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티마? 뭐 하는 곳인데?"
"세계 3대 성모 발현지래. 성모가 나타났다는 곳. 전 세계 3곳 밖에 없데"
"거길 뭐 하러 가노. 내는 불교 신잔데.. 불교 성지 순례도 못했는데"
"그래도 뭐가 됐든 성스럽고 좋은 기운 받을끼다"
포르투갈 일정에 파티마를 넣자 엄마는 볼게 뭐 있겠냐며 의아해하셨다.
불교를 믿는 집안에서 굳이 성모 발현지를 찾아갈 필요가 있을까?
맞다 필요는 없을 것이다. 다만 일정상 포르투에서 리스본으로 내려오는 길에 파티마가 있었고,
파티마에 대한 기억이 좋았기 때문에, 그리고 엄마에게 말한 것처럼 종교를 떠나
그곳의 성스러운 기운이 좋은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기대가 있었다.
좋은 말, 좋은 뜻, 좋은 기운에 종교의 벽이 어디 있겠느냐.
세계 3대 성모발현지는 멕시코 과달루페, 프랑스 루르드, 그리고 포르투갈 파티마이다.
그중 나는 이번 파티마만 두 번, 멕시코 과달루페를 한 번 방문해 모두 세 번의 방문을 이뤄낸 셈이다.
가톨릭 신자도 하기 힘든 방문을 세 번이나 하다니.
불교만큼 가톨릭과도 인연이 있는 것일까. 불교용어로 '선근'이 있는 것일까.
포르투에서 2시간 20분 정도 거리, 리스본과는 1시간 20분 정도거리에 있는 파티마는, 포르투에서 리스본으로 넘어갈 때 들려보기 좋은 곳이다. 리스본에서 당일치기로 오기도 하지만 굳이 파티마에서 1박을 하고자 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바로 촛불행진을 보기 위해서다.
저녁 9시 반 미사를 시작으로 참석한 신자들이 파티마 성당 마당에서 촛불행진을 벌인다. 그 성스러웠던 장면이 한참이나 마음속에 남아 있었던 것이다. 그 모습을 엄마에게도 보여드리고 싶었다.
파티마 버스터미널에서 택시로 5분도 안 되는 거리긴 하지만 택시를 탔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뚜벅이나 대중교통 위주였지만 이번 여행은 무조건 택시를 탔다.
나이 많으신 엄마를 위해, 그리고 이런 편함을 위해 돈을 모으는 것 아니겠냐는 달라진 마음가짐이 있었다.
(그래도 5분에 1만 원은.. 좀.. 아깝긴 하다만)
오후 5시쯤 떨어진 파티마 대성당에는 어둠이 물들고 있었다.
어둠이 물들면서 조명은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빛과 어둠의 경계시점. 내가 제일 좋아하는 시간대다.
컴컴해지기 전 빨리 파티마 성당을 둘러보고 숙소로 갔다. 이번 여행 처음으로 햇반과 육개장을 개시할 생각에 설렜다. 파티마에 늦게 도착해 식당 찾기 힘들 것이라고 생각해 이 날을 첫 햇반 개시일로 계획하고 있었던 참이었다.
전날 먹은 프란세지냐의 느끼함이 햇반과 육개장, 그리고 김의 짭조름에 한순간 저 아래로 내려갔다. 드디어 온몸에 에너지가 돌며 여행을 이어갈 수 있다는 힘이 생겨났다. 앞으로 여행 가서 맛집이고 나발이고, 그냥 햇반과 다양한 국을 준비해 와야겠다. 그게 최선이다.
힘은 났지만 다른 면으로는 힘이 빠지기 시작했다. 노곤함. 시차 적응이 덜 돼 9시에는 잠들었는데, 9시 반에 시작하는 촛불행진을 보러 눈을 부릅뜨고 기다려야 한다. 다행히 숙소가 성당 바로 옆이라 5분도 안 걸리지만 가는 시간이 문제가 아니다. 버티는 시간이 문제였다. 엄마는 졸기 시작했다. 나가야 한다는 말에 옷도 차마 갈아입지 않고 있었지만 이미 깊은 잠으로 가고 있는 모습이었다. 깨우려 하자 엄마는 나가길 포기하겠다고 했다. 도저히 잠이 와서 못 가겠다고. 사실 나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일어나야 한다. 이것을 보러 파티마에 온 것이다. 그 성스러운, 그 엄숙한 모습을 엄마도 봐야 한다! 나는 안 나가도 못 봤던 엄마는 봐야 한다. 그래서 이 파티마에 두 번이나 온 것이 아닌가!
"아이고 촛불행진이 그게 그거지. 사람도 얼마 없더구먼 하는 거 맞나!"
"한다니까! 우리 이거 꼭 봐야 해. 이거 안 보면 파티마에 온 의미가 없어!
나가기 싫다는 엄마에게 목도리를 씌우고 핫팩을 채우고 끌고 나갔다.
호텔문을 나서자 찬 바람이 훅 몰아쳤다. 시련이다.
정작 엄마 보온에 신경 쓰느라 내가 옷을 제대로 못 입었나 보다
춥다. 시련이다. 하지만 이겨내야 한다.
이것은 시련이자 시험이다. 가야한다!
성당 앞 미사 공간에는 전 세계에서 온 사람들이 이미 미사를 시작하고 있었다.
'산타~마리아'.'아베오~마리아'
내가 들을 수 있었던 단 문장이 계속 나왔다. 전 세계 참가자들 가운데 몇 명씩 나와서
대표로 기도문을 외우는 것 같았다. 사람들은 손에 촛불을 쥐고 추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기다리며 기도했다. 하지만 나는 달랐다. 추위에, 촛불도 없고, 졸음도 오고 고난이다. 그 고난의 시간이 30분이나 이어졌다.
'아베오마리아...... 언제 끝납니까. 이 미사는"
주리다 뒤틀릴 즈음 사람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마당을 도는 촛불행진이 시작된 것이다.
엄마와 나는 관찰자 시점을 위해 행렬에서 빨리 빠져나왔다. 그들의 기도에 방해가 되지 않게,
그들의 행렬에 방해가 되지 않게 말이다.
한 십오분 봤을까? 엄마에게 춥다고 이제 들어가자고 했다.
자다가 끌여와 살짝 짜증이 났던 엄마는 오히려 더 있자고 하셨다.
더 보고 싶다고 하셨다.
그들의 기도에, 그들의 노래에 감동을 받으신 것인가.
그래! 이거지! 엄마가 감동을 받았으면 된 거야!!
엄마의 시선에 뿌듯해하며 나도 다시 촛불행진에 시선을 돌렸다.
간절히 기도하는 마음은 소중하다. 고귀하다.
나도 그들의 기도가 이뤄지기를 같이 잠시 기도했다.
그렇다. 내가 파티마를 다녀오고 또 간 이유는,
세계 3대 성모발현지를 어쩌다 3번이나 간 이유는
다시 한번 느끼고 싶어서다.
간절히 바라는 마음,
한없이 착해지는 마음을.
후에 엄마는 친구분들에게 여행일정을 자랑할 때 꼭 파티마를 넣으신다.
"니 파티마 촛불행진 봤나? 대단하데"
파티마가 뭐꼬 하시던 엄마는 포르투갈 여행에서 파티마를, 파티마 촛불행진을 안 보면
헛봤다고 자랑하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