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11.24 스페인 론다
론다 기차역에 도착해 바깥으로 나가자 날카로운 바람이 휙 불었다.
몸이 으스스 떨렸다. 그라나다가 스산하게 입김이 나오는 정도였다면, 론다는 아주 대놓고 차가운 바람이 온몸을 때렸다.
'춥다! 너무 춥다!'
날도 우중충해 금방이라도 비가 쏟아질듯했다.
예상했던 대로 택시는 잘 잡히지 않았다. 론다는 워낙 소도시라 우버나 볼트 같은 택시앱을 쓸 수 없다는 정보를 이미 파악했다. 몸이 얼어붙기 시작할 즈음 택시가 왔다. 승객이 내리고 운전기사 아저씨까지 같이 기차역안으로 들어갔다. 화장실 가는 것인가? 다시 나와서 택시를 몰고 가려는 아저씨를 급히 붙잡았다.
"혹시 론다 파라도르까지 가줄 수 있나요"
다행히 인상 좋은 기사 아저씨가 흔쾌히 태워줘 살았다.
론다는 소도시라 기차역에서 론다 파라도르까지 걸어가도 십오 분 정도 걸린다. 나 혼자였다면 걸어갔을 것이다. 하지만 엄마가 있기 때문에 그런 힘든 상황을 만들기 싫었다.
이번 여행에서 캐리어를 들고 다니는 동안에는 많이 걷는 일은 없도록 하겠다는 것이 나의 다짐이다.
론다 기차역에서 차로 5분 정도 갔을까?
대망의 론다 숙소인 '론다 파라도르'에 도착했다.
론다 여행의 중심지인 누에보 다리 옆, 타호협곡 절벽 위에 세워진 숙소다.
협곡과 다리 조망이 한 번에 가능하고, 다른 쪽으로는 넓게 펼쳐진 평원도 볼 수 있는 그야말로
환상적인 위치다.
이번 여행에서 달라진 점이 있다면,
"그래 인생 뭐 있나! 쓰자!"
이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숙소에 돈을 쓰는 것이 지극히 아깝던 나에겐 큰 변화다.
여행에서의 숙소는 위치 좋고, 깨끗하면 만족했다.
굳이 돈을 더 쓰며 비싼 숙소를 찾지는 않았다.
그런데 이번에는 비싼 숙소에 머무르는 것을 주저하지 않았다.
엄마랑 가는 여행이고, 엄마 연세가 70대 후반인 점을 감안하면 이 정도 숙소는 진즉에 자 봤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지금까지 너무 아꼈다.
론다의 숙소는 톨레도 숙소에 이어 가장 기대가 컸던 숙소다.
심지어 아고다 예약할 때 비고란에 "연세 많으신 엄마랑 가는 여행이니 좋은 뷰로 주세요!"라고 남겨놨을 정도니 말이다.
톨레도에 이어 론다 숙소도 파라도르, 즉 스페인 국영 호텔 체인이다.
론다 파라도르의 특징이라면 론다의 핵심 관광명소인 누에보 다리 바로 옆에 있다.
역시 예전에 론다를 방문했을 때 꼭 저기서 자봐야지 했던 숙소다. 이번 여행은 지난 여행의 숙소 한풀이 여행이 되는듯하다.
쌀 때는 20만 원대, 성수기에는 천정부지로 가격이 치솟는다. 그것도 뷰가 어디냐에 따라 숙소의 가격은 또 달라진다. 물론 나는 20만 원대 행운의 가격은 잡지 못했고 40만 원 대정도로 잡았다. 뭐 그 정도 가지고 비싼 숙소 어쩌고 하냐 하지만... 내게는 비싼 숙소다.
옛 시청 건물을 개조해 만들었다는 론다 파라도르 안은 묵직한 목재의 느낌이 가득했다.
문을 열자 따뜻한 아몬드 향이 느껴지는 듯했다. 포근한 향. 아마도 추위에 떨다 와서 더 실내가 포근하게 느껴졌으리라.
다행히 얼리체크인이 되면서 입실이 가능했다.
무게감 있는 방 문을 열고 들어가자 '와~우' 감탄부터 터져 나왔다.
높은 층고에 코너 즉, 두 개 면을 접한 내 숙소는 아마 론다 파라도르 안에서 가장 좋은 위치의 숙소를 준 즉라자.
화장실에도 , 소파 옆에도 창문이 있었고, 메인 창문을 통해 바라본 누에보 다리는 환상 그 자체였다. 굳이 바깥에 나갈 필요가 있을까 생각들 정도였다.
지난번 여행에서의 버킷리스터가 다시 이뤄지는 순간이었다.
론다는 소도시다. 그래서 메인 관광지는 반나절이면 충분하다.
'볼 것 별로 없다'는 것은 즉 '할 것 별로 없다'는 뜻이고 결국 '숙소서 편하게 쉴 수 있다'는 뜻이다.
어서 보고 와서 숙소에서 쉬어야지 하는 마음에 짐만 내려놓고 바로 나섰다.
금방이라도 비가 쏟아질 듯한 날씨가 더욱 발걸음을 재촉했다.
동네 구경을 하고 다시 좋은 숙소에서 쉴 수 있다는 생각에 방문을 나서는 마음이 든든했다.
점심은 소꼬리찜을 택했다. 론다가 소꼬리찜 요리로 유명한 곳이기 때문이다.
근대 투우의 발상지가 론다인데, 투우 경기가 끝난 뒤 잡은 소의 꼬리를 요리로 먹는 전통이 있다고 한다.
