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3번 비즈니스, 하루 3번 라운지

-아 이게 '돈의 맛'인가

by 집녀

내 인생 첫 비즈니스는 십여 년 전 일본 나고야에서 부산으로 오는 짧은 시간이었다.

이코노미에서 운 좋게 비즈니스로 업그레이드되면서 경험했다.

스튜디어스가 세상 다정한 표정으로 코트를 대신 걸어주겠다고 했을 때,

아 이런 세상이 있구나 라며 '돈의 맛'을 잠시 느꼈다.


그 이후로 쭉 생각하고 있었다.

기필코 돈을 벌어 비즈니스로 가겠다.

대놓고 계급사회가 존재하는 그 비행기 안에서

나는 계급 이동을 이뤄내리라.

그 꿈이 이번 유럽여행에서 이뤄졌다.

그렇다. 나는 내돈내산 비즈니스를 끊은 것이다.


사실 나 혼자만의 여행이었다면 여전히 돈이 아까워서 비즈니스를 끊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70대 후반의 엄마와 함께 가니 깊은 고민을 했다.

"요즘에는 통 자신이 없네. 열몇 시간 비행기 타고 가겠나"

최근 무릎, 허리 등 통증이 서서히 나타나고 또 체력에 대한 자신감도 떨어져 가는 엄마의 걱정이 커지면서

중대 결단을 내린 것이다.

돈 모아서 뭐 하나! 이럴 때 쓰라고 있는 것이다!

지르자!

그래서 질렀다.

물론 고민은 많았다.

아파트 산책 동무셨던 어머니 친구분이 지병으로 돌아가신 것이 아마 가장 큰 계기였으리라.

딸들이 돈을 모아서 엄마 비즈니스 비행기 태워드렸다는 '엄친딸'들의 이야기도 나를 긁었다.

나도 못할 게 없는데!

그래서 질렀다.


물론 직항으로 가는 국적기로 가면 좋았겠지만,

그건 넘사벽 가격이었고,

루프트한자 비행기로 포르투갈 갈 때 2번의 경유, 올 때는 한 번의 경유였다.

그리고 특별할인가라고 해서 덥석 결제했다.(나중에 보니 그냥 평균가정도란다)

갈 때만 거의 24시간. 엄마는 이게 비즈니스 맞냐며 뭘 두 번이나 경유하냐고 물었고

"엄마 14시간 이상 포르투갈 직항하면 그거 진짜 힘들다. 경유지에서 다리도 풀어주고 해야 더 좋다.

그리고 우리는 라운지 간다 아이가. 라운지에서 쉬면 그냥 게이트 앞에서 기다리는 거랑 차원이 다르다!"

라며 다독였다.

그래도 내심 엄마는 난생 첫 비즈니스가 좋으신지, 친구분들께 자랑하셨다. (물론 갈 때 경유를 두 번이나 한다는 말은 하지 않으신 듯)


그래서 하루 3번의 비즈니스, 하루 3번의 비즈니스 라운지가 시작된 것이다.

비행기는 인천에서 북경, 북경에서 뮌헨, 뮌헨에서 포르투.

라운지는 인천, 북경, 뮌헨


밤 11시부터 새벽 4시까지 부산에서 인천까지 리무진을 타고 온 몸은 벌써부터 만신창이가 됐다.

벌써 한 터키 정도까지는 날아간 피곤함이랄까?

인천공항 라운지에 들어서자마자 한 첫 행동은 바로 (유튜브에 추천했던 대로) 샤워실 예약!

드디어 처음 해 본 샤워.

샴푸, 린스, 바디워시 글자가 잘 안 보이는 엄마를 위해 같은 샤워실을 쓰느라 정신은 좀 없었지만,

샤워를 끝내고 난 그 개운함이란.

'아 이게 돈의 맛인가'

샤워를 끝내자마자 음식이 기다렸다.

활주로가 보이는 곳에서 마시는 커피와 따뜻한 음식,

'그래 이게 돈의 맛이지'

라운지 경험이 익숙해 보이는 다른 승객들과 달리 두리번거리는 엄마를 보며

"엄마 처음 온 것 같은 티 내지 마라"

고 하면서 정작 내가 사진 찍고 동영상 찍고 더 두리번거리며 티를 내는 모습이었다.


2시간 남짓 북경행 비즈니스 좌석은 침대처럼 눕는 좌석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넓었다. 눕지는 못하지만 우등 리무진보다는 좋은 정도?

