 잘 된 건물에 들어서는 냄새.

따뜻한 히터 바람의 냄새.

온갖 좋아하는 냄새들이 섞인다.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새벽 비행기 출발을 기다리며 의자를 하나씩 점령하고 있었다.

여행을 마치고 고국으로 돌아가는 사람들의 피곤함,

새 옷 냄새가 물씬 풍기며 여행의 설렘을 온몸으로 내뿜는 사람들.

공항은 일정의 시작과 끝을 맞는 사람들로 아쉬움, 설렘이 뒤섞였다.


나의 경우는 이제 시작이니 설렘이 커야 한다.

허나,

왜 이리 피곤한가. 너무 피곤하다.

여행을 시작하기 전부터 몰려오는 피곤함이라니.

눈이 뻑뻑하고 다리는 붓고(프리미엄 버스를 탔으나)

머리는 어질어질하다. 바로 집으로 돌아가 눕고 싶은 마음이 크다.

이 여행을 어찌 시작할꼬.

나이가 들면 피곤함이 설렘을 잡아먹는다.


KakaoTalk_20251202_153443646.jpg 부산역에서 인천공항리무진을 기다리는 나의 짐들. 2주간 인생의 짐이 될 예정이다.




이제 2주 동안 엄마와 함께하는 여행이 시작된다.

올해 첫 해외여행.

미루고 미루다 가게 된 해외여행이다.

여행을 가기 전까지 여행을 갈 수 있을까 할 정도로 회사일이 밀려들었고,

그로 인해 살은 56킬로에서 52킬로대까지 빼졌지만(스트레스받는 김에 살 빼보자라는 긍정 마인드도 작용)

어찌어찌 여행 전에 마무리해서 갈 수 있게 됐다.

그것만도 어딘가. 가게 됐으니.

올 하반기 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여행준비였으나

정작 회사일로 인해 여행준비는 뒷전,

그로 인해 미뤘던 숙소와 교통값은 처음 봤던 가격보다 엄청나게 뛰었다.

어쩌겠나. 울며 겨자 먹기로라도 해야지.

그래도 일도 처 내고 2주간의 일정도 짜냈으니 대견한 것 아닌가.

무엇보다 홀가분한 마음으로 가게 됐으니.


어렸을 때의 나는 항공권 하나면 충분했다.

일정은 마음 내키는 대로 했던 나인데

엄마와의 여행을 절대 그럴 수 없는 것 아닌가.

절대 계획적이지 않는 내가 계획적으로 계획을 세우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는 계획적인 인간들은 모른다.

'예약 펑크 날 수도 있잖아'. ' 이 가격이 맞아? 혹시 좀 있다 하면 싸지려나?', '이 일정이 최선일까?'

온갖 고민 끝에 결정을 내리고 결제를 해야 한다.

결제를 할 때 그 주저함을 보면

나는 결단코 우유부단하며, 결단력 있는 인간도 아니고,

10원 100원에도 소심해지는 한없이 작은 인간임을 깨닫게 된다.

계획을 세울 때마다 큰 자아성찰을 얻게 되는 것이다.

그런 내가 2주간의 포르투갈, 스페인의 일정을 짰다.


내겐 포르투갈과 스페인이 첫 여행이 아니다

포르투갈은 두 번째, 스페인은.. 뭐 두 번, 세 번째인가.

국가 자체로는 내게 새로운 것이 없다.

이번에 방문할 도시도 다 가봤던 도시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정을 이렇게 짠 것은 순전히 한 번도 이 나라를 구경하지 못한 엄마를 위해서다.

스페인에 가고 싶다던 엄마를 위해, 간 김에 포르투갈까지 포함시켜 일정을 짠 것이다.

나는 2주 동안 엄마의 가이드가 될 것이다.

엄마를 위해 이젠 호스텔에도 자지 않고 좋은 숙소, 좋은 항공권을 끊었다.

모든 기준은 엄마다.

(그럼에도 이 일정을 본 누군가는 70대 후반의 엄마에게 무리한 일정이라 뭐라했다)

나는 행복해하는 엄마를 옆에서 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할 것이다


그런 다짐을 하는 나의 2주간의 여행(25년 11월 15일부터 11월 30일까지)

이제 시작됐다.



당당히 여행의 첫걸음을 딛는 나의 사랑스러운 엄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