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11.22 톨레도->그라나다
오늘 하루는 그야말로 길 위에서 보내는 시간이다.
톨레도를 출발해 기차를 타고 마드리드까지, 다시 그라나다까지 4시간 넘게 버스를 타고 가는 일정이다.
비싼 숙소에서 뽕을 뽑기 위해 12시 체크아웃시간까지 숙소에서 버텼다.
집 나가면 고생이라 나가기 전까지 최대한 체력을 비축해야 한다.
침대에 뒹굴거리며 허리를 펴주고 커피 한 잔의 여유도 즐긴다.
여행 중 처음으로 푹 쉬다 보니 전날까지 한 대 맞은 듯 뻐근했던 몸도 좀 나아졌다. 남은 일정을 소화해 줄 체력을 어느 정도 회복한 느낌이다. 특히 엄마의 컨디션이 괜찮아진 것이 다행이다. 전날 먹은 한정식 저녁 식사가 기력회복에 큰 도움이 됐으리라.
기차역, 버스터미널, 공항
한국에서 이곳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곳들이기도 하다.
떠나는 설렘이 있는 곳.
그런데, 해외에서 이 세 곳은 내게 불안한 곳이다.
낯선 여행지에서도 가장 복잡하고, 가장 난감하고, 가장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하는 곳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상대적으로 소도시 혹은 시골의 기차역과 버스터미널이 마음이 편하다.
처음 도착해도 덜 우왕좌왕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조용한 톨레도 기차역에서도 이벤트가 있었다.
엄마가 기차시간에 놀라 의자에 가방을 놓고 간 한 남성의 가방을 찾아줬다.
"가방! 가방~"
남성이 의자에 둔 가방을 놓고 간 것을 뒤늦게 발견하고 엄마가 가방을 들고 그 남성을 뒤따르며 고함을 쳤다. 한국어로.
"엄마. 그냥 거기 놔둬라! 괜히 들고 있다 오해 살라!"
고 막았지만 엄마는 그 남성을 뒤따라가 주려고 했다.
다행히 뒤늦게 가방을 두고 간 것을 알아챈 남자는 되돌아와 땡큐땡큐하며 가방을 가져갔다.
기차 출발 거의 10초 전에.
엄마가 미리 어느 정도 플랫폼 쪽으로 가주지 않았더라면 못 가져갔으리라.
기차 출발 시간도 잊은 채 핸드폰을 한참 보고 있던 남자는 기차 출발 직전에 놀라서 옆에 있던 캐리어만 들고, 정작 의자 위에 올려든 가방은 두고 기차를 타러 간 것이다.
게임을 하느라 정신이 팔렸나...
그 남성을 반면교사 삼아 항상 일어난 자리에 놓고 간 것은 없는지 다시 한번 살펴보게 됐다.
마드리드 아토차 기차역에서 다시 전철을 타고 마드리드 남부터미널로 향한다.
여유롭게 시간을 잡아 놨기에 마음이 급하지는 않다.
여행은 무조건 시간을 넉넉하게 잡고 가야 한다.
"이렇게 하루를 길에서 보내나. 그래서 사람들이 패키지를 가는 거 아니겠나"
하루 종일 이동하느라 시간을 쓰는 것이 아까운 엄마는 또 이런 말을 한다.
여행 올 때마다 아주 자주 하는 말이다.
"아니다. 엄마. 패키지를 가도 우리처럼 보려고 하면 하루에 4-5 시간 이동하는 것은 마찬가지다! 그리고 우리는 관광하러 온 게 아니라 여행하러 온 거다. 이렇게 목적지를 찾아가는 것 자체가 여행의 즐거움 아니가!"
여행의 즐거움이라고 말했지만 이제 슬슬 여행의 피곤함이기도 하다.
나도 좀 있다 나이가 더 들면 그냥 편하게 패키지여행이나 할까라는 생각도 든다.
기차표, 버스표 시간대 맞춰 끊어야 하는 걱정도 없고, 여행 일정 짜는 어려움도 없고, 음식점 찾는 귀찮음도 없고 그냥 따라만 다니면 되는 것 아니겠느냐.
그라나다까지는 4시간 반 정도 걸린다.
이번 여행에서 가장 긴 시간의 이동이 되는 거리다.
그래서 일부로 돈을 더 주고 버스 맨 앞 좌석을 예매했다. 가는데 풍경이라도 보려는 이유에서다.
뭐 결국은 얼마 안 가서 해가 져서 창 밖에 볼 것도 없었지만 그래도 가는 내내 속이 뻥 뚫린 기분이었다.
엄마는 왜 이리 앞을 잡았냐고 불안하다고 옆에서 뭐라고 하셨다.
딸이 고생해서 일부로 앞자리 잡은 것도 모르고.. 미워.
그라나다로 가는 버스 안에서 바라본 석양은 눈부시게 아름답다.
우리의 여행이 행복한 여행이 되길 빌어주는 것 같았다.
스페인의 뻥 뚫린 대지를 바라보며
우리는 알함브라궁전이 있는 그라나다로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