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사람과 도망치고 싶다면 론다로 가라"

2025.11.25 스페인 론다에서 세비야

by 집녀

아침 일찍 눈이 자동으로 떠진다.

여행기간 내내 새벽 6시 정도면 알람 없이도 눈이 떠졌다.

물론 초반에는 시차 적응에 실패하면서 그보다 더 빨리 눈이 떠지기도 했지만 말이다.

잠을 일찍 자니 눈이 일찍 떠질 수밖에 없다.

피곤한 몸을 이끌고 샤워를 하고 침대에 누우면 언제 잤는지 모를 정도로 바로 잠에 빠져든다.

그 효과를 가장 잘 누리고 있는 것은 바로 엄마다.

여행 가기 전에 잠을 못 자서 이틀에 한 번 꼴로 숙면을 이뤘던 엄마였지만 여행기간 내내

침대에 눕자마자 나보다 더 빨리 주무신다.

낮동안 많이 걸어 다녀서 피곤했기 때문이리라.

그래도 밤 중에 깨지도 않고 계속 잠을 잤다고 들으면 내가 다 뿌듯하다.

그렇게 하루하루 체력을 회복하며, 오히려 건강해지며 여행에 적응하고 있었다.


밤새 숙소에 난방을 켰지만 다소 추웠다.

아마 창 사이로 바람이 솔솔 들어와서 그런 거 아닌가 싶다.

천장이 높으니 외풍도 있을 수밖에.

그래도 이 좋은 숙소에서 눈을 뜨니 마치 공주가 된 듯했다.

떠나긴 싫지만 하룻밤의 꿈으로 남겨두고 다음 행선지인 세비야로 가야 한다.


조식을 먹으러 가서 깜작 놀랬다.

호텔이 너무 조용해 사람이 없는 줄 알았더니 가득했다.

대부분 외국인이었는데 마침 옆테이블에 한국인 관광객들이 앉아있었다.

패키지 관광객은 아니었다.

연로하신 부모를 모시고 딸 둘, 아들 하나, 사위 하나 이렇게 구성된 듯 보였다.

내년에는 손자들까지 데리고 오자며 웃음꽃을 피웠다.

부럽네.

셀카로 사진을 찍으려는 것을 대신 찍어드렸다.

즐거운 가족 여행 되시기를.


밥 먹고 소화도 시킬 겸 숙소 근처 헤밍웨이 산책길을 걷기로 했다.

론다는 헤밍웨이가 다녀간 곳으로 유명하다.

헤밍웨이는 방랑가라고 할 만큼 일생의 절반을 떠돌아다녔다.

아마 전 세계 곳곳에 헤밍웨이의 흔적이 남아 있는 곳이 많으리라.

미국 플로리다 헤밍웨이 생가를 방문했을 때 그의 바람기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었다.

모두 4번의 결혼을 한 작가.

전 세계 곳곳을 돌아다니며 자유연애를 했고, 글도 잘 썼던 작가

부러운 인생이다.

그런 헤밍웨이가 그의 소설 '오후의 죽음'에서 이 론다를 언급한 적이 있었다.

"만약 당신이 스페인으로 신혼여행을 가거나 혹은 누군가와 도망칠 계획이라면 가야 할 곳은 단연코 론다다. 도시 전체와 그 주변 어디를 둘러봐도 온통 로맨틱한 배경뿐이다"

라고 말했다.

연인과 도망치고 싶다는 그곳에

한 번은 나 혼자, 두 번째는 엄마랑 같이 왔다.



KakaoTalk_20260113_101107271.jpg 헤밍웨이 산책길에서 바라본 론다. 절벽도시에서 내려다본 풍광이 장관이다.




KakaoTalk_20260113_100942739.jpg 얇은 철제 난간 하나로 공중도시와 아랫도시가 구분된다.


KakaoTalk_20260113_100955897.jpg 밤새 비가 내려 공기가 더욱 깨끗해졌다.



헤밍웨이산책길에는 일본인 동상도 있다. 처음엔 이 동상을 헤밍웨이라고 생각했다.

'아베 도시히로'라는 일본 서양화가의 동상인데 1980년대 중반에 우연히 론다에 들른 이후 풍경에 매료돼 아예 30년 동안 정착했다고 한다. 오직 론다의 풍경만을 그렸다는 론다 바라기였다

이후 론다에 특히 일본관광객들의 방문이 많은 이유도 그 때문이라고 한다.


KakaoTalk_20260113_101025260.jpg 론다에 있는 일본인 동상



론다와 사랑에 빠진 사람들이 한 둘이 아니구나.

이 거대한 절벽도시의 매력이 사람들을 이끌었구나.

참고로 나는 고소공포증이라 높은 곳은 싫어한다.

절벽 위에 세워진 호텔도 혹시 무너지지 않을까 걱정하는 사람이니 말이다.

론다도 물론 아름다운 도시지만, 세상에는 사랑하는 연인과 도망치고 싶을 만큼 아름다운 곳이 너무나 많다.

나는 아직 그곳 가운데 100분의 1도 가지 못했으리라.

가야지. 꼭 가야지.


론다와 더 사랑에 빠지기 전에 나는 다음 도시 세비야로 향한다.


KakaoTalk_20260113_101125180.jpg 숙소를 떠나기 전 아쉬움에 누에보 다리를 바라보며 티타임을 가진다. 맥심 모카골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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