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화점 명품관에서 쇼핑을 한다?
사실 나랑은 거리가 멀었다.
그렇다고 안 사본 건 아니다.
단지 해외여행 갔을 때, 그 나라의 명품 가격이 우리나라보다 현저히 싸다면(대부분 유럽에 해당하지만)
'정가의 물건을 파는(그 나라 기준으로)' 명품관에서 사기도 했다.
그렇지만 우리나라 명품관에서 물건을 산 일은 없었다.
비싼 가격에 호구가 되지 않겠다는 마음에서다.
그런데 그날 난.
백화점에서 물건을 보자마자 잠시의 망설임도 없이(사실 한 3분은 망설였지만) 카드를 긁었다.
결코 적은 액수가 아닌 수백만 원의 가격을 결제하는데 거침이 없었다.
왜 그랬을까?
그러고 싶었다.
망설임 없이 지르는 그 짜릿함을, 그 대범함을 경험해보고 싶었다.
'나도 할 수 있다!'를 느끼고 싶었다.
그날 따라 몸이 가벼웠다.
몇 달 동안 해결되지 않은 회사 일을 해결하고 맞이하는 금요일이었다.
골이 더 이상 아프지 않았고, 주말을 앞두고 기분도 급격히 좋아졌다.
점심시간 회사 인근 백화점에 구경이나 가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냥 흥얼거리며 백화점을 둘러보고 싶었다.
특히 백화점 명품관 1층에서 나는 특유의 명품 화장품 향기를 맡고 싶다는 욕구가 강했다.
물론 사지 않을 것이다. 단지 시향은 할 것이다.
그동안 맡아보고 싶었던 그 향수를 몸에 뿌리고 운동삼아 백화점을 둘러보기로 한 것이다.
계획한 대로 향수를 뿌리고 돌아서는 순간 문득 그 명품 매장이 눈에 들어왔다.
항상 사람들이 줄 서 있던 매장에 사람 한 명 없었다.
나도 가 볼까? 자연스레 발길이 그곳으로 향했다.
"들어가도 되는 거죠?"
어색한 몸짓으로 매장직원에게 물어보며 매장 안에 발을 디뎠다.
평소에 사고 싶었던, 관심 있었던 가방을 파는 매장이다..
인터넷에 올라온 글을 보면 '워크인 구매(들어가서 사는 것)'도 힘들고, 매장에 물건도 없어서
사기는 하늘에 별따기 같다는 그 가방을 혹시나 볼 수 있을까 싶었다.
당연히 없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왠 걸, 매장 직원이 찾아보겠단다.
아.. 이러면 계획에 어긋나는데.. 그냥 물건 없다는 핑계로 다른 가방 구경이나 하고 나가는 척하려 했는데.
"와 이건 정말 운이 좋으시네요! 이렇게 물건 들어온 건 거의 5개월 만에 처음이에요!"
한참 있다가 나타난 매장 직원은 본인도 못 믿겠다는 표정으로 물건을 내밀었다.
평소에 잘 들어오지 않던 그 가방이, 그 색이 딱 두 점 들어와 있다는 것이다.
그것도 5개월 만이라니!
유럽에 가서도 그 모델에 그 색이 없으면 산다는 보장도 못하는 가방이었다.
올해 계획 중인 스위스 여행을 가서도 매장에 물건이 있을까 없을까 장담할 수 없는 그 가방이었다.
하늘이 주신 기회.
나와 인연이 된 가방!
어떻게 안 살 수 있겠는가!
그래서 질렀다.
내가 이 가방 하나 못 사겠는가! 내 나이 오십이 다 되어 가는데 이 명품 가방을 하나 못 지르겠는가?
오기도 생겼다.
마침 옆에서 남편이랑 온 여자분은 이 가방 저 가방 훑어보며 두 개를 살까 한 개를 살까 고민하고 있었다.
남편은 뭘 사든, 몇 개를 사든 개의치 않는다는 표정으로 핸드폰을 살펴보고 있었다.
부러움...
그래. 나는 빚을 내는 것도, 남의 돈을 쓰는 것도, 돈이 없는 것도 아닌데 이것을 왜 못사!
바로 카드를 긁었다.
단일 품목으로 지금까지 산 가방 가운데 가장 비싼 그 가방을,
할인도 안 된 가방을
일시불로 긁어버렸다.
포장은 명품쇼핑백이 아닌 일반 쇼핑백으로 바꿔달라고 해서 매장을 나섰다.
물론 점심시간이라 땡땡이친 것은 절대 아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점심시간에 명품 쇼핑백을 회사로 메고 돌아가는 어리석은 짓은 하면 안 됐다.
인터넷에 올라온 글을 보면 매장에서 인증샷도 찍고 하던데,
나는 단 10분도 안되어 매장에서 결제까지 다 끝내고 나와버렸다.
좀 더 음미할 걸 그랬나?
검은 가방에 숨겨진 그 영롱한 가방을 메고 회사로 가는 순간
몸이 더 가벼워지기 시작했다.
깃털처럼 날아갈 것 같았다.
나도 드디어 해 냈다!
명품관에 가서 별 고민 안 하고(물론 그전부터 그 가방을 살까 말까 엄청난 고민을 했던 것이었지만)
쿨하게 결제하고 나오는 그 상황!
내 돈 주고 샀지만 돌아오는 길에 엄마에게 전화했다.
엄마는 잘했다고 하셨다.
엄마의 지지를 얻으니 기분은 더 좋아졌다.
이제 이 가방을 분신처럼 메고 다니리라.
올해까지는 나의 트레이드 마크가 되리라!
주차장에 내려가 차 안에 쇼핑가방을 넣어놓고 아무런 일이 없었다는 듯
다시 회사 내 자리에 앉는다.
아직 점심시간이 20분이나 남았다.
마치 첩보작전을 몰래 완수한 것처럼 뿌듯함이 몰려왔다.
정말 그렇게 고민 없이 일사천리로 명품가방을 질렀단 말인가?
나 자신의 행동에 다시 한번 감탄이 흘러나온다.
'이 나이 들어서 나한테 이런 투자도 못해?'
많은 사람들의 변명이기는 하다.
그러면서 점점 씀씀이가 늘어나고 명품에 환장한 사람이 되어갈지도 모른다.
그런데... 비웃겠지만 그것은 나의 버킷 리스트 중에 하나였다.
할인 안 되는 명품 매장에서 망설이 없이 명품 하나 구입하는 것!
나는 그것을 해낸 것이다.
2025년 3월 6일 그날 나는 해낸 것이다!
의미 있는 날이다.
그래서 기록한다.
앞으로 이런 날이 자주 오길.
자주 명품을 사겠다는 것이 아니라
비싼 물건을 사는 것이 그다지 내 인생에 별 큰일이 아닌 날이 오길.
그만큼 부자가 되길.
아직 그 능력은 크게 못 미치지만
나는 그보다 더 한 능력이 생길 것임에 믿어 의심치 않는다.
나의 이 짜릿한 경험이 앞으로 시작이 될 것이다.