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살의 배낭여행자,"대단하데이~"

2025년 11월 17일, 포르투갈 포르투

by 집녀

포르투에서 반나절을 보내고 파티마로 넘어가는 날이었다.

전날까지만 해도 변덕이 죽 끓던 날씨가 다행히 화창하게 개였다.

오히려 매섭게 내리던 비가 온 도시를 깨끗하게 씻어줬다.

공기는 적당히 차고, 돌이 깔린 도로는 반질반질하고,

하늘은 파랗고 그 사이 하얀 구름이 속도감 있게 지나가고 있었다.



파란 하늘과 건물들 사이로 보이는 글레리고스 종탑, 전날 올라갔을 때는 비바람이 불었는데...

전날 먹은 프란세지냐 여파로 인해 속은 울렁거렸지만,

시차도 적응 못해 아침부터 머리가 어질어질했지만

또다시 시작된 일정을 소화하기위해

당당히 나섰다.


나에게 배낭여행이라는 세계를, 정확히 '오지에 가는 즐거움'을 알려준 사람은 배낭여행의 1세대라고도 불리는 한비야다. 개인적으로 만나면 그 넘치는 에너지에 부담감을 느낄 것이라 생각 들지만 여행스타일만큼은 마음에 들었다. '배낭하나 달랑 메고' 라는그 스타일. 물론 지금은 배낭을 메지 않는다. 허리 나간다. 그것도 혈기왕성한 어릴 때나 가능한 일이다.


최대한 두 다리 멀쩡할 때, 체력이 될 때 오지를 가자. 오지가 차도 안 다니고 핸드폰도 안 터지고 이런 개념의 오지가 아니라 내 기준에서의 오지이다. 많이 걸어 다녀야 하고 패키지로는 가기 힘든 곳이 바로 내게는 오지다. 젊어서 돌아다니고 늙어서는 편한 크루즈 여행과 패키지여행을 다녀야 지라는 게 내 생각이다. 젊어서 고생은 사서 한다라는 말을 여행에 접목시킨 것이다.


부작용이라 하면 여행을 많이 할수록 겁이 많아졌다. 겁대가리 없던 어린 시절의 나는 이제 없다. 무식해서 용감했던 것이 컸다. 모르면 무서움을 모른다. 여행을 많이 다닐수록, 경험치가 높아갈수록 여행에 대한 두려움이 생겼다. 급작스레 아프거나, 급작스레 자연재해가 발생하거나, 핸드폰이 고장 나거나... 이런 일을 수도 없이 겪다 보니 여행을 짜놓은 계획대로 완수하는 것 자체가 얼마나 힘든 것임을 알게 됐다. 그리고 오만가지 안 좋은 일들에 대한 대비를 하고 다니게 됐다. 그래서 요즘 여행가방에는 옷가지보다 비상약등이 더 많이 차지할 정도다.

그런데 어린 시절에 내가 했던 일들을 나이 들어하고 있는 용감한 배낭여행자를 우연치 않게 만났다.


포르투 전경을 보기 위해 비토리아 전망대로 향하는 길이었다.

저 멀리 조그만 체구의 아주머니 한 분이 걸어오고 계셨다.

누가 봐도 한국사람 같았고 무엇보다 혼자 걸어오시고 있는 독특함에

"한국분이시죠?"라고 말을 걸었다.

그 말에 반가웠는지 이야기를 폭포수처럼 쏟아내기 시작했다.

물론 옆에 계신 동년배인듯한 엄마를 만나 더 반가웠으리라.

알고 보니 그녀는 70대 초반이셨고(엄마보다 한참 어리신), 혼자 여행을 돌아다니셨다.

직전에 산티아고를 돌아보고 오셨다면서 3주 가까이 여행을 하신다고 했다. 혼자서.


"아니 그래도 연세도 있으신데 혹시 아프면 어쩌시려고요? 친구분이라도 같이 다니시지"

했더니 그녀는

"친구랑 다니면 의지하게 돼요. 혼자 다니면 알아서 몸을 추스르게 돼 있어요"

라고 하셨다. 그러면서

"나 여행 와서 친구도 많이 사귀었어요. 얼마 전에는 독일 청년이랑 말동무도 하고 얼마나 재밌었는데! 어제는 역에서 한국청년을 만났는데 얼마나 좋던지!"

말하는 내내 눈이 반짝반짝 빛났다.

"아이고 진짜 대단합니데이. 그런데 영어는 하시는가 보네요. 안 그러면 혼자 못돌아다니지예"

엄마가 부러운 듯 묻자

"저 못해요! 구글 번역기가 있잖아요! 세상이 얼마나 좋아졌는데!"

"대단합니데이. 대단합니데이"

아마 엄마가 그녀랑 말하면서 나눈 대화의 절반은 "대단합니데이"이지 않았을까.


폭풍수다를 끝내고 서로의 갈길로 가면서도 자꾸 뒤돌아보게 됐다.

야무치게 한발 한발 내딛으며 가고 있는 뒷모습에

박수를 보내고 싶었다.

그리고 그 혼자의 삶에 두려움이나 외로움보다는 더 많은 즐거움을 기대하는 모습에

박수를 보내고 싶었다.

남편은 있는 건가. 자식은 있는 건가. 많은 궁금증이 있었지만 묻지 않았다.

지금 여행을 즐기고 있는 그 모습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해 보였고 다른 부수적인 것들은

그녀에게는 아무런 의미가 없어 보였다.

그리고 그녀에게서 나의 어린 시절이 겹쳐 보였다.

막 배낭여행에 재미를 붙여서 오는 사람 가는 사람 붙잡으며 얘기도 하던 시절.

지금은 워낙 여행자들이 많으니 같은 한국사람이라도 굳이 말을 안 걸고 외국 배낭여행자는 더더욱 안 걸지만.

한 때 나 또한 그랬음을 깨달으며 그녀는 분명 배낭여행을 시작한 지 얼마 안 됐구나. 배낭여행에 재미를 느낀 지 얼마 안됐구나라는생각이 들었다.


옆에 엄마는 그녀와의 짧은 만남이 충격이었는지, 신선한 경험이었는지

"대단하데이...대단하데이"

계속 중얼거리셨다.

비토리아 전망대에서 바라본 포르투의 아름다움보다 혼자 여행을 나서는 그녀의 용기에 더 큰 감탄이 이어졌다.

나 또한 내가 70살이 되면 외로워서라도 혼자 여행은 하지 않을, 하지 못할 것이기에

그녀가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엄마,

80이 다 되어가는 엄마 또한 이렇게 하루에 2만 보 가까이 여행을 하고 있다는 것,

패키지도 힘든데 딸내미 하나 믿고 이렇게 여행을 다닐 수 있다는 것

엄마 그것도 진짜

"대단하데이 대단하데이"




비토리아 전망대에서 바라본 포르투. 나랑 여행을 하고 있는 엄마도 대단하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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