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11.27. 스페인 바르셀로나
엄마는 내가 가식적이라고 한다.
둘이 있을 때는 막 살갑게 구는 것도, 말을 많이 하는 것도 아닌데
사람들이 볼 때는 엄청 살갑게 군다는 것이다.
특히 다른 사람들이 우리 둘의 모습을 사진을 찍어준다고 하면 나는 1초 만에 표정을 바꿔서
엄마를 이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사람을 쳐다보는 눈빛으로 본다.
그런데 사실이다.
나는 이 세상에서 엄마를 제일 사랑한다. 평소에 표현을 못해서 그렇지.
아침 일찍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을 보고 난 뒤 구엘공원으로 향했다.
오늘은 바르셀로나 관광으로 하루 종일 바쁜 날이다.
오전 9시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 입장에 11시 반에 구엘공원,
버스를 타고 이동하면서 시간이 10분 정도 늦어졌지만 다행히 구엘공원 입장에는 문제가 없었다.
구엘공원은 사그리다 파밀리아 성당과 함께 대표적인 가우디 건축물이다.
공원으로 지은 것이 아니라 상위 1%를 위한 고급 전원주택단지로 지었는데 분양에 실패했다.
당초 60채 집을 지어 분양하려다가 단 3채만 팔리고 사업이 망하면서 바르셀로나 시가 이를 사서 공원으로 꾸민 것이다.
나는 이곳 구엘공원을 역시 세 번이나 왔다. 행운인가?
스무 살 때 배낭여행으로 한 번. 취직해서 출장으로 한 번, 그리고 이번에 엄마와.
하지만 곳곳에 세세하게, 그 뜻을 새겨가며 둘러보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내가 누군가에게 설명하고 이끄는 가이드역할을 하게 되니 확실히 더 잘 알게 된다.
그리고 구석구석 놓치지 않기 위해 더욱 열심히 본다.
나만 믿고 온 엄마를 위해 나는 재미난 가이드가 되어야 한다.
구엘공원 최정상 세개의 십자가 탑을 보고 내려오는 길에
한국인 부부가 있어 역시 사진을 찍어 드렸다.
우리 보고도 풍경을 배경으로 서 보란다.
쑥스럽지만 사진 찍어준다시니 엄마에게 세상 다정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익숙지 않은 엄마의 입술이 씰룩거렸다.
'저거 또 연기하네' 하셨을 거다.
사진을 찍어준 60대 초반의 여성분이 한마디 하셨다.
"두 분 너무 좋아 보이세요. 나도 딸이랑 여행 다니고 싶다"
엄마의 표정에서 뿌듯함을 느낀다.
점심은 또 건너뛴다.
빨리 관광을 끝내고 집에 들어가서 한국서 가져온 밥을 먹자고 합의를 봤다.
유럽 최초의 지하주차장과 천연 에어컨을 착용한 혁신적 설계를 보여준 까사밀라.
가우디의 천재성을 인정받지 못한 또 다른 아픔이 있는 건물이다. 다 짓고 난 모습이 너무나 흉측해 건축주와 법정싸움까지 갔는데 소송에서 이긴 가우디는 받은 보상금을 모두 종교단체에 기부했다고 한다.
카사밀라와 카사바트요 두 곳을 다 둘러보고 싶었지만 사악한 입장료 탓에 카사바트요는 그냥 외관만 찍었다.
뼈의 집이라고 불리는 카사바트요는 용의 승천을 형상화한 모습인데 무시무시한 뼈의 형상으로 역시 당시 사람들에게 조롱을 받았다고 한다. 당대에 인정을 받는 천재는 드문가...
바르셀로나는 가우디의 도시다.
곳곳에 가우디의 흔적이 남아있다. 만약에 가우디에게 자손이 있었다면 그 어마어마한 부를 이어받지 않았을까? 안타깝게도 가우디는 홀로 살았다. 진정한 천재는 혼자여야 빛을 발하는가?
다리도 아프고 피곤하고해서 숙소로 돌아와 늦은 점심을 먹고 한숨 잤다.
여행 중 즐기는 이런 한가로움이야 말로 진정한 행복 아니겠는가.
빨리 숙소에 들어온 이유 중 하나는 저녁 8시부터 열리는 분수쇼를 보기 위해서다.
늦은 밤까지 돌아다녀야 하기에 체력을 충분히 비축해야 한다.
쉬라고 했는데도 엄마는 빨래를 한다고 바쁘시다.
이제 돌아갈 날 며칠도 안 남았는데 고생하시지 말지...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엄마는 눈에 보이는 것은 해야 한다.
저녁 7시 반, 옷을 단단히 여며 입고 숙소를 나선다.
지난번 출장 때 본 바르셀로나 분수쇼는 정말 감동적이었던 기억이 났다.
그 이후 분수쇼, 불꽃쇼를 하도 많이 봐서 감동이 같을까 의문도 들었지만
바르셀로나에 오면 꼭 한번 봐야 하는 것이기에 무거운 다리를 이끌고 나섰다.
하는 거 맞나 싶을 무렵.
아름다운 선율과 함께 색색의 분수가 역동적으로 움직인다.
마침 크리스마스 앞이라 크리스마스 특별 분수쇼란다.
아름답다. 사랑하는 사람(엄마 말고 연인)이랑 왔다면 또 다른 감동이었을 수도.
한 시간 공연이지만 엄마와 나는 절반만 보고 숙소로 향한다.
계단에 앉아있으려니 엉덩이가 얼얼하다.
"마 이 정도 봤으면 됐다!"
엄마가 쿨하게 말하며 어서 숙소 가서 쉬자고 하신다.
그래 이 시간에 바깥에 돌아다니는 것은
엄마와 나 모두에게 익숙한 일은 아니다
그래도 임무를 완수하고 하루를 마감하며 숙소로 돌아가니 마음이 뿌듯하다.
오늘 하루도 알차게 보냈다!
그리고 내일은 여행기간 가장 기대하던 날이 기다리고 있다.
바로 쇼핑데이!
나에 대한 보상은 내일 하루에 몰아서 하자!!
더더욱 기분이 좋아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