기내식에서는 일회용기가 아닌 따뜻한 '진짜'그릇이 등장했다.

아. 대접받는구나.

앞 좌석에 앉은 '중국인'으로 보이는 젊은 여성은. 밥 먹는 것이 귀찮다는 듯이 거절하고 잠이 들었다.

'너에겐 익숙한 삶인가 보구나'

내심 씁쓸하지만 엄마와 나는 감사히, 즐거히 비즈니스 기내식의 새로움을 맛봤다.


북경의 비즈니스 라운지는 또 다른 재미가 있었다.

중국 만두에, 라면에 샨차이 등 중국음식들이 널려 있었다.

역시 이 자리가 익숙해 보이는 그들 사이에서

엄마와 나는 한국과 북경의 비즈니스 라운지의 차이점을 제대로 느끼며

무엇보다 대륙간 이동의 비즈니스 좌석은 얼마나 좋을지를 상상했다.

물론 나는 어떤 좌석인지 이미 알고 있다.

비즈니스 좌석을 끊자마자 한 일이 바로 유튜브에서 내가 탈 루프트한자 같은 기종의 비즈니스 라운지를 검색한 것이기 때문이다.

일로 힘들 때마다. 나는 유튜브로 비즈니스 좌석을 검색하며 즐거운 상상을 했다.

그 즐거움과 설렘을 가격으로 친다면 비즈니스 좌석은 가격 이상의 충분한 기쁨을 이미 내게 선사했다.



'두~둥'

드디어 입성한 비즈니스 좌석은, 그래 내가 봤던 그 좌석 그대로이다.

180도 누울 수 있고, 매트도 있고, 이불 같은 담요도 있고, 어메니티도 좋고.

이미 몇 번이나 확인했던 그 비즈니스 좌석이다.

단거리 구간의 비즈니스와는 차원이 다른 진정한 비즈니스 좌석이 펼쳐졌다.

웰컴 주스와 견과류로 출발 전 입가심을 하고, 줄줄이 내오던 기내식은

말 그대로 구름 위의 '파인 다이닝' 아니겠는가.

예전에 분명 엄마에게 캐비어 결들인 음식을 사드린 적이 있었던 것 같은데도

엄마는 "이게 캐비어가? 처음 먹어본다"며 큰소리로 말했고

주위에 한국사람이 없음에도 나는 엄마에게 목소리를 낮추라며

촌티 내지 말자고 주의를 줘야만 했다.



KakaoTalk_20251204_164315514.jpg 따뜻한 그릇에 나온 고급진 음식들


대망의 잠잘 시간,

매트가 펴지고 엄마는 누워서

'와 비행기에서 이렇게 눕는 거가"

라며 만족감을 드러냈다.

나 또한 비행기에서 180도 누워 갈 수 있는(눕코노미 말고) 경험을 하며

'이것이 진정 돈의 맛'이라고 느꼈다.


물론 같은 비즈니스 좌석이라도 피 같은 자기 돈을 내고 탄 사람과,

회사 경비로 탄 사람, 타고난 부를 갖고 있는 사람등

각기 다른 사정일 것이다.

그러나 진정, 그 비즈니스 좌석의 고마움을 느낀 사람은

아마 그 순간 그 좌석 안에서는 엄마와 내가 아니었을까?


그렇다.

돈의 맛이다.

돈은 이렇게 벌라고 있는 것이다!

몸이 고생하면 되고, 쓰고 나면 표도 안나는 곳에 돈을 쓰는 것이 아까웠던 나에게

비즈니스는 진정 돈의 맛, 돈의 힘, 돈을 벌어야 하는 이유를 설명해 주는

좋은 경험이었다.



KakaoTalk_20251204_164427232.jpg 다리가 펴진다. 매트리스도 있다.

물론 2번의 경유라는 힘든 과정은 있었으나

엄마와의 첫 비즈니스 경험은

내 여행의 질이 앞으로 상당히 달라질 것임을,

그리고 앞으로 내 여행의 방향성도 상당히 달라질 것임을

느끼게 해주는 좋은 계기가 됐다.

무엇보다 내 삶의 방향성도.


열 시간 넘는 비행에도 다리가 붓지 않는,

비행기 안에서 집처럼 아늑히 꿀잠을 잘 수 있는

그 경험을 나는 앞으로도 계속하고 싶다.

앞으로도 분명 계속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나는 앞으로도 쭉

비즈니스를 타는 사람이 될 것이다!

(여행의 횟수는 상당히 줄어들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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