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엄마에게 훈장을 드리고 싶다.

2025.11.21. 마드리드

by 집녀

역시나 눈을 일찍 떴다.

전날 리스본에서의 비행이동과 늦은 입실, 끼니 생략까지 몸은 피곤했지만 여행지에서는 항상 눈이 일찍 떠진다. 아님 배고파서일까...

마드리드에서의 일정은 아토차 기차역에서 출발해(숙소가 아토차역 앞) 반나절 마드리드 시내 도보관광을 하고 근교인 톨레도로 이동하는 것이었다.


KakaoTalk_20251228_053746311.jpg
KakaoTalk_20251228_053759407.jpg
배고파서 조식시간 되자마자 감. 전날에는 우중충해보이던 숙소가 아침 햇살에서 보니 그나마 좀 낫네.


마드리드에겐 미안하지만 내겐 솔직히 반나절 관광만으로도 충분했다. 세계 3대 미술관이라는 프라도 미술관이 있지만(파리 루브르, 런던 대영박물관, 뉴욕 메트로폴리탄을 세계 3대 미술관이라고 하기도 하고 뉴욕을 빼고 마드리드 프라도를 넣기도 하고) 엄마나 나나 미술관, 박물관에는 별 관심이 없는 관계로 과감히 뺐다. 지난번 혼자 왔을 때는 프라도 미술관에 갔다. 다리가 너무 아파스 벨라스케스 작품 앞에서 한참을 쉬면서 강제 정밀관람을 했긴 했다. 경험적으로 엄마에게는 별 흥미로운 장소는 아닐 것이라는 판단에 뺀 것이다.


모닝커피까지 단단히 챙겨 먹고 나선 스페인의 아침공기는 상쾌했다. 리스본보다는 다소 쌀쌀했지만 기분 좋은 쌀쌀함이었다. 하늘도 예쁘고 거리도 깨끗하고 기분도 좋아지기 시작했다. 아침 시간 나설 때가 가장 힘들긴 하지만 서서히 적응이 되어 가기 시작하는지 다리도 한결 가벼웠다.

포르투갈이나 스페인이나 건물도 비슷비슷한 것 같다. 그래도 스페인의 수도다 보니 뭔가 웅장함이 있었다. 리스본의 좁고 구불구불한 거리를 보다가 스페인의 탁 트인 도로를 보니 대도시의 위용이 느껴졌다.


KakaoTalk_20251228_051406827.jpg 푸에르타 솔 광장에 있는 스페인의 도로 기준점 0km
KakaoTalk_20251228_054110168.jpg 푸에르타 솔광장의 곰과 딸기나무 동상. 꼬리를 만지면 마드리드에 다시 돌아온다는 전설이 있다.


KakaoTalk_20251228_053211755.jpg 마요르 광장의 고릴라 퍼포먼스에 놀라 도망치는 엄마


마드리드뿐 아니라 스페인의 중심이라는 푸에르타 솔 광장을 지나 광장 자체가 하나의 야외극장이라는 마요르 광장을 지나 스페인 왕궁에 들어섰다. 왕궁에 들어가 볼 생각이었는데 왠지 시끄럽다. 경찰이 곳곳에 있고 도로를 통제한다. 뭔가 봤더니 왕정 근위대가 사열하고 있지 않은가? 고급 승용차가 한 대씩 들어올 때마다 근위대가 칼각으로 환영을 하고 있었다.


"이게 무슨 행사고? 한번 물어봐라!"

하면서 엄마는 옆에 있던 방송 기자에게 물어보라고 자꾸 시켰다.

어쩔 수 없이 물어보자 여기자는 아주 친절하게 설명해 줬다. 짧게 가 아니라 아주 길게. 아는척하며 고개를 끄덕였으나 사실 몇 마디 시작한 이후로 무슨 말인지 따라가지 못했다. 여왕 어쩌고 하는 것 같긴 한데 무슨 뜻인지..

