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와의 여행에서 밥때를 놓치면 벌어지는 일

2025.11.20. 리스본->마드리드

by 집녀

혼자 여행을 다니면 밥때를 놓치는 경우가 많다.

개인적으로 먹는 것에 큰 의의를 두지 않는 편이라 굳이 맛집을 찾는다고 시간을 낭비하거나,

한 두 끼 건너뛰는 것에 신경을 쓰지 않았다.

하지만 연세가 있는 엄마와의 여행은 다르다. 관광 코스를 줄이더라도 밥때를 놓치면 안 된다.


리스본 여행을 끝으로 6일 동안의 포르투갈 여행을 마치고 스페인으로 이동하는 날이다.

아침 일찍 제로니무스 사원을 둘러보고 바로 옆 원조 에그타르트점에서 간식을 먹고

벨렝탑을 둘러보는 오전 일정을 정했다.

점심은 숙소와 5분 거리에 있는 리스본의 현지식이라는 생선구이를 먹기로 했다.

점심 이후에는 리스본의 명물 28번 트램을 타는 일정을 마지막으로

스페인 마드리드로 비행기를 타고 이동하는 계획이다.

정말 간식까지 포함시킨 완벽한 일정이었다

오전까지만 해도 생각대로 모든 것이 이뤄졌다. 여행 중에 계획대로 되는 만큼

기분 좋은 것이 어디 있으리라.


KakaoTalk_20251226_105807343.jpg 제로니무스의 회당 모습 석회암으로 빛을 받으면 더욱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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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스본 제로니무스 사원 바로 옆에 있는 원조 에그타르트 가게 '파스테이스 드 벨렝'. 원래 수도원에서 전해진 비밀 레시피를 쓰고 있다.



오전 일정을 마치고 점심식사를 위해 숙소 근처로 돌아오는 중이었다.

40분 정도 걸리지만 트램도 한번 만에 쭉 가는 편한 동선이었다..

운 좋게 자리도 잡고 앉아서 바깥 구경하고 가면 됐다.

그런데 잘 가던 트램이 중간에 멈추더니 기사가 뭐라 뭐라 하고 사람들이 웅성대기 시작했다.

급기야 사람들이 트램에서 내리기 시작했다. 뭐가 어찌 되는지 어안이 벙벙해 옆 사람에게 물었는데 안타깝게도 영어로 설명을 해 줄 사람이 없었다.

눈치껏 살펴보니 트램 운행이 중단돼 다른 교통편으로 알아서 가라는 것 같았다. (물론 나는 패스권이 있어 괜찮았지만 아닌 사람들은 요금은?) 구글 검색으로 다른 버스를 찾았고 예상보다 40분 이상 시간이 지연됐다.

알고 보니 트램과 자전거 충돌사고가 발생하면서 리스본 트램 라인이 전체가 중단된 상태였다.

이렇게 불편한 시스템이었다니...


예상보다 시간이 많이 걸리면서 애써 찾아갔던 현지식 생선구이집은 브레이크타임에 걸렸다.

그것도 딱 나부터. 계획대로라면 지금 밥을 먹고 나와서 숙소 앞에 있는 명물 28번 트램을 기다려야 할 때였다.

엄마에게 상황을 설명했다.

"지금 우리가 어디 식당에 들어가서 밥 먹을 시간은 없어. 28번 트램을 타고 한번 돌아봐야 하거든. 배 많이 고파?"

엄마는 괜찮다고 하셨다. 28번 트램을 포기하고 밥을 먹기에는 아쉬웠다. 왜냐하면 지난번 리스본 방문 때에도 이런 거 저런 거 하다가 명물이라는 28번 트램을 못 탔기 때문이다. 두 번 방문에 두 번 다 못 타는 것은 너무 억울하지 않은가.



KakaoTalk_20251226_105724333.jpg 리스본의 명물 28번 트램


KakaoTalk_20251226_133235613.jpg 밥 못 먹고 숙소에 돌아가는 길에 보게 된 '부산아저씨 기념품가게' 배가 안 고팠으면 한 번 들어가 볼 법했으나 그냥 패스.


엄마의 동의로 배는 살짝 고프고 다리도 아프지만, 호텔 화장실에 잠시 다녀오는 휴식을 취하고 바로 28번 트램을 탔다. 그것도 오후다 보니 사람들이 몰리면서 2대를 보내고 3번째에야 탑승이 가능했다.

점점 마드리드 비행기 탑승 시간에 대한 압박이 몰려오기 시작하면서 28번 트램을 타고 있는 내내 불안한 마음이 계속됐다. 원래라면 왔다 갔다 한번 다 해볼 생각이었는데 그러려면 1시간 반이 걸린다. 무조건 공항에 3시간 전 도착이라는 나의 철칙을 위반하는 상황이 발생하는 것이다.

그런데 불행인지 다행인지 아니면 원래 종점이었는지 모를 장소에 다 내리라고 했다. 예상보다 빠른 루트에 얼른 엄마를 숙소로 이끌었다.


엄마가 다시 물었다.

"배가 고픈데 뭐 먹을 시간은 없겠지..."

시계는 오후 3시 반을 넘어서고 있었다. 4시에는 숙소에서 택시를 타고 가야 했기에 부족한 시간이었다.

"그냥 공항 가서 뭐 좀 요기하자"


공항에서는 조그만 샌드위치 하나로 요기했다.

결국 그날 점심 저녁 동안 먹은 것은 샌드위치 하나 밖에 안된 것이다.

심지어 마드리드 공항에서 숙소까지 가는 길은 힘들기까지 했다.

숙소 앞에(건널목 하나만 건너면) 공항버스가 내린다 해서 탔는데 십분 이상을 야밤에 캐리어를 끌고 이동해야 했다.

밤늦게 고픈 배를 쥐어 잡고 무거운 캐리어를 끌고 가는 마음이란.. 그날따라 바람도 왜 그리 차가운지 모르겠다.


"엄마 뭐라도 좀 사 올까?"

숙소에 짐을 풀고 엄마의 눈치를 살피며 조심스레 물었다. 엄마는 기분이 별로 좋지 않은 듯했다. 귀찮다고 그냥 자겠다고 하시지만 확실히 배가 고프니 예민해진 것이 분명했다.

그날따라 숙소도 왜 그리 우중충한지(잠만 자고 갈거라 좀 싼 숙소를 예매했더니 역시 돈은 거짓말하지 않는다)

여행기간을 되돌아보면 가장 힘들었던 날이 아닐까 싶다.

엄마는 나중에 나에게

"그날 공항에서 머리가 어질어질해서 무서웠어"

라고 말하셨다.

내가 걱정할까 봐 말을 안 했지만 제 때 식사를 못 하면서 몸이 힘드셨다는 것이다.


KakaoTalk_20251226_105737430.jpg 리스본 공항에서 마드리드행 시간표를 확인하는 엄마. 이 때 엄마는 배가 너무 고파서 머리가 어질어질하셨다고 한다.


2주간의 여행 일정을 주변 사람들에게 보여주자 70대 후반의 엄마에게 무리한 일정이 아니냐고 걱정했다.

그래도 나는 괜찮다고 잘 먹고 다니면 괜찮다고 말했다.

그런데 결국 엄마를 굶기는 상황이 발생한 것이다.

효도여행을 빙자한 극기훈련인가.


앞으로는 절대 밥을 굽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즐거워야 할 여행에서 엄마가 병이 나면 큰일이기 때문이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는데

이제 내 나이에, 엄마나이에는 절대 무시하면 안 된다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달았다.


(이런 다짐에도 이후에도 밥을 건너뛰는 사태는 또 발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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