한국인들의 평이 가장 좋은 음식점 '푸에르타 그란데'로 향했다.
숙소에서 3분? 도 안 되는 곳에 있었다.
숙소 위치 나이스~
문을 열자 어머나. 죄다 동양인이다.
패키지로 보이는 일행들과 중국인 커플이 식당을 점령하고 있었다.
한국 관광객들에게 입소문 났으니까 역시 한국인들이 가득한가.
아니면... 가이드들이 일부러 그렇게 소문을 낸 건가?
어찌 됐듯 소꼬리찜과 감바스도 하나 시켰다. 물론 환타도 빠질 수 없지. 이번엔 오렌지와 레몬맛도 시켜봤다. 결론은 오렌지맛이 더 좋더라는.
속도 든든하고 엄마랑 같이 관광에 나선다.
엄마는
"여기 뭐 볼 것이 있나!"
"엄마 여기도 유명한 곳이다. 그 예전에 꽃보다 할배인가 나왔던 곳이다"
티브이에 나왔다 하니 엄마도 믿기 시작한다.
론다의 투우장으로 먼저 향했다.
흙이 너무나 노랬다. 알고 보니 안달루시아 지방에서 주로 채취한 화석이 함유된 석회암 가루라고 한다. 비가 와도 투우 경기장 바닥이 진흙탕이 되지 않고 금방 마르고 특히 모래 입자가 고와 탄성이 있어서 투우사 부상방지에 좋다고 한다.
동물학대 논란으로 이제 투우 경기는 많이 줄었지만 아직 이 론다에서는 투우경기가 열린다고 한다.
역시 본산지는 다르다.
"이거 보러 온 거가? 더 없나?"라고 엄마는 다시 되묻기 시작했고, 나는 더 이상 대답하기 귀찮아 엄마를 누에보 다리로 끌고 갔다. 호텔에서 물어본 관광루트(인터넷 정보에 다들 의존하지만 가장 최적의 하이라이트 관광만을 원한다면 호텔 프런트 정보는 여전히 유효하다)를 돌기로 했다.
먼저 협곡 아래 트래킹을 해보기로 했다.
밥을 먹고 나오니 날씨가 더 우중충해지면서 금방이라도 빗방울이 떨어질 것 같았다.
다리 아래 '미라도르 푸엔테 누에보' 쪽 계단을 통해 협곡 아래로 내려갈 수 있었다.
올라오는 사람들이 하도 헉헉대서 살짝 걱정이 되기도 했다. 올라오는 길이 얼마나 가파르면 저렇게 숨이 찰까.
엄마도 살짝 겁을 먹었지만 괜찮다며 엄마를 끌고 갔다.
비가 올까 봐 걸음은 더 빨라지고, 행동은 더 적극적으로 변했다.
완공하지 않은 트래킹 코스에 대한 아쉬움을 남긴 채 구시가지를 지나 아랍 목욕탕으로 향했다.
론다는 이슬람의 지배를 가장 먼저 받으면서 약 770년 정도 이슬람 문화권의 도시였다.
그만큼 아랍의 흔적이 곳곳에 있는데 특히 아랍 목욕탕 보존상태로 유명하다.
"무슨 스페인에 아랍목욕탕이 있노? 그거 보러 가야겠나.,볼거 있나"
빗방울이 서서히 떨어지자 엄마의 투정이 시작됐다.
아랍 목욕탕에 가봤자 볼 것이 없을 것이라 생각하셨나 보다.
" 아랍목욕장 보고 몇 군데 돌면 우리 숙소로 갈 수 있다. 골목 곳곳 둘러보는 게 얼마나 이쁜데. 좀만 견뎌라"
흔적만 남아있는 아랍목욕장에서 상상의 나래를 펼치고(홍보영상은 꽤나 도움이 됐다) 다시 숙소로 돌아오는 길. 엄마는 왠지 발걸음이 더욱 가벼워 보인다. 아마 이제 일과를 마치고 숙소로 돌아간다는 생각에, 쉴 수 있다는 생각에 엄마도 즐거웠으리라.
지난 번 왔을때 내가 봤던 것은 아랍목욕장이 아니었다.
나는 뭘 봤던 것일까?
두 번 와서 볼 것 없을 것이라 생각했던 것과는 달리. 론다는 그 작은 도시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볼거리를 보여줬다.
아마 그 때는 입장료 내는 것을 다 안봤기 때문에 못봤을 수도 있다.
숙소 문을 열자 온기가 확 느껴졌다.
자 이제 오늘 할 일은 끝냈다. 밥 먹고 씻고 자자.
행복이 몰려오는 시간이다.
저녁은 역시 최고의 밥상인 햇반과 육개장을 먹기로 했다.
최고의 뷰를 보며 최고의 밥상을 마련한 것이다.
밥을 먹고 반신욕을 하며 시간을 보냈다.
일찍 들어와서 시간도 남았다.
푹신하고 깨끗한 침대에 들어와서 넷플릭스를 켰다.
오랜만에 찾은 여유로움.
요즘 인기라는 '서울 자가 김 부장 이야기'를 봤다.
눈물이 났다.
내 얘기 같았다.
돈을 많이 벌어야지
퇴직 전에는 돈을 많이 벌어서 앞으로도 이런 숙소에서 자야지.
이제 이 이하로는 못 갈 것 같다.
돈의 맛.
이러려고 돈을 버는 것인데.
앞으로 돈을 더 많이 벌어야겠다.
김 부장처럼 회사에서 쫓겨나기 전에 최대한 열심히 벌어야겠다고 다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