그 와중에 엄마는 손짓 발짓으로 스페인 여기자에게 나와 그 여기자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왔다 갔다 했다.

"니도 기자라고 말해봐라!"

"그걸 왜 말하노 쪽팔리게!"

여기자는 한국 모녀의 이상한 행동에 어리둥절해했을 것이다. 엄마는 그 와중에도 나를 자랑하고 싶었던 것인가..


엄청난 수의 기마단과 왕궁근위대까지 동원한 거리 행렬이 시작됐다. 돈으로도 못 보는 장관이 펼쳐진 것이다.

행사 자체도 재밌었지만 솔직히 더 인상적인 것은 말의 똥냄새였다. 지나가는 거리마다 똥과 오줌이 흘러내렸다. 저 똥은 누가 치우지?


KakaoTalk_20251228_052730012.jpg
KakaoTalk_20251228_054152190.jpg
기마대 행렬 방송국까지 취재왔다



돌아오는 길에 한국인 단체 관광객들이 지나가자 엄마는 안타까워했다.

"아이고 저 사람들 좋은 구경 놓쳤네. 저 행사를 가이드도 모르나?"

"패키지여행은 일정이 있으니까 마냥 보고 있지 못하겠지. 행사 있다고 일부러 시간 바꾸기도 힘들 테고"

"그래서 자유여행이 좋네. 아이고 잘 봤네"

엄마는 뿌듯하신가 보다. 그렇게 만족해하는 모습에 내가 다 뿌듯했다.


돌아가는 길에

'아 추로스 맛집이 있었지?'

라는 생각이 나서 검색했더니 바로 50미터 옆에 있었다. 척척 잘 풀리는 날.

마드리드에서 가장 유명한 추로스 맛집으로 1894년, 무려 131년이나 된 집이었다. 아침 찬바람에 돌아다녔더니 달달한 당분이 당겼다. 추위를 녹여주는 따뜻하고 녹진한 코코아에 따뜻한 추로스를 찍어 먹으니 몸에서 힘이 났다. (이 간식을 마지막으로 점심을 건너뛰는 일이 또 발생)


KakaoTalk_20251228_054410156.jpg
KakaoTalk_20251228_054416521.jpg
131년 전통의 츄러스 맛집 Chocolatería San Ginés



KakaoTalk_20251228_051550799.jpg 프라도 미술관 옆 왕립식물원. 한국영화 '미술관 옆 식물원'이 생각난다.


나중에 '정확히'알게 된 이 날의 왕궁 행사는 스페인 왕정 복원 50주년 기념행사 중 하나였다.

스페인 국왕의 모친인 소피아 왕비가 훈장을 받는 아주 의미 있는 날이었다. 스페인 왕가가 수여하는 가장 권위있는 훈장 중 하나라고 한다.

아마 국왕이 자신의 어머니가 돌아가기 전에 의미 있는 선물을 해주고 싶었으리라. 실제로 여성 중에 받은 사람도 거의 없고 특히 살아있는 여성 중에서는 드물게 받은 훈장이라 한다. 무슨 상 받을 업적을 쌓았는지는 모르겠으나 사실 거의 자화자찬 아니겠는가.


2025-1123-02-sofia02.jpg 당일 행사사진, 맨 왼쪽이 스페인 소피아왕비. 오른쪽에 앉아있는 남성이 현 스페인 국왕


나도 엄마에게 훈장을 주고 싶다. 소피아왕비보다 못한 게 무엇인가.

나를 낳아주고 길러주신 우리 엄마.

한 왕국의 왕비는 아니지만 나의 왕국의 여왕인 우리 엄마.

그래도

여행 중 이렇게 순간순간 행복함을 드리는게,

나의 작은 훈장 수여식 아닐까... 하고 혼자 생각한다.

이전 13화엄마와의 여행에서 밥때를 놓치면 벌어지는 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