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위의 여행, 그라나다 가는 길

2025. 11.22 톨레도->그라나다

by 집녀

오늘 하루는 그야말로 길 위에서 보내는 시간이다.

톨레도를 출발해 기차를 타고 마드리드까지, 다시 그라나다까지 4시간 넘게 버스를 타고 가는 일정이다.


비싼 숙소에서 뽕을 뽑기 위해 12시 체크아웃시간까지 숙소에서 버텼다.

집 나가면 고생이라 나가기 전까지 최대한 체력을 비축해야 한다.

침대에 뒹굴거리며 허리를 펴주고 커피 한 잔의 여유도 즐긴다.

KakaoTalk_20251231_144923558.jpg 톨레도 전경을 내려다보며 아침 커피 한 잔의 여유


여행 중 처음으로 푹 쉬다 보니 전날까지 한 대 맞은 듯 뻐근했던 몸도 좀 나아졌다. 남은 일정을 소화해 줄 체력을 어느 정도 회복한 느낌이다. 특히 엄마의 컨디션이 괜찮아진 것이 다행이다. 전날 먹은 한정식 저녁 식사가 기력회복에 큰 도움이 됐으리라.


KakaoTalk_20251231_144454805.jpg 아름다운 톨레도 기차역의 바닥 타일
KakaoTalk_20251231_144447296.jpg 기차가 오가는 것을 구경하는 엄마. 잠시 뒤 '옆에 다리만 나온 남자'가 두고 간 배낭을 찾아주는 착한 한국인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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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드리드행 기차, 엄마와 내 짐이 사이좋게 실려 있다.



기차역, 버스터미널, 공항

한국에서 이곳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곳들이기도 하다.

떠나는 설렘이 있는 곳.

그런데, 해외에서 이 세 곳은 내게 불안한 곳이다.

낯선 여행지에서도 가장 복잡하고, 가장 난감하고, 가장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하는 곳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상대적으로 소도시 혹은 시골의 기차역과 버스터미널이 마음이 편하다.

처음 도착해도 덜 우왕좌왕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조용한 톨레도 기차역에서도 이벤트가 있었다.

엄마가 기차시간에 놀라 의자에 가방을 놓고 간 한 남성의 가방을 찾아줬다.

"가방! 가방~"

남성이 의자에 둔 가방을 놓고 간 것을 뒤늦게 발견하고 엄마가 가방을 들고 그 남성을 뒤따르며 고함을 쳤다. 한국어로.

"엄마. 그냥 거기 놔둬라! 괜히 들고 있다 오해 살라!"

고 막았지만 엄마는 그 남성을 뒤따라가 주려고 했다.

다행히 뒤늦게 가방을 두고 간 것을 알아챈 남자는 되돌아와 땡큐땡큐하며 가방을 가져갔다.

기차 출발 거의 10초 전에.

엄마가 미리 어느 정도 플랫폼 쪽으로 가주지 않았더라면 못 가져갔으리라.

기차 출발 시간도 잊은 채 핸드폰을 한참 보고 있던 남자는 기차 출발 직전에 놀라서 옆에 있던 캐리어만 들고, 정작 의자 위에 올려든 가방은 두고 기차를 타러 간 것이다.

게임을 하느라 정신이 팔렸나...

그 남성을 반면교사 삼아 항상 일어난 자리에 놓고 간 것은 없는지 다시 한번 살펴보게 됐다.


마드리드 아토차 기차역에서 다시 전철을 타고 마드리드 남부터미널로 향한다.

여유롭게 시간을 잡아 놨기에 마음이 급하지는 않다.

여행은 무조건 시간을 넉넉하게 잡고 가야 한다.


KakaoTalk_20251231_144515324.jpg 마드리드 남부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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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드리드 남부터미널의 푸드코너의 음식. 비싼 레스토랑보다 이런 음식이 되레 입맛에 더 맞다.




"이렇게 하루를 길에서 보내나. 그래서 사람들이 패키지를 가는 거 아니겠나"


하루 종일 이동하느라 시간을 쓰는 것이 아까운 엄마는 또 이런 말을 한다.

여행 올 때마다 아주 자주 하는 말이다.


"아니다. 엄마. 패키지를 가도 우리처럼 보려고 하면 하루에 4-5 시간 이동하는 것은 마찬가지다! 그리고 우리는 관광하러 온 게 아니라 여행하러 온 거다. 이렇게 목적지를 찾아가는 것 자체가 여행의 즐거움 아니가!"


여행의 즐거움이라고 말했지만 이제 슬슬 여행의 피곤함이기도 하다.

나도 좀 있다 나이가 더 들면 그냥 편하게 패키지여행이나 할까라는 생각도 든다.

기차표, 버스표 시간대 맞춰 끊어야 하는 걱정도 없고, 여행 일정 짜는 어려움도 없고, 음식점 찾는 귀찮음도 없고 그냥 따라만 다니면 되는 것 아니겠느냐.


그라나다까지는 4시간 반 정도 걸린다.

이번 여행에서 가장 긴 시간의 이동이 되는 거리다.

그래서 일부로 돈을 더 주고 버스 맨 앞 좌석을 예매했다. 가는데 풍경이라도 보려는 이유에서다.

뭐 결국은 얼마 안 가서 해가 져서 창 밖에 볼 것도 없었지만 그래도 가는 내내 속이 뻥 뚫린 기분이었다.

엄마는 왜 이리 앞을 잡았냐고 불안하다고 옆에서 뭐라고 하셨다.

딸이 고생해서 일부로 앞자리 잡은 것도 모르고.. 미워.


그라나다로 가는 버스 안에서 바라본 석양은 눈부시게 아름답다.

우리의 여행이 행복한 여행이 되길 빌어주는 것 같았다.

스페인의 뻥 뚫린 대지를 바라보며

우리는 알함브라궁전이 있는 그라나다로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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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차에 이어 이번엔 버스에 고이 옮겨진 엄마와 나의 캐리어. 버스 맨 첫 앞좌석은 파노라마 뷰를 제공한다.
KakaoTalk_20251231_144547340.jpg 그라나다로 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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